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혹한기...기업은 망해도 기술은 발전한다

[이슈진단+]블록체인, 위기인가 기회인가(상)

컴퓨팅입력 :2019/03/20 10:05    수정: 2019/03/25 08:58

임유경, 황정빈 기자

블록체인 산업이 짧은 버블을 지나, 긴 침체기를 지나고 있다. 블록체인은 짧지만 강렬했던 버블 기간 동안 어느 산업의 그것보다 극심한 부작용을 맛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버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산업 안으로 관심과 투자가 집중된 덕분에, 기업들이 당분간 성장할 자양분이 마련됐다. 이제는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침체기를 슬기롭게 넘어갈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블록체인 산업이 버블기, 침체기를 지나 폭발적인 성장기를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3회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블록체인 산업 전체가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지난해 우후죽순 등장한 블록체인 업체 중 소리소문없이 개발을 중단하고 휴업인지 폐업인지 모를 상태에 있는 곳이 상당하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남은 업체들도 인력을 감축하거나 마케팅 활동을 최소화하는 등 ‘생존'에 방점을 찍고 버티기 중이다.

이런 상황은 암호화폐 광풍에서 비롯된 ‘크립토버블'과 버블 붕괴된 후 찾아온 ‘크립토윈터'의 산물이다. 자고 일어나면 암호화폐 가격이 수백 퍼센트 씩 폭등하던 크립토버블 덕에 많은 블록체인 업체들이 비교적 쉽게 투자금을 모집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하락장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면서 투자받은 암호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산업은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일까. 겉으로 드러난 현상들은 위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지금이 갑작스러운 관심으로 생긴 부작용을 청산하고 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할 기회일 수 있다.

이미 크립토윈터를 지나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쉽게 투자 받기 위한 수단’으로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사례는 거의 없어졌고, 실제 기술이 주는 효용성에 관심을 가지고 접목하는 경우가 늘어 난 것이 업계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다.

[사진=PIXTA]

위기의 블록체인? 아니 기회의 블록체인!

국내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객관적인 실태조사가 없어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블록체인 기업들의 상황이 심각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어떤 개발사가 폐업 신고를 했고, 어떤 업체가 전체 인력 중 절반은 내보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블록체인 투자 업체 관계자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에는 1차 모금을 끝내고 2차 모금을 시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금을 다 쓴 곳도 많다”며 “팀은 있지만 경영 지원 등 몇 명의 인원만 남아있을 뿐 더 이상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없는 상태인 곳을 여럿 봤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ICO(암호화폐 발행)로 투자를 유치한 개발 업체가 사실상 사업을 포기하자, 투자자들이 사기죄로 경찰에 신고하는 건도 여럿 있다고 한다.

한 블록체인 협단체 임원 역시 “200~300억 규모로 투자를 받아둔 것이 20~30억이 되니까 개발 불능 상태에 빠진 업체가 많다"며 “일부 업체는 투자자들이 사기죄로 신고해 곤욕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에 따르면 암호화폐 투자를 빙자한 유사수신 신고 건수는 2017년과 비교해 2018년 24.9%로 대폭 증가했다. 2018년 전체 유사수신 신고건수 중 암호화폐를 빙자한 신고건수는 그중 68%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다.

암호화폐 거래소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국내 주요 거래소인 빗썸과 코빗은 각각 지난해 12월, 지난 1월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암호화폐 거래량 감소로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을 블록체인 산업의 위기로 해석해야 할까. 블록체인 업계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 블록체인 업계에선 부실한 기업은 사라지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조직을 효율화하고 비즈니스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더불어, 기술 개발에 착실하게 매진해 온 업체들이 하나둘 중간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이에 버블 이전과 비교해 확실히 기술과 서비스 측면에서 진일보를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오스의 글로벌 태스크포스 멤버인 김나은 씨는 “기술적인 측면으로 보면 (블록체인 업계의 현 상황은) 크립토 윈터가 아니다”라며 “3·4월에 메인넷 런칭을 준비하는 프로젝트들도 많고, 이런 업체들은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TTC프로토콜 장채선 이사는 “개별 기업들이 ‘사업’에 위기를 겪고 있을 순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며 “사업의 위기는 맞지만 산업의 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최고점을 찍었을 당시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가격을 확인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사진=빗썸)

플레이어 다각화-ICO 건전화 긍정적 시그널

블록체인에 과도한 기대가 집중되면서 생긴 부작용들이 크립토윈터를 지나며 서서히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다. 업계가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다.

먼저, 과거처럼 아이디어만 가지고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이제 개발 능력과 기업 운영 경험을 가진 기업들이 산업 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싱가포르 블록체인 컨설팅 업체 젠가K 안태현 대표는 최근 분위기에 대해 “예전에는 전혀 비즈니스 경험 없는 사람들도 펀딩을 받았다면 최근엔 이미 비즈니스를 잘하고 있고 수익 모델도 있는 곳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어 훨씬 시장이 정화된 느낌이 든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블록체인이 가지는 가치와 효용을 보고 채택하려는 기업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블록체인 전문 기업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의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산업 주요 플레이어로 등판했다. 삼성전자가 최신 전략스마트폰 갤럭시S10에 암호화폐 지갑을 탑재했고, 세계 최대 투자은행 JP모건도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할 계획이라는 굵직한 소식도 나왔다.

블록체인 기업 전문투자업체 해시드의 김균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갤럭시S10 암호화폐 지갑 탑재 의미에 대해 “삼성이 가볍게 보고 시작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갤럭시는 삼성의 메인 프로덕트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JP모건 코인에 대해 김나은 씨는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들어왔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광풍이었던 블록체인 투자 열기도 이제는 가라앉아, 투자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신중하게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안태현 대표는 투자 환경에 대해 “올해 큰 규모는 아니지만 새로운 크립토 펀드들이 생기고 있어서 (투자 환경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쉽게 투자 받을 순 없을 것이다. 투자 프로세스가 복잡해지고 있고 듀딜리전스(기업조사)를 까다롭게 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도 무턱대고 큰 돈을 받기 보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밴처캐피탈을 찾는 경향이 커졌다. 해시드 박시은 마케팅 매니저는 “실리콘밸리의 자신있는 팀들은 아무 VC한테나 투자를 받지 않는다”며 “블록체인 프로젝트 팀들도 돈만 많은 펀드는 거르고, 프로젝트 성장에 분명히 기여할 수 있는 VC에게만 투자를 받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용화 서비스 속속 등장…디앱 사용자 기반도 확장

실제로 상용화되는 서비스들도 속속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갤럭시S10에 암호화폐 지갑과 탈중앙화애플리케이션(디앱.DApp)이 탑재되면서 블록체인 서비스가 더욱 빠르게 상용화될 거라는 전망이다.

대표적인 상용화 서비스로는 코스모체인의 코스미가 주목받고 있다. 코스미는 뷰티정보 공유 디앱으로 뷰티 관련 리뷰를 남기면 암호화폐 코즘을 보상으로 주는 서비스다. 코스미는 현재 실제 서비스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갤럭시S10에 탑재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더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사용 가능한 서비스들을 선보일 거라고 전망한다. 더불어 실사용자 중심의 블록체인 커뮤니티가 성장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장 먼저 킬러 디앱이 될 분야는 게임이 주목받고 있다. ‘이오스나이츠’, ‘엔드리스 다이스’, ‘트론벳’, ‘프라 캔디박스’ 같은 게임 디앱이 이미 서비스되고 있다. 이오스나이츠는 국내 기업 바다 스튜디오의 신명진 대표가 개발한 이오스 기반 RPG 게임으로, 일간 이용자 수는 5천여 명이다.

김균태 CTO는 “작년 중반부터 진성 디앱 유저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게임 부분에서 인기있는 게임 디앱들은 유저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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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①블록체인 혹한기...기업은 망해도 기술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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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블록체인 기업이 더 망해도 괜찮은 이유

③블록체인 시장 봄맞이를 위한 5가지 해결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