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AI, 의료산업 패러다임 바꿀 수 있다"

[인터뷰]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디지털경제입력 :2019/01/21 10:21

국내 최대 병상 규모를 갖춘 의료기관 서울아산병원에서 3D프린팅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의료 혁신에 앞장서는 인물이 있다. 그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를 위해 3D프린팅 기반 의료 기술 관련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의료영역에 정보통신기술(ICT) 도입 필요성을 강조해 온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3D프린팅, AI 같은 신기술이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3D프린팅은 의료산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AI는 매우 혁신적인 기술로 의료를 다시 디자인(redesign)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사진=김남국 교수)

김 교수는 직접 환자를 진료하거나 수술을 집도하는 의료진은 아니다. 융합의학과 교수로서 의료영상을 활용해 환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솔루션을 연구해왔다. 서울아산병원 소개글에도 “다양한 환자 질환 영상을 이해하고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AI와 3D프린팅을 이용한 맞춤형 수술도구 및 재료 개발 등을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김 교수는 “1996년 석사과정 때 의료영상 처리 분야를 알게 된 후 석사 전공인 CAD/CAM을 접목한 의료영상 처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3D프린팅을 적용하게 됐다”며 “이후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에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영상처리를 하면서 질환의 다양성을 극복하기 위해 AI를 적극 활용하게 됐다”며 첨단 기술 활용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말했다.

■ 국내 첫 3D프린팅 신장암 모형으로 수술 성공

3D프린팅이 의료 영역에서 특히 주목 받는 까닭은 수술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 교수 역시 이점에 집중해 2014년 국내 최초로 모의 수술을 위해 환자 맞춤형 신장암 모형을 3D프린터로 제작했다. 김 교수와 동료 의료진들은 모의 수술을 통해 신장의 중요 혈관을 살리는 수술 방법이 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실제 수술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수술 결과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유럽비뇨기학회에서 발표됐다.

지난 15일엔 선천성 심장기형 환자 심장과 똑같은 모형을 이틀 안에 설계, 3D프린팅하는 기술 개발 성과를 업계에 알렸다. 그동안 심장 모의수술에 필요한 모형은 캐나다에 의뢰했으며 제품을 받기까지 최소 한달이 걸렸다.

김 교수는 3D프린팅 기술이 수술 문제는 물론 ▲대량 생산과 소재 한계를 넘은 환자 맞춤형 의료기기 제작 ▲의료기기와 소재 유통 혁신 등 면에서 향후 의료 영역에 주요 기술이자 보편적 의료 기술로 자리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AI는 전반적인 의료시스템과 의료 교육시스템에 자연스럽게 도입될 것이란 시각이다. 당장 김 교수만 하더라도 병리, 수술장, 마취과, 중환자실, 응급실, 소화기내과 등 다양한 과와 협력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과도 AI 기반 솔루션을 공동 연구 개발하거나 기술 이전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코어라인소프트와 COPD 진단에 필요한 폐 영상을 AI 기반 분석 자동화 솔루션 ‘에이뷰 메트릭(AVIEW Metric)’를 공동 개발해 지난해 말 북미영상의학회에서 공개했다.

김 교수의 15여년간 연구 결과가 활용된 해당 솔루션은 업계 오랜 난제였던 기관지와 폐엽 분할을 완전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다. 에이뷰 메트릭렁과 7년 경력 전문가가 진단 수행 결과를 비교해보니 약 200여개 사례 중 8%만 재작업이 필요했다. 최종 정량지표에 적용한 결과에선 96%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김남국 교수와 코어라인소프트가 함께 개발한 AI 기반 폐 영상 완전 자동 분석 솔루션 ‘에이뷰 메트릭(AVIEW Metric lung)'.(사진=코어라인소프트)

김 교수가 이끄는 의료영상지능실현연구실(MI2RL)은 카카오브레인, 뷰노와 함께 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의료영상에서 장기, 질환 위치를 인지하는 AI 네트워크 E-Net과 장기와 질환 경계선을 그려 분할하는 P-Net AI 네트워크를 결합한 캐스케이드(Cascade) U-Net을 개발하기도 했다. 해당 솔루션은 지난해 10월 국제 인공지능 의료영상 분할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

김 교수는 “의료영상에서 장기 및 질환을 인식하는 영상분할(semantic segmentation)은 매우 중요한 분야로 향후 다양한 질환과 장기에 적용할 계획”이라며 “현재 치과용 (Cone Beam) CT AI 분할 알고리즘을 오스템 임플란트에 기술 이전하고 있다. 앞으로 코어라인소프트, 뷰노, 오스템 등 여러 회사와 협력해 국내 산학병 의료 AI 연구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주목할 AI 적용 분야에 대해선 “현재 가장 중요한 분야는 병리 영상이다. 마취과나 중환자실 등 시그널에 대한 AI 연구도 꼭 필요하고 곧 상용화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병원의 수많은 워크플로우와 동선, 행위 등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업계 성장 위해 정책 지원 활동 '활발'

김 교수는 3D프린팅, AI 같은 첨단 기술이 의료 영역에 하루빨리 도입돼 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함께 활성화되는 데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추진한 3D프린팅 이용 의료기술의 급여여부 평가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에 책임 연구자로 참여, 지난해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3D프린팅 이용 의료기술에 대한 급여, 비급여 대상을 확인하고 급여 평가 시 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평가원칙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가이드라인은 3D프린팅 의료기술 수가를 신청하는 연구자,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문위원단 자문을 받고 회사와 시민단체, 환우회, 의료진 들 입장도 반영해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 교수는 2016년부터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 헬스케어 분과 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의료기기 자문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김 교수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산업 성장 관련 핵심 화두인 의료보험 수가 적용에 대해선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업계에선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이 개발한 솔루션이 시장성을 가지려면 수가가 적용돼 병원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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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산업 진흥을 위한 방법으로 의료보험 수가를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전기자동차 보조금처럼 다른 자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더 큰 문제는 단일보험 체계와 행위별 수가제 때문에 (아무리 우수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이라도) 수가가 없으면 식약처 인허가를 받아도 환자에게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며 “향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에 대해) 신의료기술평가를 할 때 혁신의료기술 트렉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