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와 감성 리더십

[이정규 칼럼] 어려운 상황에 진짜 리더십 나온다

전문가 칼럼입력 :2017/11/06 15:28

이정규 비즈니스 IT 칼럼니스트
이정규 비즈니스 IT 칼럼니스트

군대에 있을 때 얻은 창피한 트라우마가 있다. 가장 힘든 일명 말호봉의 때의 일이다. 폭력이 일상이 된 군대생활에서 선임의 구타를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고참들은 식기가 깨끗하지 않다는 둥 자기 빨래를 찾아내라는 둥 하찮은 일로 트집을 잡았다.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궁색한 내 변명 때문에 선임 밑의 부하들은 같이 고초를 겪어야 했다.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려운 상황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비로소 드러나게 만든다.” 는 깨우침을 얻었다. 겁내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왔다고 자신했지만 작은 시련에도 나약해지는 섣부른 자만심의 속살이 보였다.

군종 신부를 찾았다. 안수기도를 받으니 신기하게 폭력이 두렵지 않았다. 그다음 부터 “제가 그랬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맞섰다. 선임은 가슴팍을 치려던 주먹을 내려놓으며 “다음부터 잘해!”라 말했다. 거짓말 할 줄 알았던 내가 솔직하게 말하니 오히려 당황하는 듯 했다. 그 사건 이후에 괴롭히던 선임과 친해지게 되었다.

■ "충성심과 존경심은 관계의 산물"

사회생활에서 여러 상사를 만나게 된다. 분위기가 좋을 때는 좋기만 하던 선배나 상사가 궁지에 몰리면 후배에게 책임을 넘긴다. 협력업체에 재고를 밀어내고는 년말 매출목표를 채운다. 비용을 다음해로 넘기고 수익율을 부풀린다. 분식회계다. 매일같이 고함 치며 목표달성을 닥달한 상사는 책임져야 할 그 순간 “제가 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며 부하 뒤로 숨는다. 건망증이 있을 나이도 아닌데, 아침에 한 약속을 상사는 저녁에 뒤집는다. 고객에게 약속한 일, 협력사와 맺은 거래를 싹싹빌며 없던 것으로 해달라는 어려운 부탁은 부하의 몫이다. 정작 책일질 상사는 회사에 남고, 애궂은 부하만 징계를 받고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은 상사가 어떤 관리자인지 비로서 드러나게 만든다.” 난세에 리더가 부하들에게 신의와 의리를 지키는 일은 대개 자신의 직을 거는 위험한 일이다. 시험이 닥치면 부하들의 편에서 의리를 지킬지, 부하에게 책임을 씌우고 자리를 보전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중세의 마녀사냥에 쓰던 방법을 들었다. 물에 빠뜨린 다음에 마녀가 아니면 물에 가라앉을 것이고, 마녀라면 물위에 떠오를 것이니 죽이라는 것이다. 마녀로 내 몰린 여인은 죽어서 명예를 지킨다. 물위에 떠서 살았다한들 결국 생명을 부지할 어떤 방법도 없다. 리더에게 닥치는 도전이 이와 같다면 “본성 테스트”의 시간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본성을 잃지 않고 인간애를 유지하는 상사를 만나는 것은 직장인에게는 은총이다. 다행히도 오랜 직장생활 동안 서너분의 좋은 상사를 만났다. 그분들과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즐거이 만나고 있다. 그분들이 부르면 달려나가고, 몇개월 지나면 보고 싶고, 어려우면 조언을 청한다. 그러한 선배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일이 기쁨이다. 그분들과의 스토리가 접착제처럼 끈끈한 관계를 만든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인간에 대한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진정성만큼 강한 리더십은 세상에 없다. 그들은 부당한 주먹이 뻗쳐올 때 자기 가슴팍을 대신 들이밀었다. 핑계의 시간에 “제 책임입니다.” 말했다.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부하들은 감성으로 리더의 마음을 읽는다. 드디어 관계 형성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러한 리더의 이름을 지워버리면, 자신의 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 불행한 일은 리더의 역량과 리더십은 그가 조직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된다.

관련기사

장석주 작가와 만났다. 만날 때마다 귀한 지혜의 말씀을 주신다. "20세기는 뭐든지 끌어 않는 사람의 세계이었다면, 21세기는 나누는 주는 사람, 주변에 자기 것을 넓게 뿌리는 사람의 세계"라는 말에 공감했다. 사회생활 사반세기를 지나 마침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지식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감성임”을 알게되었다. 합리성은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합리를 넘어선 감성이다. 감성이 사람을 모으고, 따라오게 만든다. 따르는 부하를 만드는 상사는 감성관리가 남다르다. 리더십은 부하에 대한 진솔한 존중과 배려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더십은 조직의 경계에 구속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로 부터 조직에 대한 충성심, 상사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충성심과 존경심은 관계의 산물이며, 공유된 가치와 상호간에 내어준 배려의 시간으로 부터 나온다. 요즈음 참다운 리더들이 그리운 시간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