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즈니악, 여전히 중요 인물...8가지 이유

일반입력 :2013/09/05 14:01    수정: 2013/10/25 08:11

이재구 기자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창업자가 여전히 IT업계에서 어딜 가나 중요한 인물로 대접받는 이유는 무얼까? 그가 애플을 창업한 약 40년 전에 오늘날 우리가 쓰는 PC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그가 여전히 중요한 인물로 대접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프라이버시 및 자유언론 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민간인의 목소릴 대변하는 단체 전자프론티어재단(EFF)창설을 지원했다. IT 초창기 인물로서 여전히 IT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활동을 북돋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교인 고향 고등학교에 계속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4일 워즈니악을 여전히 IT업계의 중요한 인물로 여기게 만드는 요인으로 그의 업적과 함께 이어진 자선활동, 기부,사업부문에서의 왕성한 활동 등 8가지를 꼽았다.

무엇보다도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의 심장이었던 스티브 잡스와 함께 PC시대를 연 애플의 두뇌다.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또다른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기술에 몰두하는 친근하고 겸손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잡스는 마약 LSD를 즐겼지만 워즈니악은 조크가 녹음된 통화서비스인 다이얼조크 전화서비스를 즐겼다.

이런 상반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면서 초기 애플에 믿을 수 없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잡스가 비할 바 없는 열정으로 회사를 차리고 물건을 팔려 했지만 워즈니악은 그 이전에 최초의 현대적 PC를 만들어냈다. 오늘 날의 컴퓨터는 그가 만든 최초의 PC인 애플2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여전히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컴퓨터가 만들어진 지 30여년이나 됐음에도 여전히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가?

워즈는 자선, 기술,사업관련 부분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최초의 프로그램 가능한 만능 리모콘을 만든 것(1987)을 비롯, 전자프론티어재단(ETF)의 창설에도 기여했다. 워즈니악은 지난 1990년 이 재단이 굴러가도록 초기 자금을 댄 인물이다.

EFF는 IT업계의 기술 발전에 따라 촉발되고 있는 프라이버시,자유 언론(검열문제), 디지털 권한 등에 대한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옹호하고 정부의 규제책에 대해 비판하는 그룹이다.

그는 여전히 IT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지난 2009년 퓨전 아이오(Fusion-io)라는 회사에 합류해 최고 과학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퓨전아이오는 HP,IBM.델같은 회사와 파트너관계를 갖고 있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olid State Drive)기술 회사다. 지난 2010년엔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2번째로 유망한 벤처기업으로 선정됐다.

워즈니악은 때론 기술회사를 재창조하는 주인공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는 길 아멜리오 전 애플CEO, 엘런 헨콕과 함께 어퀴코테크놀로지를 세웠고 지난 2006년 증시에 상장해 1억5천만달러를 모았다. 이후 지주회사가 돼 작은 유망 IT기업들의 인수에 나서고 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0년 워즈니악은 자신이 창업을 도운 구글과 관련, “구글의 안드로이드 OS가 결국 애플의 iOS를 넘어설 것”이라는 유명한 예언을 한 바 있다.

워즈니악의 관심사는 IT 기술,사업 등에만 집중돼 있지 않다. 꽤 돈이 많은 그는 자선사업에도 만만찮게 신경을 쓰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86년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컴퓨터를 사업,음악,예술 등에 적용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워지상(Wozzie Awards)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자신의 고향 고등학교에 돈을 기부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관련기사

이 모든 증거는 워즈니악이 전방위적으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는 겸손하다. 애플 고객들과 함께 애플의 최신 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