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T서비스업계 숙제, 해외수출 아니라 진출"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

컴퓨팅입력 :2019/05/23 12:07    수정: 2019/05/23 12:08

"한국 IT서비스 업계나 사업자들에게 해외진출은 가장 아픈 부분이다. 타국에서 현지에 진출할 한국 회사를 찾아온 적이 있다. 사업자금, 제품판로 지원할테니 해외진출 하라고 얘기하는데, 우리 쪽에선 '(조달사업) 예산이 얼마냐'고 묻더라. 해외진출과 '해외수출'은 다르지 않나."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가 지난 14일 IT서비스 업계 현안을 주제로 한 인터뷰 중 사업자들의 해외진출 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의 IT서비스 산업계가 해외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글로벌 트렌드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기회가 여전히 열려 있다면서도, 타국 공공조달 사업을 수주하는 것은 '수출'일뿐, 업계 숙제인 '진출'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채 전무는 인터뷰를 통해 IT서비스업체들이 해외진출에 부진한 배경뿐아니라 국내서 맞딱뜨리고 있는 문제와 관련된 협회 입장도 밝혔다. 지난해 개정 근로기준법 발효로 적용되고 있는 주52시간 근로제가 회원사들에게 불법을 강제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공공정보화 사업에 고착화된 예산 배정과 사업 관리 관행의 부당함도 주52시간 근로제의 실현 가능성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

채 전무와의 인터뷰를 아래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 최근 상용 소프트웨어 업계 해외진출 도전이 활발한데, IT서비스 업계는 어떤지

"업계에 가장 아픈 부분이다. 해외진출 당연히 해야 한다. 과거 전자정부 투자가 활발했는데, 업계가 R&D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 1990년대 전세계 컴포넌트 주도 개발 붐이 일었고 우리도 그 시기를 겪었다. 하지만 R&D보다는 매출 올리는 데 주력하면서 컴포넌트화를 실패했다.

IT서비스를 우리는 노동집약적 업종으로 생각하지 않나. 그럼 안 된다. 모듈화하면 노동집약적일 수가 없다. 기본 틀을 그대로 가져가되 업종의 특성에 맞게 컴포넌트화, 모듈화를 해 놓으면, (노동집약적으로 안 해도) 된다. 세계 시장에서 컴포넌트화 유행 후 컴포넌트 기반 개발(CBD) 방법론이 만들어졌는데 우린 그 때도 실패했다. 컴포넌트가 없어서.

사업자가 비즈니스 분석해 주고 개발해 주는 게 과거엔 재단사가 치수 재고 옷 맞춰 주는 것과 비슷했다. 모듈화는 매번 일일이 치수 재고 새로 맞춤옷을 지어준 거라면 모듈화는 이미 만들어놓은 몸통, 팔, 다리부분을 길이나 색상이나 소재 등 파악해서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생산성이 높아지는데, 우리는 지금도 난개발, 통개발 하고 있다. 지금 (난개발, 통개발하는) SI만 갖고 해외진출 쉽지 않다."

-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까

"노력하면 가능성이 있다. 어느 나라든 전자정부 시스템은 필요하다. 기존 사업자들이 전자정부사업 많이 했는데, 재투자 여력이 있을지 몰라도 컴포넌트화하면 된다. 지금도 비즈니스 분석이나, 디지털화 방법론같은, (구현 작업의) 앞단 업무는 우리도 가능하다.

다만 다른 데선 만들어놓은 모듈을 갖고 개발하면서 중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가 생긴 모듈을 찾아 해결하면 될 때, 우리는 단계별 문서화가 잘 안 돼 있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게 개선되면 해외진출 가능하다.

또 하나 얘기하자면, 해외 진출과 수출은 다르지 않나. 중동, 아랍에미리트에서 현지 진출할 한국 업체를 찾아 온 적이 있다. 국가 차원에서 넥스트 오일머니 산업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에서 스마트 교육, 유헬스, 그런 분야 사업을 꾸릴 회사를 소싱하려고.

타국 정부는 '벤처라도 좋다, 와서 사업하면 집 지어주고, 자금 지원해 주고, 제품 나오면 아랍에미리트(정부) 이름으로 아프리카든 어디에든 판매해 주겠다' 했다. 한국에서 한국 회사가 우리한테 와서 일 해 달라, 우리에게 가르쳐 줘라' 이런 얘기였다.

그 사업 설명회에 대기업도 참석하고 했는데 담당자가 '(구매) 예산이 얼마나 되냐'고 묻더라. 거긴 '해외진출'을 얘기하는데 우리는 '수출'을 얘기한 거다. 하지만 우리가 수출하겠다 하더라도 거기서는 IBM, 액센츄어 얘기 하면서 '(한국에서 아니라도) 살 것 많다'고 얘기한다."

- 국내에선 주52시간근로제 대응이 급하다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실험적으로 지난해 대기업에 주52시간근로제 적용됐다. 타이트하게 작업관리를 해 생산성은 좋아졌는데, 유휴인력을 줄이게 된다. 경력직은 줄이고, 52시간 겨우 맞춘다. 반면 신입사원은 40시간에 맞춰야 하는데 시킬 일이 없다. 그럼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거나 안 뽑게 된다.

반면 대기업 아닌 곳은 야근수당, 휴일수당으로 급여 수준을 올려 놓은 건데, 이게 없으면 (직원입장에선) 급여의 20~30%가 당장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기업이 100의 월급을 주던 일을 줄여서 80짜리 일자리로 만들면, 거기 사람을 뽑더라도 나머지 20만 받겠나. 80짜리로 만들기 위해 기업은 60을 더 투자해야 한다. 당장 수익이 늘지 않더라도. 근로자 처우 개선,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정책 취지는 좋다. 그런데 먼저 기업에게 그걸 수용할 자원, 자본이 있어야 된다.

서울과 주요 도시 생활 수준만 놓고 보면 우리가 선진국 수준이라 볼 수도 있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아니다. 부의 편중이 심하다. 누구든 주52시간, (초과근로 없이) 주 40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하고 싶은 걸 하면 좋은데, 그걸 할 때 드는 돈은 누가 대 주겠나. 돈이 없다."

- 그런 상황은 IT서비스업종에만 문제는 아니지 않나

"우리는 4차산업혁명을 이뤄야 하는 입장 아닌가. 판교테크노밸리같은 곳에 52시간근로제 잣대를 대 보면 다 불법이 될 거다. 서울시내 대형 건물들, 오후 6시 퇴근해도 52시간 겨우 맞추는데 7시, 8시까지 일하는 곳들은 불법근로 하고 있을 가능성 높다.

원칙이 있되 바쁘면 일을 해야지 않겠나. 365일 내내 매일 12시간 일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바쁠 때가 있지 않나. 융통성을 줘야 한다. 유연근로제면 유연성 늘릴 수 있게. 선택근로 정산기간을 6개월로 만들어 주면 (연장근로 포함 1주 근로시간을) 평균 52시간에 맞출 수 있다. 4개월 야근하고 4개월 쉴 수 있는데, 1개월 정산기간으로는 못 한다. 초과근로를 보름만 하라는 건데, 어떻게 맞추나.

결국 중소기업 다니는 근로자가 일을 더해서 돈을 더 받겠다는 선택을 못 하게 만들었다. 먹고 살려고 더 벌려면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한다. 주52시간근로제 의미 없고 이렇게 작업장만 달리 해서 100시간이라도 일해야 한다는 사람에겐 근로시간 상한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면 근로시간을 제한해 근로자 건강권, 휴게권을 보장한다는 법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 아직 법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 SI 하도급업체, 대기업 2차 이하 협력사 쪽은 어떤가

"하도급이든 아니든, 어차피 내년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내후년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다만 일은 해야 하고 근로기준법 안 지키면 큰일 난다.

지금 하도급 업체 중 300인미만 규모 협력사 많다. 300인 이상 규모 사업체에서 '나는 일 안 할테니 (하도급업체에) 밤새워 해라' 하는, 편법이 나올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하도급 업체를 (법이 모든 규모 사업장에 확대 적용된 후) 4인 규모 기업으로 쪼갤 수도 있다.

또 하나는, 특정 핵심업무 맡고 있는데, 철야 하면서 초과근로하는 사람들, 소수 전문직 종사자들을 하도급으로 돌릴 수 있다. 다른 업체에 못 주는 핵심업무라고 하면 '우리 직원'이라면서 사내 하청 형태로 바꾸든지. 법을 안 바꾸면 그런 게 생길 거다."

- 결국 적게 일해도 먹고 살 만큼 버는 환경으로 가기 위한 과정 아닌가

"마감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쪽에서 IT예산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에 써야 한다. 모든 정보화 프로젝트를 그 안에 끝내야 한다. 예산이 빨라야 3월, 4월에 발주된다. 그걸 12월말에 끝내야 한다. 1년짜리 일거리를 7~8개월에 마쳐야 한다.

단순히 셈해도 5개월치 초과근로가 나온다. 정부가 이렇게 초과근로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적정기간이 얼마다 하는데, 그걸 12월 안에 할 수가 없다. 기간이 짧다고, 사람을 많이 투입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적게 일하는 구조가 되려면) 5월에 일을 시작했다면 내년 4월까지는 하게 해 줘야 한다. 4월 30일까지 프로젝트 관리해서 결과물 납품하게. 상식적인 요구다. 그런데 공무원은 이걸 절대 안 한다. 단순 이월이 아니라 '사고 이월'이라고 사유서 쓰고, 기재부에 미리 허락맡고, 감사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정보화 사업 발주처가) 적정기간이 12개월이면 그걸 맞춰 주든지, 적정기간을 넘기면 안 된다고 하면 일의 양을 줄여 주든지, 줄이지 못하면 정상 업무로 가능한 '반제품'밖에 못 줄 텐데, 그 나머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후속사업 예산을 따로 편성해 주든지. 근데 안 준다."

- 정산기간을 6개월로 늘려야 한다는 이유는 뭔가

"지금은 (예산 나오기 전에) 계약도 안 했는데 선투입하면 그것도 불법이다. (프로젝트 수행사업자에게) 제도적, 합법적으로 적정시간을 보장해 준다면 어느 정도는 (주52시간근로제 대응이) 가능하다. 프로젝트 앞 단계에서 적정기간으로 진행하더라도 뒤에서 업무량 많아진다.

테스팅, 납품하면 오류 나오고, 피드백 주고, 철야 해야 한다. 11월, 12월에 철야 하면서 난리친다. (개발자가) 3개월 빡세게 철야 해서 납품 끝내면 바로 (연속으로) 투입이 안 되니 회사에서 3개월 휴가 주면 되지 않나. 그럼 근로자도 철야하면서 별도 수당도 받을 수 있어 좋은데, 지금은 (최장 1개월이라) 그게 안 된다.

정부는 국민(인 공공정보화 수행사업자) 희생을 강요한다. 국민이 정당한 이익 남기고 재투자해 기술 향상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점점 더 열악하게 한다. 적정대가 문제만 해도 그렇다. 모 사업 ISP를 사전심의할 땐 10억짜리였는데 2억짜리로 낸다. 본사업 전에 확보한 예산이 그것 밖에 안 된다고 좀 희생해주면 안 되겠냐는 식이다. 너무 구국적인 사고 아닌가.

적정대가 예산 수립도 사업 정상적으로 끝냈을 경우만 고려하고 중간의 과업범위 변경부분은 안 한다. 프로세스 잘 지키는 외국도 평균 20% 정도 과업변경을 한다. 우리는 과업이 불분명해 더 많은 범위로 늘고 줄 수 있는데, 그런 일 생겼을 경우의 예산을 안 잡아 놔 무료봉사를 해야 한다. 그럼 손실 보전 해야하니 하도급업체를 괴롭히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IT서비스업체에 공공정보화 사업 예산 배정과 사업관리가 큰 변수인가

"IT서비스업체가 공공사업을 주력 삼으면 적자라는 게 공식이다. (발주처가) 예산 수립부터 제대로 해야 하는데 (IT서비스업체들이) 시작부터 마이너스 감수하고 가는거다.

과거엔 발주처 구매력을 감안해 (수행사업자가) 사업에 포함된 하드웨어 구매시 (납품단가) 할인을 많이 받았다. 이제 (하드웨어 구매를) 분리발주 하게 됐다. 손실보전할 데가 없다.

기능점수(FP) 단가를 지금 52만원에서 56만원으로 올린다고 한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가 전년도 평균 물가인상률 반영해 거의 거래가격에 맞게 하는 거다. 그런데 발주전 FP단가는 46만원짜리, 37만원짜리가 나온다. 이렇게 (깎아서) 발주하는데 어떻게 이윤이 남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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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업변경만 하는 게 아니고 사업 끝내면 안정화라는 이름으로 '나머지공부'를 한다. 예산 지원은 하나도 안 된다. 그나마 '맨먼스'로 투입인력 관리를 하지 않고 FP로 생산성 관리를 하니까, 과거 3명이 했을 일을 똑똑한 개발자 1명이 할 수도 있는 구조라 상쇄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런 인력은 흔치 않고, 그 인력만 철야시키고 하면 딴 데 갈 거다. (해결책이 아니다.) 결국 원도급자 이익이 보장돼야 하도급 업체도 (이익) 보장된다. 그래야 손실 없이, 근로자를 더 뽑고, 급여 저하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 여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