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애플이 특허법 289조 왜곡"

美 대법원에 문건 제출…3월4일 상고여부 결정될 듯

홈&모바일입력 :2016/02/22 14:57    수정: 2016/03/22 00:1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스마트폰 시대의 법이 수저 시대 법을 그대로 따라갈 순 없다.”

애플과 1차 특허 소송 최종 승부를 앞둔 삼성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애플이 미국 대법원에 삼성의 상고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문건을 접수한 지 10여 일만에 반박 문서를 제출했다.

삼성은 지난 16일(이하 현지 시각) 대법원에 제출한 문건에서 “애플 변호인들은 광범위하고 모호한 디자인 특허 개념을 반복적으로 읊조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삼성은 전통산업 시대에 제정된 법으로 최신 스마트폰 디자인 특허 침해건을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상고심 재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총 9명으로 구성된 미국 대법원 판사들. 앞줄 가운데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최근 별세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이다. (사진=미국 대법원)

■ 애플이 이달초 제출한 문건에 대한 반박 형식

이번 문건은 지난 2012년 1심 평결이 나온 삼성과 애플 간의 1차 특허 소송과 관련된 것이다. 1심에서 1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 배상금 폭탄을 맞았던 삼성은 이후 상황을 조금씩 호전시키기 시작했다. 지난 해 5월 열린 항소심에선 배상금을 절반 수준인 5억4천800만 달러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항소심에서 쟁점이 된 것은 디자인 특허 실용특허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등 세 가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중 제품 특유의 분위기를 뜻하는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건은 무혐의 판결됐다.

이후 삼성은 지난 해 12월 디자인 특허 침해 부분에 대해서만 미국 대법원에 상고신청을 했다. 삼성이 상고 신청을 하지 않은 실용특허 침해 부분은 최종 확정됐다. 또 항소심에서 기각된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부분은 1심 재판이 열렸던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으로 파기 환송됐다.

삼성이 대법원에 상고신청한 지 2개월 만에 애플의 반응이 나왔다. 애플은 이달 초 대법원에 제출한 38쪽 분량의 문건을 통해 삼성의 상고를 받아들일 가치가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 대법원

당시 애플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 배심원들은 애플 디자인 특허 범위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았나.

-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한 특허법 289조는 타당하게 적용됐나.

애플은 이런 질문을 중심으로 1심 재판 배심원들이 디자인 특허 범위에 대해 정확한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애플은 “1심 배심원들은 추상적 형식이나 개념은 특허 보호 대상이 아니란 점을 잘 이해했다”고 강조했다.

디자인 특허 개념 문제와 함께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을 환수하는 것이 타당한가’란 부분이다. 1심 재판부는 미국 특허법 289조를 근거로 특허 침해한 삼성 제품의 전체 이익을 기준으로 배상금을 산정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의 이런 판결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디자인 특허 존속 기간 내에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중간 생략) 그런 디자인 혹은 유사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건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익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미국 특허법 289조)

■ 삼성 "1심 배심원 지침은 동어반복"

삼성의 상고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특허법 289조’ 해석 문제가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삼성이 대법원에 제출한 문건은 애플 주장을 반박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애플이 ‘상고신청 기각’ 근거로 제시한 논리들을 집중 반박했다.

일단 삼성은 애플이 대법원 제출 문건에서 쟁점 특허에 대해선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애플 문건을 읽어본 사람들은 문제가 된 특허가 뭔지 제대로 알 수도 없게 돼 있다는 의미다.

삼성은 “애플은 협소한 디자인 특허 세 개에 집중하는 대신 모호하고 광범위한 디자인 특허 개념만 되풀이 늘어놨다”고 비판했다.

두 회사간 1차 특허 소송에서 쟁점이 된 애플 디자인 특허권은 크게 세 가지 종류다. 검은 사각형에 둥근 모서리를 규정한 D677 특허권을 비롯해 베젤을 덧붙인 D087, 검은 화면에 아이콘 16개를 배치한 D305 특허권 관련 침해 부분이 상고 대상이다.

삼성과 애플 특허 소송 핵심 쟁점 중 하나인 D087 특허권. (사진=미국 특허청)

삼성은 “배심원들이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할 때 애플 디자인 특허 세 개의 장식 보호범위에 대해 한계를 지어주지 못함에 따라 아이폰의 ‘아이콘’ 상태와 ‘외양과 분위기’를 토대로 삼성 전체 이익을 넘겨주는 판결에 이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삼성은 “배심원들이 정확한 지침을 받았다”는 애플 주장을 크게 세 가지로 반박했다.

우선 애플이 근거로 내세웠던 배심원 지침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이 배심원들에게 “장식적 디자인’을 주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은 맞다. 하지만 정작 ‘장식적 디자인이 뭘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얘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 삼성 주장이다.

■ 항소법원, 디자인 특허 법 적용 잘못

이는 삼성이 재판 과정 내내 강조했던 부분이다. 삼성은 대법원 상고 신청 당시에도 1심 재판부가 디자인 특허의 핵심인 ‘장식적인 디자인’을 특허권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개념 혹은 기능적 측면’과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삼성이 내세운 근거는 특히 침해 판단 기준이었다.

삼성에 따르면 1심 법원은 배심원들에게 “특허 디자인과 침해 혐의를 받고 있는 디자인 간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에 주목하고 전체 모양을 비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배심원들은 둥근 모서리 같은 비장식적 요소에 대해서까지 과도하게 보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항소법원 역시 이런 배심원 지침을 승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특허 그림에 묘사한 특정 장식적 요소보다 훨씬 광범위한 디자인 개념에 대해 독점권을 갖게 됐다”고 삼성은 주장했다.

삼성은 마지막으로 항소법원이 특허 무효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불가피한(dictated by function)’ 것인지 여부에 대한 테스트를 한 부분도 문제로 삼았다.

아이콘 배열 범위를 규정한 애플 D305 특허권.

어떤 제품 디자인이든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 따라서 항소법원의 이 같은 접근 방식은 ‘장식적 디자인’에 대해서만 디자인 특허를 부여하기로 한 미국 특허법 171조와 정면 배치된다고 삼성이 강조했다.

애플은 재판 과정에서 삼성이 내부 문건에서 ‘디자인의 위기’라고 강조한 부분을 특허 침해의 증거 중 하나로 내세웠다. 이런 위기의식 때문에 삼성은 아이폰 특유의 디자인을 베끼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디자인의 위기’란 안드로이드 이전 운영체제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삼성 제품의 모양을 거론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 "전체이익 배상 규정 나올 땐 단일물품 시대"

삼성과 애플 간 디자인 특허 소송의 최대 쟁점은 ‘배상 범위’다. 미국 특허법 289조에 규정돼 있는 ‘전체 이익 환수’란 부분을 어디까지 적용할 것이냐는 게 가장 중요한 이슈다. 그런만큼 애플 뿐 아니라 삼성도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애플은 이달초 대법원 제출 문건에서 특허법 289조는 미국 헌법 역사와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애플은 “항소법원이 지적한 것처럼 1887년 이전에는 디자인 특허권 보유자들은 일부 피해만 보상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특허법 289조는 바로 그 한계를 보완해줬다는 것이 애플의 기본 논리다.

애플이 이런 주장을 하면서 제기한 논리는 “289조가 규정한 배상 범위는 최저 기준이 아니라 최고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애플은 특허법 289조의 제목이 ‘디자인 특허 침해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additional remedy for infringement of a design patent)’로 돼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은 애플의 이런 주장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체이익’이란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289조의 맥락을 잘못된 쪽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289조는 디자인이 적용된 제조물품성을 지칭하는 것”아라면서 “따라서 관련 이익은 그 특허 침해로 얻은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법으로 최신 스마트폰의 디자인 특허를 규정할 수 있을까? 사진은 삼성 최신 폰인 갤럭시S7과 S7 엣지. (사진=씨넷)

따라서 이 법 조항을 제대로 적용할 경우 애플은 기껏해야 ‘(특허 침해한) 디자인이 적용된 제조물품으로부터 삼성이 얻은 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스마트폰 앞쪽 디자인이나 베젤 모양, 아이콘 배치 같은 것들로 얻었던 이익만 배상 대상이란 게 삼성의 논리다.

전체 이익 환수의 기초가 된 것은 미국 의회가 1887년 내린 결정이다. 삼성에 따르면 당시 미국 의회는 카펫 디자인 특허 보유자가 잃어버린 이익 일부만을 회복하도록 한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 결과물이 특허법 289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의회는 화장지처럼 단일 물품으로 된 제품(single-article products)만 고려했다는 것이 삼성 주장이다. “디자인이 곧 주요 기능인 제품”이란 얘기다.

삼성은 “당시 의회는 여러 부품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제품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러 물품이 결합해서 최종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 배제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 미국 대법원, 3월4일 삼성 상고 허용여부 논의 계획

이런 논리를 근거로 삼성은 항소법원 판결은 디자인 특허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한 보호와 배상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미국 국가 경제에 심각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항소법원 판결을 그대로 놔둘 경우 소송 남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혁신에 찬물을 끼얺고 경쟁을 압살할 것이라고 삼성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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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버츠 대법원장. (사진=미국 대법원)

삼성과 애플의 문건을 접수한 미국 대법원은 오는 3월 4일 전체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회동에서 삼성의 상고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상고 허가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이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 해 구글과 오라클 간의 ‘자바 저작권 소송’ 때도 한 차례 결정을 연기한 적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