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원인은 배터리?…정부↔업계, 누구 말이 맞나

[이슈진단+] ESS 화재원인 발표 후폭풍 (상)

디지털경제입력 :2020/02/07 14:40    수정: 2020/02/07 15:13

작년 8월부터 전국에서 잇달아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의 일부 원인이 배터리 결함 때문인 것으로 결론났다. 문제가 된 ESS에 배터리를 공급한 제조사는 배터리와 화재 간 연관성을 극구 부인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ESS 화재 원인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가열될 조짐이다.

논란의 핵심은 ESS 화재 '발화지점'이 배터리인 지 여부다. 6일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조사단은 4개월간 108회의 조사를 통해 배터리 결함이 화재로 이어졌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 ESS 시스템·배터리 운영기록과 CCTV영상 등 현장자료

● 용융흔적 등 배터리 내·외부의 물리적 손상

LG화학과 삼성SDI는 조사단이 제시한 두 가지 근거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전자에 대해서는 조사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후자 역시 '배터리 내부발화'의 직접 원인이라기에는 어폐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9월 경북 군위의 한 태양광발전설비업체의 ESS에서 발생한 화재 모습. 조사단은 6일 이 화재의 원인을 '배터리 이상'으로 추정했다. (사진=경북소방본부)

배터리 결함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곳은 경남 하동(작년 10월 21일)을 제외한 ▲충남 예산(8월 30일) ▲강원 평창(9월 24일) ▲경북 군위(9월 29일) ▲경남 김해(10월 27일) 등 총 4개 사업장이다. 이들 4개 사업장 ESS 화재 현장을 조사한 결과 배터리에 발화 시 나타나는 용융흔적이 있었고, 시스템 운영기록을 보니 고온 등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지난해 1차 원인 규명과 배터리 제조사의 안전대책 발표에도 화재가 끊이지 않아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조사를 실시했다. 화재현장의 과거 이력과 환경영향, 전기적 충격 가능성 등 지난 조사위에서 제시된 화재원인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항을 검토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조사단은 시스템 운영기록(예산·평창·군위·하동·김해), 배터리 운영기록(예산·군위·김해), 화재 당시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CCTV 영상(군위·김해) 등을 확보했다. 또 ESS 충전율(SOC)을 제한하거나, 제한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화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유추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조사단 측이 밝힌 4개 개별 화재사고 원인의 근거와 업체의 반박을 비교해 정리해봤다.

ESS 화재사고 현장별 주요 조사 내용. (자료=산업부)


① 충남 예산 ESS 화재 - LG화학 배터리 탑재

충남 예산 ESS에는 LG화학의 1.54 메가와트시(MWh) 용량 배터리가 탑재됐다. 70%였던 충전율을 95% 수준으로 상향한 후 8일만에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당시 ESS는 93.5%의 충전율을 기록했다. 다만, 화재 당시 충전율이 94.5%에 달했던 경남 하동 사고에서는 배터리 결함이 원인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기 때문에 높은 충전율이 사고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조사단은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에서 내부 발화 시 보이는 손상(용융흔적)을 발견, 배터리 셀(Cell)을 발화지점으로 결론지었다.

☞ LG화학은 조사단이 포착한 용융흔적은 배터리 외 다른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융은 고체가 열을 받아 녹는 현상으로, 이를 근거로 배터리 내부발화를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 ESS에 탑재됐던 배터리 모듈과 로그기록. (자료=산업부)
예산 ESS의 인근 사업장 ESS에서 수거된 배터리. 분석 실험결과 양극판 이물과 리튬 석출물이 확인됐다. (자료=산업부)

조사단은 예산 사업장과 동일모델, 동일시기에 설치된 인근 ESS 사업장에서 유사한 운영기록을 보인 배터리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일부 양극 파편이 배터리 양극판에 점착된 현상을 확인했다. 또 사용기간이 20개월인 배터리 분리막에서 리튬 석출물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배터리 공정상 불량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 점에 대해 LG화학은 더 강도가 높은 입자인 철(Fe)도 분리막을 뚫을 수 없다는 등 자사 분리막의 검증된 안전성을 근거로 들었다. 양극 파편이 점착된다고 해도 분리막을 관통하지 못해 화재 요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 또 리튬 석출물이 배터리 내부발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자체 실험을 통해 검증됐다는 설명이다.

②강원 평창 ESS 화재 - 삼성SDI 배터리 탑재

강원 평창 ESS에는 삼성SDI의 7.1MWh 규모 배터리 3대가 탑재됐다. 95%였던 충전율을 100%로 올린 후 14일만에 화재가 발생했고, 화재 당시 충전율은 98%였다. 조사단은 운영기록에서 고온, 저전압 등 이상 현상을 발견, 이를 근거로 배터리를 발화점으로 분석했다. 이 사고의 경우, 배터리 보호기능도 동작하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삼성SDI는 조사단이 배터리 발화 근거로 제시한 저전압, 이상고온, 랙 전압 불균형 등의 운영기록은 화재의 일반 현상으로 배터리 결함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운영기록이 화재 발생 3개월 전 데이터라는 점에서 배터리 보호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잘못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보호기능이 작동한 사실이 세부 증거에 누락됐다는 점도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조사단은 평창 ESS 화재사고 당시 낮은 전압에서 배터리 보호 기능이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자료=산업부)
평창 ESS 충전율(SOC)의 급상승, 급하강 이력. (자료=산업부)

조사단은 운영기록에서 배터리 충전율이 급상승하거나 반대로 급하강한 이력을 포착했다. 또 유사 ESS 사업장에서 비슷한 운영기록을 보인 배터리를 수거해 분석한 결과 양극판과 분리막에서 각각 내부손상과 구리성분을 검출했다.

☞삼성SDI는 충전율 급상승·하강 이력은 오히려 안전성 확보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정 배터리 셀이 먼저 상한전압이나 하한전압에 도달하면 충전율 표시값을 100% 또는 0%로 강제 변환, 충·방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알고리즘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또 양극판 내부손상은 해체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구리 성분은 사용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③경북 군위 ESS 화재 - LG화학 배터리 탑재

경북 군위에서 발생한 ESS 화재 사고에는 LG화학의 1.36MWh 용량 배터리가 관련됐다. 충전율을 70%에서 95%로 올린 후 5일만에 화재가 발생했다. 조사단이 전소되지 않은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내부발화를 유추할 수 있는 음극활물질 돌기가 발견됐다.

군위 ESS 화재 당시 소실되지 않은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확인된 음극활물질 돌기. (자료=산업부)

☞LG화학은 이 사고의 경우 배터리 음극판과 분리막 사이에 이물이 존재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이것이 화재로 이어지는 결함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발견된 이물은 음극재 성분인 '흑연계 이물'로, 이 역시 배터리 분리막을 관통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④ 경남 김해 화재 - 삼성SDI 배터리 탑재

마지막으로, 경남 김해 ESS에는 삼성SDI의 2.26MWh 용량 배터리가 탑재됐다. 이 사고의 경우 직전에 충전율을 상향하지는 않았지만, 화재 당시 충전율이 92.2%에 달했다. 조사 결과 배터리 랙 내부의 배터리 간 전압편차(130밀리볼트·mV)가 확인됐고, 분리막에서 발견된 황색반점에서 구리와 나트륨 등 내부 발화를 유추할 수 있는 성분이 검출됐다.

☞삼성SDI는 배터리 간 전압 차이에 대해 사용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반박했다. 조사단이 제시한 130mV의 전압편차는 안전 범위 내의 값으로 화재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 황색반점 역시 배터리 사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흔적으로, 이로 인해 배터리 전압차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여기서 발견된 나트륨은 음극을 만들 때 들어가는 성분이고, 구리는 음극 기재 성분으로 역시 이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경남 김해 ESS 화재조사 결과 확인된 배터리 랙 내부의 배터리 간 전압편차. (자료=산업부)
김해 ESS와 유사한 설치 환경의 ESS 사업장에서 실험 분석결과 확인된 양극판 접힘 현상. (자료=산업부)

조사단은 사고 사업장과 유사한 설치 환경의 ESS 사업장에서 양극판 접힘 현상과 음극판에서 나트륨 성분을 확인했다. 알루미나 코팅층도 손상된 것으로 파악, 배터리 공정상의 불량이 화재로 이어진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삼성SDI는 양극 접힘 현상이 화재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배터리 제조공정에서 양극 첫 단의 접힘 현상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같은 극성끼리 접힌 것으로 오히려 배터리 용량 저하로 이어지는 문제이지, 화재를 일으킬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루미나 코팅층 손상에 대해서는 앞서 평창 사고 조사과정에서와 같이 해체 분석 중 탈락된 것으로 추정했다.

김재철 ESS 화재사고 조사단 공동단장(숭실대 교수)이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ESS 화재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⑤ 배터리 결함 외 다른 가능성은 없나

업계 한 편에서는 이번 발표에서 지난해 1차 조사 당시 화재의 주 원인으로 지목됐던 '설치·사용상의 부주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6월 민관합동 ESS 화재 조사위원회는 "일부 배터리 결함이 확인됐지만,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중요한 것은 ESS 설치상 부주의와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등으로 보고, 제조·설치·운영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안전 대책도 제시했다.

지난해 6월 민관합동 조사위가 발표한 ESS 화재사고 원인과 그에 따른 안전대책. 2차 조사 결과와 확연히 상반된다. (자료=산업부)

그러나 이후에도 5번의 화재가 발생했고, 피해 업체와 ESS 사업자들 사이에서 화재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책임 소지를 묻는 화살은 배터리로 향했다. 일부 결함이 발견됐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정부 답변이 모순됐다는 게 그 이유다. 이후 부담을 느낀 조사단이 배터리 결함 가능성을 과하게 의식하고 조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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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원인이 배터리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이번 발표 자체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조사단 공동단장인 김재철 숭실대 교수는 전날(6일) 질의응답에서 "설비가 불이 나서 타버렸기 때문에 화학적 분석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불이 나지 않았지만 사고 사업장과 유사한 인근 사업장의 배터리를 수거해서 체계적으로 분석해보니 그런 배터리를 계속 쓰면 불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추정이라고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터리 이상이 제조사 설계상의 결함으로 비롯된 것인지 여부도 아직 불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