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팍에 힘주는 오라클, 왜?

일반입력 :2013/04/04 08:36    수정: 2013/04/04 08:44

오라클이 유난히 유닉스 전용 프로세서에 힘주는 모습이다. 솔라리스, AIX, HP-UX 같은 유닉스보다 리눅스나 윈도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때 오라클의 행보는 의아할 정도.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강조하는 오라클의 전략을 감안하면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오라클은 지난달 27일 스팍 T5와 M5 프로세서를 새로 선보였다. 새 스팍칩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소개됐다. 오라클은 새로운 스팍칩의 공개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특별행사를 열었고, 래리 엘리슨 회장이 연사로 나섰다.

스팍 T5는 16코어, 3.6GHz 클럭속도, 소켓당 16개의 메모리뱅크 등을 지원한다. 8소켓 제품의 경우 최대 128코어, 4TB 메모리를 갖춘 시스템이다. 스팍 M5는 6코어, 3.6GHz 클럭속도, 소켓당 32개의 메모리뱅크 등을 자랑한다. 최대 96개 프로세서까지 확장가능한데, 현재 192코어, 32TB 메모리 제품만 출시됐다.

하드웨어 스펙만 놓고보면 괴물급이다. 오라클은 IBM의 최고사양 제품인 파워7 제품군과 비교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동시에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와 자바를 가장 빠르게 구동하는 컴퓨터’라고 강조했다.

■스팍은 HW-SW 결합의 키

오라클이 스팍을 세계서 가장 빠른 프로세서로 주장하는 근거는 하드웨어 개선보다 소프트웨어와 결합 부분이다. 오라클은 실리콘에 소프트웨어 기능을 집어넣어 애플리케이션 구동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스팍은 SoC를 통해 DB 암·복호화와 DB 쿼리 가속, 자바 가속, 데이터 압축 및 해제 등을 프로세서 하드웨어 상에서 처리한다. 래리 엘리슨 회장은 “이는 오라클 SW 구동 시 CPU 코어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 시스템 성능을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오라클은 2009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 후 하드웨어와 SW의 결합을 강조해왔다. 애플처럼 하드웨어와 SW를 긴밀하게 결합함으로써 전반적인 성능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오라클SW를 SoC로 지원하는 스팍은 HW-SW 통합전략을 위한 핵심인 셈이다

HW-SW 통합의 맥락 속에 처음 나온 결과물은 엔지니어드시스템이다. x86 환경에 기반한 엑사데이터, 엑사로직 등도 오라클DB, 웹로직 등 오라클SW 구동에 가장 빠른 성능을 제공한다는 장점을 앞세워 시장에 나왔다.

스팍과 비교하면, 엔지니어드 시스템의 HW-SW 결합 방식은 좀 더 크고 복잡하다. 엔지니어드 시스템은 x86 프로세서를 오라클 마음대로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시스템 구성 요소들을 변주함으로써 성능을 높인다. 반면, 스팍 기반 시스템은 프로세서 자체를 변경해 성능을 높일 수 있어 최적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확실히 오라클의 선택은 합리적인 판단이다. 전세계 DB시장을 장악한 오라클DB를 보유했을 뿐 아니라, 자바 역시 오라클의 소유물이다. 기업 태반의 시스템이 오라클DB와 자바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그를 가장 빠르게 돌리게 해주는 하드웨어는 매력적이다. 거기에 가격적인 혜택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개방으로 가는 시장환경, 최적화의 경쟁력은?

오라클과 마찬가지로 IBM 역시 자체 프로세서인 파워칩 생산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IBM의 DB2, 웹스피어 같은 자사 SW제품군의 성능을 높이는데 파워칩은 매우 용이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IBM은 프로세서 개발단계부터 SW개발팀과 긴밀히 협력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되면, 오라클의 스팍과 IBM의 파워 간 경쟁은 오라클DB와 IBM DB2의 대결구도처럼 보인다. 당연히 오라클DB가 전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했으므로, 오라클 스팍의 쉬운 승리를 예상할 수 있다.

래리 엘리슨 회장은 “그동안 IBM 파워가 유닉스 시장을 장악했지만, 이제 오라클이 더 뛰어난 하드웨어를 갖게 됨으로써 IBM의 독주는 끝났다”고 밝혔다. 오라클 SW 시장에 오라클 하드웨어를 집어넣을 일만 남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오라클의 전략은 생각보다 성공을 확신하기 어렵다. 오라클을 둘러싼 컴퓨팅 시장이 하루하루 급변하는 탓이다.

일단, 인텔의 x86 프로세서인 제온도 현재 AES-NI, 인텔 TXT 같은 기능을 통해 데이터 보호 부분을 하드웨어 단에서 처리한다. 오라클DB뿐 아니라 어떤 SW를 사용하든 더 적은 비용으로 시스템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개방적인 플랫폼에서 제공되기 시작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음은 오라클DB의 독주시대가 영원할 것이냐다. 오라클의 DB사업은 점점 신규 라이선스 매출보다 업데이트 및 유지보수 매출의 비중이 많아지는 추세다. 최근엔 기업들의 DB 라이선스 구매가 회사 내 조직단위로 이뤄지면서, 전체적인 단일구매 규모가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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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오라클DB의 여러 대안 솔루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DB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오라클 DB에 최적화된 스팍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인 것이다. HW와 SW 최적화란 경쟁력은 시장 독주 체제를 벗어나면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이 부분에서 IBM 역시 피해자다.

오라클 SW 고객사에만 공급해도 탄탄대로를 겪을 것이라는 오라클 하드웨어 사업은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오라클SW 고객사가 하드웨어를 교체하면서, 오라클 SW 교체까지 고민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탓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