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업이 더 망해도 괜찮은 이유

[이슈진단+]블록체인, 위기인가 기회인가(중)

컴퓨팅입력 :2019/03/20 10:04    수정: 2019/03/25 08:59

임유경, 황정빈 기자

블록체인 산업이 짧은 버블을 지나, 긴 침체기를 지나고 있다. 블록체인은 짧지만 강렬했던 버블 기간 동안 어느 산업의 그것보다 극심한 부작용을 맛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버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산업 안으로 관심과 투자가 집중된 덕분에, 기업들이 당분간 성장할 자양분이 마련됐다. 이제는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침체기를 슬기롭게 넘어갈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블록체인 산업이 버블기, 침체기를 지나 폭발적인 성장기를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3회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과도한 관심이 집중됐던 크립토버블은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단 5개월 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가 들썩일 정도로 강렬했다. 90년대 후반 닷컴버블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기업이 새롭게 등장했고, 그중 상당수가 버블이 꺼지면서 함께 사라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닷컴버블 때 경험한 것처럼 버블 붕괴 후 상당수 기업이 사라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오히려 산업 전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다.

닷컴버블 붕괴 후 아마존, 이베이 같은 기업이 실제 인터넷 비즈니스의 혁신성을 입증한 것처럼, 현재 ‘크립토윈터'를 견뎌내는 업체 중에 향후 블록체인 대중화를 이끌 빅플레이어가 등장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블록체인 산업은 크립토버블 붕괴 후 크립토윈터를 지나고 있다.(사진=픽사베이)

블록체인 옥석 가리기 시작됐다

한때 블록체인이 유행처럼 여겨졌고 굳이 블록체인을 쓸 필요 없어 보이는 곳까지 ‘블록체인 기업이 되기 위해’ 블록체인을 썼다. 암호화폐로 투자를 받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블록체인을 하지 않으면 첨단 기업 대열에서 뒤처지는 분위기도 작용했다.

이제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전처럼 산업 내로 돈이 쏟아지지도 않거니와, 블록체인이 정말 제2의 인터넷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 맞느냐는 차가운 시선까지 이겨내야 하는 혹독한 상황이다. 블록체인 기업들에겐 그야말로 ‘혹한기'다.

업계는 혹한기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진 않다. 오히려 버블이 꺼진 지금이 부실 업체를 솎아내고 산업 경쟁력을 키울 기회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 기업 전문 투자사 해시드의 김균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돈이나 챙기고 보자’는 팀도 있었지만 이런 팀은 암호화폐 가격 하락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크립토 금융 전문업체 체인파트너스의 한대훈 이사는 “2017년에 강세장에 편승해서 진입한 업체들은 이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업체인지 증명할 때가 됐다"며 “제시했던 청사진을 정말 구현할 수 있는지가 생존을 가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옥석이 가려지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산업 내 자원이 집중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사 TTC프로토콜의 장채선 이사는 “수 억가지 이유 중 하나로 회사가 망할 수 있는데 회사가 없어지면 여기에 다니고 있던 인재들이 다른 회사로 흡수되고 그 회사의 역량이 확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실리콘밸리에선 기업들이 빨리 사라지고 그 과정에서 경험을 획득한 인재들이 계속 다른 회사로 유입되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게 일반적이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계 아마존·이베이 나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닷컴버블과 크립토버블이 상당히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닷컴 버블이 붕괴되고 시간이 흐른 뒤 실제 청사진을 실현해 보이는 기업들이 나타난 것처럼, 블록체인도 같은 길을 갈 것이란 기대가 크다.

닷컴버블 때도 수많은 인터넷 비즈니스 기업이 나왔고 그 중에 나스닥에 상장된 것도 많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사라졌다. 닷컴 버블 때 나스닥에 상장된 900개 기업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20개 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 인터넷으로 책을 팔겠다고 등장한 아마존은 실제 온라인서점으로 성공했고 지금은 책을 넘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매하는 초대형 인터넷 기업이 됐다. 이베이도 닷컴버블 때 등장해 성공한 대표적 기업이다.

아마존이나 이베이 같은 비즈니스는 당시에 실현 가능하다고 여겨지지 않았지만, 버블 덕분에 시도해 볼 수 있었고 결국 새로운 세상이 열린 셈이다.

장채선 이사는 버블이 신산업 발전에 필요한 이유에 대해 “버블로 많은 돈이 낭비되기도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집행될 수 없는 사업에 투자가 들어갈 수 있다"며 “버블 때 들어온 돈을 자양분 삼아 광기어린 도전을 하는 기업들이 싹을 틔울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산업도 지난 버블을 자양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한 이사는 “블록체인도 닷컴버블과 똑같아 보인다"며 “2017년엔 시장이 너무 좋았고 2018년부터는 자성이 시간이 있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많은 업체들이 구조조정하고 비용절감하고 있는 혹한기가 맞다. 이 과정에서 구글, 아마존 되려면 이 시기 잘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존 창업당시 제프 베조스 CEO(왼쪽)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블록체인계 아마존, 이베이, 구글이 될까. 결국엔 암호화폐의 내재가치를 만들어 내는 업체가 빅플레이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쓸모 있는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실제 널리 쓰이게 하는 게 살아남은 블록체인 업체들의 과제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의 공태인 리서치센터장은 “코인에 내재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려면 거래소를 거치지 않아도 그 코인이 쓸모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생태계 안에서 코인을 획득하고 또 소비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 작동해야 비로소 내재가치가 생긴다는 얘기다. 사용자가 블록체인 서비스 안에서 보상으로 토큰을 받았는데, 받은 토큰을 거래소에서 되파는 것 말고는 쓸 모가 없다면 내재가치가 없는 코인이다.

블록체인 업체들이 크립토버블 때 평가받았던 가치를 다시 회복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우선 오는 하반기 약속한 제품들이 나와야 분위기 반전이 가능하다.

장 이사는 “아마존 주가가 닷컴버블 때 100달러까지 올랐는데 버블 붕괴 후 다시 그 가격을 회복하는데 10년 걸렸다. 블록체인은 버블을 찍고 내려왔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걸릴 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 센터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블록체인 제품이 쏟아져야 한다"며 “이번 하반기에 만약 제품들이 막 쏟아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진짜 블록체인 산업이 위기라는 진단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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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①블록체인 혹한기...기업은 망해도 기술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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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블록체인 기업이 더 망해도 괜찮은 이유

③블록체인 시장 봄맞이를 위한 5가지 해결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