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결국엔 가계 통신비만 높였다

[긴급진단] 단통법 보름, 무엇이 문제였나①

일반입력 :2014/10/15 17:23    수정: 2014/10/17 07:59

시행 보름째를 맞는 단통법이 상처투성이다. 대통령 공약 이행차원에서 가계통신비를 인하하겠다는 본래 법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든다’는 아우성만 들린다. 때문에 법이 시행된 지 겨우 보름이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부터 국회에서는 개정안을 내놓고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겠다며 정부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단통법이 소비자들의 부담만 배가시켰다는 원성이 이어지고 있고, 유통점들은 꽁꽁 얼어붙은 구매심리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고 하소연이다. 법 추진과 시행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떤 대안이 있을 지 4회에서 걸쳐 긴급진단한다.[편집자주]

이동통신시장에서 ‘호갱(호구+고객)’은 보조금 혜택에서 소외된 일부 소비자를 지칭하는 의미였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호갱의 의미는 ‘전 국민’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고가요금제에 가입하면 50~60만원씩 주던 보조금(이통사 지원금+제조사 장려금+대리점 지원금)이 9만원짜리 초고가 요금제에 가입해도 겨우 10만원 남짓으로 추락한 것이다. 단말기 보조금이 과거에 비해 절반, 아니 1/3 수준까지 추락하면서 단통법을 바라보는 민심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단통법이 시행에 들어간지 보름이 지났지만 이통3사가 공시한 지원금 역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장 많은 이용자들이 쓰는 6만원대 요금제를 기준으로 했을 때 '갤럭시노트4'에 지급되는 보조금은 SK텔레콤 6만8천원, KT 7만8천원, LG유플러스 7만5천900원이다. 출고가가 95만7천원인 갤럭시노트4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최소 87만9천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과거 최신 스마트폰을 거의 공짜 수준에 구매할 수 있었던 고객들로서는 탄식이 나올법한 상황이다.

■통신요금은 못 내리고, 보조금만 확 줄였다

단통법을 추진한 정책입안자들은 당초 가계통신비 인하에 초점을 맞췄다. 이통사들이 불법 보조금에 투입하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도록 만들면 통신비를 인하할 여력이 생기고, 보조금 경쟁을 못하는 이통사들은 가입자 유치를 위해 보조금에 쓸 비용으로 통신비를 인하하거나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통사의 지원금이 공개되면 그동안 보조금에 포함된 제조사의 장려금도 소비자들이 인지하게 돼, 제조사들이 출고가를 높여놓고 장려금을 주는 것이 아닌 애초에 출고가를 낮추는 유도 효과까지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보름이 지났지만, 소비자들이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결과는 단통법 제정 취지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월 10만원대 전후의 고가요금제를 써도 단말기 보조금이 적어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되는 비용은 2~3배 가량 늘어났다. 통상 소비자들은 통신비를 ‘이동전화 요금+단말 할부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계통신비 부담만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고가요금제에 가입해 이통사의 지원금 상한액을 받는 것보다 공기계를 구입해 본인에게 맞는 중저가 요금제에 가입하는 것이 이득이 됐을 정도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제도적 모순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같은 단말기를 미국, 일본 등 해외 이동통신 사용자들보다 더 비싼 가격에 구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통사 배만 불린다

단통법 시행 일주일동안 이통 3사의 일일 평균 가입자는 총 44만5천건으로 9월 평균 66만9천건에 비해 35%나 감소했다. 이중 신규‧번호이동 가입자는 각각 58%, 46.8% 급감했고, 기기변경 가입자만 29.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상 이동통신시장에서 신규‧번호이동 가입자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보조금이 실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조금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현재의 단통법 기조대로 시장이 유지된다면, 이통 3사는 현재 5:3:2의 황금분할 구조를 유지하면서 매년 수조 원씩 지출되던 보조금을 그대로 수익으로 확보할 수 있다. 단통법이 결과적으로 이통사의 배만 불려준다는 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은 단통법 시행 일주일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고가요금제 가입자에 대한보조금은 단통법 이전보다 줄어든 반면 저가요금제 가입자의 보조금 지급이 늘어나면서 하향평준화 됐다고 분석했다.

단통법 이전인 지난해와 올 상반기 이통사 평균 보조금이 20만3천원, 28만원이었고, 제조사의 장려금까지 더한 평균 보조금은 34만8천원, 39만1천원이었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에는 오히려 크게 축소됐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기조가 유지될 경우, 내년에는 보조금이 지난해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1만원 인하하거나 단말기 판매를 5% 줄이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순이익은 3.7%, 8.3%, 9.5%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국회에서 이통3사의 단말 할부금 및 요금제를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 평균 2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됐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에는 8만6천원으로 약 6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체감 통신비는 오히려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단통법이 이통사의 보조금 규모를 하향평준화 시키며, 이통사들로서는 덜 팔수록 이익이 많이 남는 구조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제조사‧유통점 극한 상황 몰려

단통법이 이통 3사에 큰 이득이 되고 있다면 제조사와 유통점들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 이는 단통법 시행 이후 일주일 동안 신규‧번호이동‧기기변경 가입자 추이를 살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기간 동안 신규‧번호이동 가입자는 58%, 46.8% 급감했고, 기기변경 가입자는 29.7% 증가했다. 이는 새 휴대폰을 구입하는 이들은 크게 줄어든 반면, 중고폰 등을 구입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실제, 중고폰 가입자는 지난 9월 일평균 2916건이었지만 단통법 시행 첫날인 10월1일에는 384건, 2일 4070건, 6일 7022건, 7일 4878건 등으로 일평균 61%나 증가했다.

제조사들은 울상이고 생계가 걸려 있는 유통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올 상반기 이통3사의 45일간 영업정지로 한바탕 홍역을 치룬데다 단통법으로 손님이 뚝 끊기면서 중소 판매점의 경우,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송호창 의원은 “단통법 이후 신규 가입률은 58% 급감했고 대리점 판매량도 60%로 떨어졌다”며 “국민들은 분노하며 단통법 폐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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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방위원장인 홍문종 위원은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 한 대도 팔지 못하는 상가가 속출하고 있고, 미래부 장관이 현장방문을 나갔던 서초동 국제전자센터에도 5곳이 문을 닫았다고 상인들이 전해달라는 말을 했다”며 “단통법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전국 2만5천개 휴대폰 매장이 문을 닫을 판이라 살려달라고 한다”고 질타했다.

실제, 방송통신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전국이동통신협회 박희정 사무총장은 “보조금 대란은 없어졌지만 매장 손님은 뚝 끊겼다”며 “단통법에 대해 손님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조금 있으면 가계통신비가 인하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언제인지는 모른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