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을 잡아라…美·中·EU, 치열한 경쟁

[신년기획 : AI시대⑤] 21세기 리더십 놓고 각축

컴퓨팅입력 :2020/01/03 08:3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2019년 2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하기’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5개월 뒤인 그 해 7월엔 미국 국립표줄기술연구소(NIST)가 연방 AI표준 개발계획 초안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명시된 AI개발 계획을 구체화한 계획이었다.

21세기의 키워드로 떠오른 AI 패권 전쟁에 뛰어든 것은 미국 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세계 열강들도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2016년 ‘차세대 인공지능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AI 경쟁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냈다. 유럽연합(EU)은 2018년 4월 ‘인공지능 협력선언’을 통해 회원국들의 AI 역량을 극대화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외에도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AI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AI 경쟁력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은 그 동안 IT 분야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다. AI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미국을 뒤쫓고 있다.

■ 미국: 대통령 행정명령 통해 강공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버티고 있는 미국은 AI 분야에서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최근 들어 중국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리콘 커넬’이란 미국 매체는 지난 해 세계 10대 AI 기업을 선정했다. 미국은 구글, 아마존, MS 등 8개 기업이 포함될 정도로 절대적인 경쟁력을 자랑했다. 중국은 바이두, 텐센트 등 2개 기업이 선정됐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 들어 중국의 약진에 적잖게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하기’란 행정명령을 통해 AI 경쟁력 강화를 독려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미국이 AI 국가 전략을 제시한 것은 그 이전부터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든 2016년 10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NTSC)가 ‘AI 미래를 위한 준비’란 문건을 통해 AI 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또 미국 대통령실에서도 ‘AI, 자동화 그리고 경제’란 보고서를 통해 AI가 초래할 빈부 격차 같은 핵심 쟁점들에 대한 토론의 실마리를 제기했다.

특히 대통령실의 이 문건은 AI가 중심이 된 경제는 ‘슈퍼 스타에 편중된 기술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혁명이 20세기 산업혁명과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극소수 슈퍼스타’들에게 과실이 집중될 우려가 많다는 지적이다. 아예 "전체 소득 중 상위 0.01% 집중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란 진단까지 내놓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나온 두 보고서는 AI로 인한 일자리 상실과 교육, 그리고 빈부 격차 문제 같은 근본 아젠다를 다루고 있다. 국가 단위 AI 정책의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난 해 나온 대통령 행정명령은 좀 더 실질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미국 경제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선 AI 분야를 선도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통해 AI R&D 최우선 투자, 정보 소유 AI 리소스 개방, 거버넌스 표준호, 전문인력 확충, 국제협력 등 5대 핵심 아젠다를 제시했다.

행정명령 이후 국방부가 주요 부처 중에선 처음으로 AI 전략을 내놨다. 국방부는 AI 적용 확산, 민관 협력 및 국제 동맹 강화, 선도적 인력 육성, AI 윤리, 확산 및 활용 방안 마련 같은 5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AI 육성 정책에 대해선 비판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마감 시한이나 자금 규모 같은 구체적 실행 파일이 없다는 게 대표적인 지적이다. 특히 최근 무서운 속도로 뒤쫓고 있는 중국과 효율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선 모든 단계의 실행 계획까지 수립해야 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한국 정보화진흥원은 미국 AI 정책이 “중요성 및 필요성 제기→R&D 집중→분야별 세부 전략 수립→국가 전분야 전략 수립'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중국: 정부 주도 3단계 발전 전략

그 동안 중국은 ‘카피캣’ 이미지가 강했다.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이나 제품을 그대로 베낀 기업들이 초기 시장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선 미국 기업들의 특허권 공세가 쉽게 미치기 힘든 해방구란 점이 중요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중국 AI 경쟁력을 이해하기 위해선 특유의 시장 문화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중국 AI 전문가인 리카이푸는 ‘AI 슈퍼파워’란 저술을 통해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중국 특유의 ‘검투사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논지는 간단하다. 중국 기업들이 초기에 미국의 첨단 서비스를 무차별 모방한다. 이게 1차 모방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중국의 기술력과 엔지니어링 능력이 함께 향상된다.

그런 다음 중국 상황에 맞게 현지화하는 2차 모방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서 중국 시장의 독특한 검투사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형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잔인한 경쟁 환경을 거치면서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자료: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리카이푸는 “세계 경제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주역은 세상과 돌떨어져 MIT나 스탠퍼드의 고고한 컴퓨터 공학 연구실에서 새로운 학술적 발견을 이뤄낸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는 또 “현실 세상과 몸으로 부딪치며 일하고, 이익에 굶주려 있고, (중간 생략) 변혁의 힘을 실세계 산업에 구현하는 기업가들이 그 주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AI 경쟁력의 원천을 ‘검투사 정신’에서 찾은 리카이푸의 분석은 자기 중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무서운 속도로 AI 강국으로 부상한 배경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미국 등 서방 국가에 비해 ‘데이터 확보’가 수월하다는 점 역시 중요한 장점이다.

이런 상황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공산당이 주도하는 강력한 중국 정부의 힘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7년 ‘치세대 AI 발전 전략’을 발표하면서 AI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2030년까지 AI 선도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는 중국의 차세대 AI 발전계획은 크게 3단계로 구성돼 있다.

2020년까지 추진될 1단계에선 선진국에 맞설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 주된 목표다. 이를 위해 AI 핵심사업을 1천500억 위안 이상 규모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AI 연관산업 역시 1조 위안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단계인 2025년까지는 기초이론의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한편 세계 선도 AI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단계를 거쳐 2030년 완료될 3단계를 통해 AI 이론과 기술, 응용 측면에서 세계 선도 국가로 부상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최근 들어 중국은 AI 투자 규모 면에선 미국을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등에 비해 ‘데이터 수집’이나 활용이 수월하다는 점 역시 AI 경쟁에선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중국이 가장 큰 힘은 정부가 강력한 지원 정책을 제시하고 BAT로 통칭되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자국 기업들이 적극 참여한다는 점이다.

리카이푸의 분석이 맞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강력한 검투사 기업들’이 지금 중국 AI 경쟁력을 무섭게 키워나가고 있는 셈이다.

■ 유럽: 역내 역량 극대화 총력

AI 경쟁의 또 다른 축은 유럽연합(EU)이다. 하지만 국가연합인 EU는 조금 독특하다. 개별 국가의 AI 전략과 연방 차원의 AI 전략 간의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주요 회원국들은 저마다 국가 차원의 ‘AI 육성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영국은 지난 2016년 하원 과학기술위원회가 ‘로보틱스 및 인공지능’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AI가 초래할 다양한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뤘다.

독일과 프랑스 역시 차세대 AI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국가 차원의 육성 전략을 내놨다.

EU의 AI 전략은 이런 바탕에서 출발한다. 이미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을 통해 미국 거대 IT 기업들의 공세에 공동 대응하고 있는 EU는 2018년 ‘인공지능 협력 선언’을 통해 AI 경쟁에도 공동 보조를 맞췄다.

유럽연합(EU)기. (사진=픽사베이)

이 선언을 통해 EU 회원국들은 AI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들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AI 관련 연구 개발 경쟁력 확보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한 것. 이와 함께 AI로 인해 발생할 사회, 법률, 윤리 등의 이슈들에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EU의 AI 전략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건은 ‘유럽을 위한 인공지능 커뮤니케이션’ 보고서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이 보고서는 2020년까지 AI 연구 지원을 위해 15억 유로를 추가 편성하는 등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담았다.

또 향후 10년간 최소 200억 유로 규모의 예산을 추가 편성해 유럽 AI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EU의 AI 전략은 속도보다는 내실과 안정성 쪽에 방점이 좀 더 찍혀 있다. 시장을 선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함께 하는 AI란 가치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이런 관점을 대표하는 것이 지난 해 EU가 발표한 ‘7대 AI 윤리 가이드라인’이다. 투명성, 설명 가능성 등 7개 의무사항을 담은 이 가이드라인은 ‘AI가 미쳐 날뛰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인간 대리인과 감시: AI는 인간의 자율성을 짓 밟아선 안 된다. AI 시스템이 인간을 조종하거나 억압해서도 안된다. 아울러 인간은 소프트웨어의 모든 결정에 간섭하거나 감독할 수 있어야만 한다.

- 기술적으로 강건하면서도 안전할 것: AI는 안전하고 정확해야만 한다. 외부 공격에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통제: AI 시스템이 수집한 개인 데이터는 안전하게 비공개 상태로 보관되어야만 한다. 그 데이터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접속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쉽게 도난되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다.

- 투명성: AI 시스템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소프트웨어가 내린 결정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추적할 수 있어야만” 한다. AI 시스템의 모든 결정은 설명 가능해야만 한다.

- 다양성, 비차별성, 그리고 공정성: AI의 서비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만 한다. 연령, 성별, 인종, 기타 다른 특징들 때문에 차별되어선 안된다. 아울러 AI 시스템이 편견을 가져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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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및 사회적 웰빙: AI 시스템은 지속 가능해야 하며,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향상’ 시켜야만 한다.

- 책임성: AI 시스템은 감사할 수 있어야만 한다. AI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선 인지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사전에 보고 되어야 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