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이상한 나라의 빅데이터

무엇이 데이터이고 아닌지에 대한 신중한 판단 필요

기자수첩입력 :2019/01/09 16:57    수정: 2019/01/09 18:03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는 아이들을 과자집으로 유인한 후 잡아먹는 마녀가 등장한다. 마녀의 속셈은 아이들이 굶주렸다는 사실을 이용해 제 배를 불리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마녀가 굶주린 아이들을 이용하지만,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외로운 청소년들을 이용한다. 지난 5일 SNS에서는 청소년 익명 고민상담 앱인 '나쁜 기억 지우개'가 화제에 올랐다. 앱 제작자가 한국데이터진흥원 데이터스토어에 앱을 통해 모은 청소년 고민 빅데이터를 50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앱 관리자는 소개문을 통해 24시간이 지나면 고민이 완전히 삭제된다고 홍보하고 있었기에 더욱 이용자들의 공분을 샀다. 나중에 업체는 '고민의 경우 앱에서는 지워지지만 관리를 위해 백업 데이터베이스에는 남아있다'고 해명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다음이다. 해당 앱이 이번 일로 아무런 과징금도 받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나쁜 기억 지우개 앱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 관계자는 "과징금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부과한다"며 "매출액이 없으면 과징금 금액도 없다"고 말했다.

나쁜 기억 지우개 업체에 따르면 해당 앱은 지난해 10월 한국데이터진흥원 데이터스토어에 등록된 후 한 건도 판매된 적이 없다. 매출액만을 기준으로 하면 과징금을 받을 일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금전적 이득 여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무엇을 빅데이터로 판단하고 판단하지 않을지의 문제다.

나쁜 기억 지우개 앱을 이용한 청소년들은 과연 자신의 고민이 '빅데이터'의 일부로 팔려갈 것을 알았더라도 고민을 올렸을까? 고민이란 지극히 내밀한 것이다. 익명으로 글을 올렸다면 그만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업체 측에서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수집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사용자의 위도와 경도까지 수집한 상황에서 과연 개인을 식별할 수 없다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지 의문이다.

앱 관리자는 또 "고민 글 데이터를 신뢰성 있는 기관에 연구나 통계 목적으로 판매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즉 관리자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연구대상 혹은 통계자료로 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법적으로 보면 이런 접근에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의적인 문제다. 앱을 사용하는 이용자에 대한 존중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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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정부 역시 데이터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다. 나쁜 기억 지우개 앱이 선정된 데이터진흥원의 데이터 바우처 지원 사업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데이터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기에 앞서 무엇이 사용 가능한 데이터인지 판단하는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번과 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