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소부장 강화대책, 예산증액만으론 부족"

전문가들 18일 KISTEP 주최 '수요포럼'서 정책개선 한 목소리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12/18 15:51    수정: 2019/12/18 22:22

"R&D(연구·개발)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소재·부품·장비와 관련해 모든 것을 국산화할 필요가 없다. 수요기업들은 공급기업의 입장을 고려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미래에 우리만이 공급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한 공급국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비전을 가져야 한다." - 김상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소재·부품·장비 관련 예산이 증액된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품목을 육성할 것인지에 대한 생태계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GVC(글로벌가치사슬) 하에서 우리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부분에 대해 대책도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이 참여할 기회가 제공돼야만 한다. 중소기업의 인력 문제도 정권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 박철우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18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개최한 포럼에서는 정부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한 다양한 보완책이 제시됐다. 정부가 단순히 R&D 예산을 증액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내 기업들이 사업경쟁력을 스스로 확보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이에 대해 "R&D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며 "소재·부품·장비와 관련해 모든 것을 국산화할 필요가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GVC 하에서 핵심소재 공급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수요기업들도 공급기업의 입장을 고려해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문제는 GVC 하에서 공존하던 시스템에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것"이라며 "문제는 일본이 (소재·부품·장비) 관련 산업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만큼 (국산화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수입하는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미래에 우리만이 공급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한 공급국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GVC 하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18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주최로 서울 양재 KISTEP 본원에서 열린 포럼 현장. (사진=지디넷코리아)

정부는 지난 8월 '국산화'로 대표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핵심품목 100개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으로 7조8천억원(2020~2026년까지)을 편성한 바 있다. 나아가 '대외의존도 극복'을 목표로 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을 통해 오는 2022년까지 5조원 이상을 R&D에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은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통해 대외의존형 산업구조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R&D 지원을 통한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제한이 우려되는 핵심품목 100개(단기 20개 품목, 장기 80개 품목)를 선정하고, 기술 수준과 수입 다변화 가능성을 기준으로 유형별 R&D 대응 전략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를 위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내 산·학·연·관 전문가로 구성된 소재·부품·장비 기술특별위원회를 설치했으며, 품목별로 R&D 투자 및 프로세스 혁신 등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섰다.

특히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R&D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시급히 대응이 필요한 핵심품목 관련 소재·부품·장비 사업의 예비 타당성 조사는 기술특별위원회의 사전 검토 및 심의를 거쳐 우대 적용하기로 했다.

나아가 국가 주도로 산·학·연 R&D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분야별 국가 연구실 지정 및 운영 ▲소재·부품 테스트베드 국가 연구시설 지정 및 운영 ▲주요 품목별 국가 연구협의체 지정 및 운영 등의 계획도 수립했다.

김민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산업융합센터 소장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학계에서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GVC를 고려한 국가 차원의 산업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철우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는 "소재·부품·장비 관련 예산이 증액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앞으로 어떤 시장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품목을 육성할 것인지에 대한 생태계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GVC 하에서 우리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부분에 대해 대책도 필요한데 특히 중소기업이 많이 참여할 기회가 제공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문제는 시장, 기술, 생산성, 투자의 문제로 보이는데 시장의 문제는 국내 시장규모가 작다는 것"이라며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인데 글로벌 시장 진출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술적으로는 단기 대책이 아닌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가 지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일본은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로 높은 생산성을 보유하고 있다. 후발주자(국내 기업)가 이걸 극복하기 위한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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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투자 측면에서는 여러 사업을 통해 5조원 가량 예산을 증액했는데 대부분 R&D에 대한 투자와 기업 지원 쪽인데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기술개발 이후 생산을 위한 공장건립이 필요하다"며 "생산성을 갖추기 위한 장비 투자나 이후 필요한 비용에 대해 고려가 부족하다. 지금의 정책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중소기업에 좋은 인력이 지원하지 않는 인력양성 문제도 있다"며 "대표적인 예로 정부 R&D 사업에 참여한 석·박사 인력들이 대부분 대기업에 지원한다. 이는 국가적 문제로 단순한 소부장 지원사업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권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