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핫 한 인터넷은행, 국내서 뜨뜻미지근한 이유

케이뱅크 1년 여째 개점휴업..."인가 기준 불공정"

금융입력 :2020/01/14 15:56    수정: 2020/01/14 16:10

최근 싱가포르에서 최대 5개까지 인터넷전문은행(디지털뱅크·가상은행)을 인가하겠다는 방침에 21개 컨소시엄이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홍콩서도 인터넷전문은행 라이선스를 받기 위한 수많은 기업이 몰렸다. 반면, 국내선 2018년부터 최대 두 개까지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내주겠다는 방침을 밝혀왔지만, 흥행은 실패했다.

동남아시아 국가서 앤트파이낸셜, 레이저, 그랩 등 수많은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 인터넷은행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국내선 이렇다할 참여자를 끌어모으지 못했다. 한국은 디지털과 IT 인프라가 잘 깔려있어 디지털 금융 발전 가능성이 높지만 사실상 인터넷전문은행 라이선스 심사 기준이 타 국가에 비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국내 금융당국이 내세운 '기존 금융산업의 경쟁도 제고'라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설립 취지가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로 인수합병을 거치며 몸집을 불려왔던 기존 대형은행들과 달리, 기존 은행과 경쟁에서 불리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최소 자본금 조건 외에 다를 게 없는 은행 인가 기준을 요구하는 건 불공정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서는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인가에도 애를 먹었다. 2018년 세 개 컨소시엄이 예비인가 의사를 표했으나 한 곳은 서류 미제출로, 또 한 곳은 혁신성 부족으로, 나머지 한 곳은 자본금 문제로 탈락했다. 올해도 세 개 컨소시엄이 예비인가를 냈는데 2018년 제출했던 '토스 컨소시엄'만이 겨우 문턱을 넘었다. 당시 금융감독당국은 한 곳이라도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 탓인지 '일대일 밀착 과외'를 했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흥행 실패했던 국내와는 다르게 홍콩과 싱가포르는 인가에 수많은 컨소시엄이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부분 금융감독당국이 합리적인 범위서 인가 기준을 제출했다는 게 업계 평이다. 홍콩 금융당국(MA)의 가상은행 인가 기준은 ▲구체적이며 신뢰할 만한 사업 계획 ▲적절한 리스크 관리 ▲사용자에게 공정한 대우 ▲적정 자기자본 보유 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중 대주주 적격성에 해당하는 '소유권' 부분은 리테일 대상(소매금융)이므로 현지 법인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 홍콩에 있는 은행의 주식자본의 50% 이상을 보유한 사람은 은행이나 금융회사여야 한다는 것이 홍콩 금융당국의 정책이다. 만약 이에 해당하지 않다면 홍콩에 편입될 중간 지주회사여야 하며 이 회사에 대해 홍콩 금융당국이 감독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됐다. 부과될 감독 조건은 자본적정성,유동성, 그룹 내 익스포저 등이다. 지배구조와 위험 관리, 이사 및 고위 경영진의 적합성, 재무 기타정보도 제출해야 한다. 기술을 보유한 기술회사도 은행을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도 대주주 적격성에 관해 특별한 단서 조건이 없다. 싱가포르 금융당국(MAS)에 따르면 신청자는 기술이나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3년 이상의 기록을 갖고, 최소납입자본 요구 사항을충족하고 디지털 풀뱅크 라이선스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모금계획에 대해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의 혁신적 사용으로 명확한 가치 제공 ▲디지털 은행 사업 모델의 지속가능함 증명 ▲향후 5년 간의 재무 예측도 심사안에 포함됐다.

대주주 적격성에 해당하는 지배구조의 경우 지배기업의 글로벌 본사가 싱가포르에 있는지, 혹은 지배기업과 디지털 은행의 효과적 관리가 싱가포르에서 이뤄지는 지 등을 평가한다. 대주주 적격성을 따지는 것보다는 신규 은행의 혁신성, 해당 지역 내에서 감독 관리가 가능한지를 중점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다만 홍콩과 싱가포르는 은행의 지속가능성과 추후 경제 침체로 야기될 수 있는 은행업 철수에 대한 향후 계획도 요구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생 은행은 기존 대형은행들에 비해 해결해야 하는 점이 있는데 이를 기술 혁신성이라고만 보고, 자본이나 대주주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선 이득이 하나도 없는 게 국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신생 은행이 기존 대형은행에 비해 넘어야 할 허들이 있는데, 은행업 허들이 기존 은행업법을 토대로 있다보니 인터넷전문은행 라이선스가 큰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이들은 '제1호 인터넷전문은행'이었던 케이뱅크가 규제 이슈로 2019년 초부터 개점휴업 상태라는 점도 꼽았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상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케이티(KT)는 은행 대주주 적격성에 어긋나, 2019년 초 5천900억원 규모의 케이뱅크 유상증자는 물거품이 됐다. 자본 이슈 때문에 케이뱅크는 신용·마이너스통장 대출은 물론이고 이커머스에서 손쉽게 대출을 받아 소액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이커머스 대출도 중단한 상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있는 인터넷전문은행도 영속성을 고민해야하는 시점에 현재와 같은 은행업 인가 체계로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경쟁력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금융산업에 폐가 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