日 가전 빅3 “TV사업 접겠다”…왜?

일반입력 :2012/07/08 08:47    수정: 2012/07/09 08:29

정현정 기자

지난 해 사상 최대의 적자에 빠진 파나소닉· 소니· 샤프 등 일본의 간판 AV업체들이 올 들어 신임 경영진 체제를 맞으면서 전열 재정비에 나선 모습이다.

특히 3사의 새 경영진들은 최근 주주총회와 신임 사장 회견을 통해 이구동성으로 “TV는 더 이상 핵심사업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쏟아내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 기업에 밀린 이들이 TV 사업에서 힘을 빼는 동시에 디스플레이 사업을 다각화시키며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굳힌 것으로 분석된다.

왜일까? 일본 업체 내부에서는 4년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엔화강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상실을 이유로 꼽고 있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마케팅·디자인 경쟁력 상실 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엔화 강세까지 겹친 일본 간판 TV제조업체들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신임 사장은 “TV 사업에서는 더 이상 이익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는 핵심사업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도 “디지털 이미징, 게임, 모바일을 중점사업으로 강화하고 이 세 분야에 대한 개발 및 투자에 70%를 할애하겠다”고 말했다.

오쿠다 타카시 샤프 사장은 “적자의 대부분은 TV 등 대형 액정 사업에서 기인했다”며 “해당 사업을 분리해 경영안정화를 도모하겠다”고 말해 TV용 대형 LCD 부문 구조조정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그 동안 일본 가전업체들의 핵심사업으로 꼽혔던 TV 사업이 적자의 원흉으로 반전되면서 일본 기업들도 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7월 지상파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면서 일본 내 TV 수요는 단번에 정체기를 맞았다. 대규모 생산 설비 투자가 과잉 투자로 이어지고 리먼 쇼크와 함께 세계적으로 경기 후퇴가 이뤄진 것도 크게 작용했다. 유럽 금융위기와 미국 경기침체, 신흥국 수요 침체도 더해졌다.

세계 TV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원화 약세에 힘을 얻었지만 일본 업체들은 엔고 역풍에 노출됐다. 오쿠다 다카시 샤프 사장은 “리먼 사태 이후 엔화 가치는 40% 상승하고 원화 가치는 20% 떨어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60~70% 가격경쟁력 차가 생겼다”면서 “약간의 기술력 차이로는 가격경쟁력의 차이를 메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 디자인 마케팅 경시로 경쟁력 상실

그 동안의 TV 사업전략에 대한 반성도 나온다.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은 “이제 단말 기술보다 디자인과 마케팅이 중요하게 됐다”면서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기술이나 제조에 자신감을 가지고 고객 관점에서 상품을 만들지 못했고 일본의 취향과 글로벌 취향이 맞지 않는 점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런 반성을 하면서 세 회사는 TV 사업을 재편하며 비TV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쓰가 가즈히로 사장은 “가정에서 보는 TV 이외에 디스플레이의 용도를 주택 뿐만 아니라 비주거공간용, 이동용, 개인화 단말기로 전환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중 비TV용 생산 비율을 지난해 20%에서 50%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샤프도 사카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대형 LCD 패널 수량의 절반을 혼하이 그룹에 납품하는 한편 60인치 이상 대형 패널을 TV 이외에 디지털 사이니지용으로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일본 가전업계 관계자는 “1인치에 1천엔 이하로 떨어진 패널 가격을 1인 1만엔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비TV 사업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비TV용 시장은 수요층별로 시장이 세분화 돼 있어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한국기업의 독주 예고?

이는 국내 기업들이 여전히 TV 사업에 집중하는 것과 다른 전략이다. 한국 기업들은 일본 업체들의 행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연내 OLED TV 상용화를 도모하고 있다. 파나소닉과 소니도 OLED 패널 개발에 공동 협력하기로 했고 샤프도 중소형에 초점을 맞춰 OLED 패널을 개발 중이지만 각사 모두 TV 상용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쓰가 가즈히로 사장은 “OLED TV가 현재의 TV와 비슷한 가격이 되는 시기가 2014년이 될지 2015년이 될 지 알 수 없다”면서 “OLED 샘플은 만들 수 있지만 TV와는 무관한 제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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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 기업들은 무서운 기세로 지금까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일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LG전자는 도쿄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TV 매장에 대규모 판매 공간을 확보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온 고객들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제품이 LG전자 TV다. LG전자의 적극적인 투자 표현 중 하나다. 지난 2007년 일본 TV 시장에서 쓴맛을 봤던 삼성전자도 내년 다시 일본 TV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것이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해외 가전쇼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TV 품질, 디자인, 브랜드 평가에서 일본 업체를 웃도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일하게 일본 만이 한국 TV 업체의 브랜드가 확립되지 않은 시장이다. 일본 업계에서는 무기력한 상태로 무서운 기세로 사업을 확장하는 한국 기업들을 맞닥뜨리는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