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7 단종...삼성전자 반전 드라마의 조건

원인규명·조직결속·생태계 지켜내야

디지털경제입력 :2016/10/14 07:42    수정: 2016/10/14 16:10

"애니콜은 삼성전자의 과거지만, 갤럭시는 현재이자 미래를 책임지는 브랜드다."

그룹의 한 관계자가 사상 초유의 갤럭시노트7 단종 결정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위기 상황을 걱정하며 언급한 말이다. 이는 노트7 사태의 불똥이 전체 갤럭시 브랜드로 옮겨 붙으면 안 된다는 우려를 표명한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어떤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원인 규명을 통해 브랜드 가치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각오와도 같다.

28년 휴대폰 신화를 써 내려온 삼성전자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배터리 발화로 시작한 악재가 '노트7 단종'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1위라는 명성과 프리미엄 전략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노트7이 출시됐을 당시 최고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터라 내상은 더 깊다.

당장에 하반기 주력 플래그십 모델이 빠지면서 4분기 매출과 차기작 준비에 골이 패이게 됐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노트7 단종으로 당장 매출과 연관성이 적은 중장기 개발과제들을 중단하고 부품·솔루션 등 대외 협력 개발과제들을 대폭 축소하거나 손을 떼는 등 국내 스마트폰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새로워진 갤노트7에서는 전화를 켜지 않고도 메모해 둔 것을 볼 수 있어 쇼핑 할 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씨넷)

■배터리 발화 원인 미궁?...'충전제어 불량' 가설 유력

우선 사상 초유의 제품 단종까지 이른 노트7 배터리 발화에 대해 원인 규명이 가장 시급하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13일 미국에서 유통된 노트7 전량인 190만대를 리콜한다고 발표했지만 배러티 발화 원인에 대해 '리튬이온 배터리 발화로 인한 소손 현상'이라고만 언급할 뿐 명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단종 발표 직후인 지난 12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모든 고객이 우리 삼성 제품을 다시 신뢰하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반드시 근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할 것을 약속드립니다"며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끝까지 밝혀내어 품질에 대한 자존심과 신뢰를 되찾을 것입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래야 다른 차기작(갤럭시S8)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업계의 배터리 발화 원인 추론은 분분하다. 1차 리콜 당시 지목된 배터리 자체 제조공정상의 문제보다는 제품 설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가장 유력시 되는 가설은 '충전제어 불량'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충전하면 열이 나고 스마트폰 온도가 올라간다. 그러면 올라간 온도를 감지해 충전을 막아줘야 하는데 PM회로 블럭이나 CPU 쪽에서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오작동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가설은 두 가지다. 먼저 갤럭시S7 엣지와 갤럭시노트7은 보드를 공유하고 있는데 노트7의 경우 펜 공간 추가와 배터리 설계 변경 등으로 보드공간이 좁아지고 PMIC(배터리 매니지먼트회로)블록 온도감지 센서가 충전량을 잘 인지하지 못해 과출력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또한 이번 노트7에는 완전 방전 뒤 충전 시간(70분)을 10~15분가량 줄이는 고속충전 하이 콘트롤러 차징이 새롭게 들어갔는데 스마트폰의 머리 역할을 하는 AP 안에서도 이를 제어하지 못해 과충전이 되고 배터리 온도가 상승, 결국 발화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에서 어탭터가 급속 충전이 아니라면 AP가 인식해 배터리에 명령을 내리고 배터리 충전이 끝났는지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며 "이것이 오작동 됐다면 충전 과정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수 있다"고 전했다.

만약 이같은 가설이 추후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각각 개발 파트별로는 문제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전체 보드상 설계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제품이 출시되면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셈이다. 설계검증을 통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오류를 기술적 소통 부재와 전체 컨트롤 타워에서 확인하지 못하는 실수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반복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배터리 발화 왜 못 잡았나?...경쟁 격화/R&D조직 피로도 쌓여

이번 단종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배터리 발화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를 둘러싸고 경쟁이 격화된 스마트폰 시장을 찬찬히 뜯어보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30년여에 가까운 오랜 싸움을 벌여왔다. 피처폰 시절엔 노키아, 모토로라를 잡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고, 스마트폰 시대에선 애플의 아성을 넘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해 왔다.

더구나 작년까지 중저가 폰에서는 중국에 쫓기고 프리미엄 폰에서는 애플 아이폰6에 밀렸다. 애플은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 중국의 추격이 거셌다. 스마트폰의 두뇌라고 하는 AP까지 개발하고 턱 밑까지 쫓아왔다. 샌드위치 신세라는 한탄과 '이젠 내리막뿐인가'라는 위기감이 컸다. 가만히 손 놓고 있다가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질 판국이었다. 그런 탓에 개발연구 조직을 향한 혁신을 앞세운 기술 한계에 도전하라는 특명이 여기저기서 울렸다. 치열한 가격경쟁에 따른 원가절감 압박도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었다는 전언이다.

이 같은 강박증이 내부 성과주의와 맞물리면서 조직의 피로감도 극도로 높아졌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생각해보니 이번 배터리 사태가 기술 한계치에 대한 무리한 요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쉼 없는 개발과 출시일정에 무선사업부 개발조직의 피로도 많이 쌓였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연구개발 내부 조직은 각 제품별로 단기 수행과제와 장기 수행과제로 나뉜다. 특히 매출과 연관된 단기 과제들을 수행해야 하는 조직들에게 기술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 주문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가 및 비용 절감 압박은 줄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체 제품 라인업의 30% 정도를 줄이고 비용 절감에 나선 바 있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밟지 않고 검증이 덜 된 상황에서 빠른 출시에만 신경 쓰다가 발생된 사고라고 생각 된다"며 "너무 성과주의에 집착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삼성, 스마트폰 생태계 보호 대승적 결단 내려야

노트7 단종 결정 직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당장 비용절감을 위해 신규개발 계약을 중단하고 장기개발 과제도 면밀히 다시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계열사 및 협력 부품사 구조조정 목표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무선사업부 소속 인력 재배치도 가속화하기로 했다. 마케팅 쪽에서는 이미 지난 4월 출시한 갤럭시S7 엣지를 전면에 내세워 노트7의 빈자리를 매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옥외광고 역시 갤럭시S7 엣지와 기어핏2로 교체 중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부품 및 솔루션 업체들이다. 예기치 못한 노트7 단종으로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또한 장기 과제개발을 함께 진행하던 솔루션 업체들도 날벼락을 맞았다. 모 업체의 경우 노트7 관련 영업 손실이 10억 단위가 넘는다. 스마트폰 생태계의 맨 끝단에 있는 이들 업체들에게는 올 겨울이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됐다.

협력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사와의 진행하는 개발 과제와 부품 연구 등은 중단하지 않는 결단을 내려야한다"며 "어려움을 겪는 몇몇 중소 업체들은 중국 업체와 손을 잡을 공산도 크고 그렇게 된다면 중국 스마트폰 경쟁력만 높아지는 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 반전 드라마 쓰려면...일등·성과주의 조직문화 돌아봐야

전 세계 휴대폰 산업에서 피처폰(일반폰)과 스마트폰 시대 모두를 관통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가 거의 유일하다. 한 세대를 뛰어 넘는 지속력(staying power)의 비결은 바로 품질제일 경영을 앞세운 스피드경영 전략이라는 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1990년대 질(質) 경영을 선언한 뒤 완성도가 떨어진 15만여대의 불량제품 화형식을 치르고 시커멓게 타 버린 잿더미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과거와의 단절을 맹세했던 임직원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갤럭시' 브랜드 역시 2007년 애플 아이폰 출시에 화들짝 놀라 '옴니아'의 참담한 실패를 딛고 위기 때마다 반전 드라마를 써 온 산고의 완성작이다.

삼성이 잘 하는 일은 세계 최고의 제조공정 기술로 가장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고 가장 빠르게 전 세계 곳곳에 공급하는 일이다. 솔직히 유연한 사고와 오랜 사회적 교육 과정이 필요한 소프트웨어(SW)는 잘 못한다. 그래서 조직문화가 경직되어 있다는 비판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삼성의 경쟁력이고 자본의 세계화 시대에 미국과 유럽, 중국 등 패권 국가에 뒤져 주도권을 잡지 못한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자 수단이다.

상명하복 등 경직된 조직문화로 따지면 삼성보다 현대 등 다른 기업이 더 심하고, 정부-공공, 교수집단 등 관료조직이나 학계도 만만치 않다. 물론 시대적 변화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미래 4차 산업 시대를 맞이하는 요즘 성과 제일주의의 내부 평가나 바텀업 보다 톱다운 방식의 소통의 폐해는 되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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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게는 성급함, 초조함, 서로에 대한 불신보다는 잿더미에서 다시 시작하는 결연함, 강건함의 자세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