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디지털기획원(DPB) 신설하자

[특별기고] 정부 조직 개편 공론화 '지금부터'

전문가 칼럼입력 :2021/06/01 16:48

안문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안문석 고려대 명예교수

다시 정부 거버넌스 시즌이다. 여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몇몇 인사가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시발점이다.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대선 공약 시즌이다. 앞으로 1년 가까이 학계, 시민단체, 출연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부 조직개편안이 공론의 장에 등장할 것 같다. 바람직한 일이다. 혁신의 동력에 다름 아니다.

시스템 이론에서는 부분의 합이 새로운 차원의 성과를 내는 것을 이머전스(emergence)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시너지효과라고도 부른다. 정부 조직개편은 공약 달성을 위한 틀의 변화를 통해 정책결정 및 행정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한 번 따져보자.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잘한 정부조직개편과 실패한 정부 조직개편이 있었다. 산업화 시기 가장 성공적인 조직으로는 경제기획원(EPB)을, 정보화 시기 가장 성공적인 정부조직으로는 정보통신부를 꼽는 사람이 많았다.

정보통신(ICT)과 관련해서는 여러 부처에 산재된 정보화 기능을 정보통신부라는 신설 부처를 만들어 줌으로써 한국이 정보화 사회의 우등국가가 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부처 이기주의로 이 안이 무산될 것을 우려하여 정통부 신설을 군사작전처럼 비밀리에 준비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정부조직개편은 어려운 작업이다.

실패한 조직개편도 있었다. 실패한 조직개편은 주로 통합으로 오히려 기능이 왜곡되고 축소돼 통합부처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사례다.

정부 조직개편은 군사 정부 이래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통합과 분화, 집중과 분산의 순환적 흐름을 타고 있다. 

과거 경험은 성공과 실패의 몇 가지 패턴을 보이고 있다. 우선, 규제를 담당하는 조직과 진흥을 담당하는 조직을 통합하면, 진흥기능은 축소되고 규제기능이 지배적인 조직이 됐다는 점이다.

새롭게 예시한 디지털기획원(DPB)

다음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조직과 과거 지향적인 조직이 통합하면 미래지향적인 기능이 사라지고 낡은 기능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Y 이론조직이 통제중심적인 X 이론조직과 통합하면 Y이론적 조직관리기능은 사라지고 통제위주의 X조직이 그 부처를 지배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무엇보다 부처 간 권한과 책임, 예산이 따로 놀아 부작용이 드러난 사례도 있다. 권한은 없이 책임만 지는 부처,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행사하는 부처, 권한만 갖고 예산이 없는 부처가 등장했다. 무사안일과 부정부패의 만연 등의 부작용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과 디지털뉴딜은 일단 방향성으로 놓고 보면 미래지향적인 정책으로 평가된다. 정책 자체로만 보면 디지털뉴딜은 앞으로 닥칠 지능정보화 사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나침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책은 마스터 플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조직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 뉴딜 정책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버넌스를 생각할 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화를 두려워 해서는 절대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 후발주자로 출발한 우리나라 같은 작은 나라에서 기득권에 파묻혀 미국과 중국, 영국의 사례를 보듬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정부 조직도 보다 적극적으로 새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우리만의 선택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디지털뉴딜 정책은 그 핵심정책이 여러 부처에 산재돼 있다. 디지털 뉴딜과 같은 첨단기술이 밀고, 새로운 수요가 이끌어야 하는 정책에서는 기존의 정부조직을 통합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만들어 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과거 아무도  살아본 경험이 없는 세상이다. 사이버 공간을 뛰어 넘는 새로운 생활공간인 메타버스가 등장하고, 지능기계와 인간의 협업이 중요한 지능정보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가상화폐, 가상자산, 블록체인이 등장하고 새 디지털 정부가 출현하고 있다.

행정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 속에서 하루하루 새로운 일상의 실험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행정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실험적이고 문제중심, 현장중심, 기술중심의 ‘용감한’ 행정문화가 중심축이 돼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조직이 등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새로운 조직은 톱다운(top down)식 권위주의적 행정행태와 상명하복이라는 전통적인 행정문화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보장되는 행정문화에 기초해야 한다.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리나라 행정개혁 역사를 보면 개발기에 이런 기능을 수행했던 조직이 있었다. 바로 경제기획원(EPB)이다.

EPB의 조직의 특징은 미래를 준비하는 기획기능과 이를 지원하는 예산기능이 한 부처에 있었다. 그 조직의 장을 부총리 급으로 하여 여러 부처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은 경제개발이론가 등은 우리의 개발정책 성공을 EPB에서 찾는다.

정부 세종청사

EPB 소속 공무원은 다른 부처 공무원과는 다른 독특한 행정문화를 갖고 있었다.

첫째, EPB 소속 공무원들은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가졌다. 둘째, 국가발전에 대한 소명 의식이 강했고 자기 소속부처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셋째, 공부하는 분위기는 새로운 혁신적인 정책을 쉽게 수용할 수 있도록 했고, 뛰어난 기획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유하게 했다. 넷째,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됐고 의견개진이 자유로웠다.

이런 분위기를 빗대 사람들은 EPB를 ‘EPB 스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문화는 그 후 정보통신부에 승계됐다. EPB가 사라진 이후에도 EPB 출신은 그 후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4차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걸 속에서는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국력의 원천이다. 지금 각국은 새로운 미래 사회에서 선도주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상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어쩌면 산업화시대보다 더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바로 지금, 모든 것이 디지털화 하는 미래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 성공적인 조직개편의 경험을 살려 「(가칭)디지털기획원(Digital Planning Board; DPB)」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 조직을 다시 얘기하는 이유다. DPB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 20년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둘째, 디지털 예산편성권을 가져야 한다. 셋째, 디지털 재정권을 가져야 한다. 넷째, 첨단기술 개발지원권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첨단 고등교육기능을 가져야 한다. 여섯째, 다른 부처의 디지털정책을 조정하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여러 부처에 산재된 디지털 정책관련 기능을 DPB로 통합하는 일도 빼 놓을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이다.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19 세상도 곧 끝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국가 간 경쟁은 엄청나게 더욱 심해질 것이다. 디지털 민족주의는 더 심해질 것이고, 1등 독식현상이 만연할 것이다.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국력의 원천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놓고 세계 각국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공의 실패(Failure of Success)'라는 함정을 주의해야 한다. 정보화 시대를 잘 준비해 정보화 사회의 우등생이 됐다고 자만하면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지능정보화 사회에서는 낙제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늦게 시작한 산업화를 EPB가 주역이 돼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우리만의 정보통신부를 만들어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미리 준비해 정보화 사회의 우등생이 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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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불확실한 21세기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얘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 시작이 반이다. 아예 새롭게 디지털기획원(Digital Planning Board; DPB)을 설립,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20년, 30년 미래의 먹거리 창출에 진력하는 방안은 어떤가.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문석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전자정부특별위원장, 규제개혁위원장,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장,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ES) 이사장, 고려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미래모빌리티포럼의 초대 의장으로도 추대돼 국내 e모빌리티산업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