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지스타, 부산을 떠나자

게임 업계 여론 확산 분위기

기자수첩입력 :2014/06/25 11:53    수정: 2014/06/25 15:00

5년 연속 부산에서 열린 게임 전시회 ‘지스타’의 개최지를 경기도 또는 서울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뜨겁다.

계약상 올해 부산에서 개최되더라도 게임사들이 자발적으로 지스타에 불참해야 한다는 여론도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게임규제 찬성론자인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자에 대한 ‘무언의 시위’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동안 정부로부터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아온 게임사들이 자존심만큼은 지키자는 뜻이다. 지난 4일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직을 놓고 새누리당 서병수 당시 후보와 무소속 오거돈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저마다의 공약이 발표되고 거센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게임인들은 오거돈 후보가 내놓은 부산 게임산업 진흥 정책 공약에 박수를 보냈다.

반면 서병수 후보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해 지스타 보이콧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이 바로 지금의 서병수 당선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 해운대 기장갑 의원이던 그는 일명 ‘게임규제 종합선물세트’로 불리는 손인춘법에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며 게임인들에게 큰 배신감을 안겼다.

이 때문에 작년 위메이드를 시작으로, 게임사들의 지스타 보이콧 선언과 경계심이 촉발됐다. 지스타 한 번 개최로 1천500억원에 달하는 경제효과와 2천500여명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수혜를 입어온 부산시가 겉으로는 이익을 챙기고, 국회에선 칼을 들이댔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게임사들은 지난해 지스타 보이콧 사태를 다시 한 번 상기해봐야 한다. 지스타 보이콧이 확산되자 당시 서병수 의원 측은 위메이드 대표를 직접 만나겠다고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결국 한 번 엉켜버린 지스타 보이콧 분위기는 행사 끝 날까지 풀리지 않았다.

지난해 지스타는 많은 관람객이 찾고 역대 최대 수출 규모의 기록을 세웠지만 실제 평가는 싸늘했다. 기업 간 수출 상담과 계약이 이뤄지는 B2B 전시관은 성공했으나 관람객들이 찾는 B2C 전시장은 볼거리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주요 기업들이 불참했기 때문인데, 한마디로 ‘속 빈 강정’이라는 평가였다.

올해 역시 지스타가 부산에서 개최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작년에 이어 지스타는 ‘축제’가 아닌 기업들의 ‘비즈니스 행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진출을 노린 게임사만 참가할 뿐, 관람객과 호흡하려는 게임사들은 눈치만 보다 뒤로 숨을 수밖에 없다.

최근 만난 A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연거푸 불참했고 출품작도 있어 올해 지스타 참가를 고려했지만 분위기를 좀 봐야겠다”면서 지스타 참가 의지가 한 꺼풀 꺾였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과거에 비춰봤을 때 타사들은 올해 지스타 참가를 검토할 때 A 게임사의 참가 여부를 가장 먼저 묻고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참가가 유력시 되던 A게임사의 불참이 확정되면 줄줄이 “그럼 우리도”를 외칠 것이 자명하다.

부산시가 현재의 지스타가 되기까지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여온 건 사실이다. 많은 모객으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낸 것도 인정받을 부분이다. 국제게임전시회란 타이틀에 걸맞은 위상을 어느 정도 갖춘 것도 부산시 도움 없이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시는 시장 당선자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과거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에 게임사들이, 또 게임인들이 가진 반감을 존중해주고 다 키운 자식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더 큰 발전을 기원하며 지스타를 놓아줘야 한다.

아직은 인프라가 부족해 보이지만 성남시가 지스타에 러브콜을 보냈다. 고양시 역시 이미 지스타를 개최해본 경험이 있어 새로운 지스타 개최지로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구나 두 곳은 새로운 경기도지사에 남경필 게임 협회장이 당선돼 경기도 차원의 든든한 지원도 가능하다.

서울시도 박원순 시장이 사람과 문화가 중심이 되는 도시를 계획하는 만큼 문화 축제인 지스타 개최를 노려볼만 하다. 서울시는 더 많은 관람객들이 편하게 찾고, 해외 관계자들 역시 보다 쉽게 행사장을 찾을 수 있다는 최대 이점을 안고 있다. 숙박·교통·관광·편의시설 모든 것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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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산업진흥원 측은 지스타 서울 개최에 “단기적으론 어렵지 않겠냐”면서도 “건의해보겠다”는 말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스타, 부산을 떠나자. 또 한 번의 도약과 성장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다. 상처받은 국내 게임사들의 자존심도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