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OLED 공습…위기의 韓 디스플레이 산업

[이슈진단+] 화웨이 촉발 첨단 기술전쟁 그 이후(하)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05/31 17:36    수정: 2019/05/31 17:36

#2029년. OLED 사업 위기로 LG디스플레이의 연간 매출이 10조원대로 반토막이 났다. 중국의 LCD 물량공세로 사업 위기를 겪었던 10년 전의 악몽이 재현된 것이다. 한 때 대형 OLED 시장을 선도했던 LG디스플레이는 중국의 BOE에게 OLED 선도 기업의 자리를 내줬다. BOE의 공세는 무서웠다. BOE는 대량양산에 적합한 잉크젯프린팅 공정기술과 초대형 생산 공장을 앞세워 모든 전자기기로 OLED 도입을 확산시키며 관련 시장을 모두 장악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마찰 여파로 반도체 굴기가 어려워지자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으로 전략을 바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화웨이 제재조치로 격화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가져올 최악의 미래를 가정해봤다. 이는 물론 현실가능성이 거의 없는 시나리오일 수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 미중 무역마찰이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자제품(TV 등)에 고관세가 부과되면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협요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포기해 미국과의 무역분쟁을 해결하고, 디스플레이 초강국을 기치로 OLED 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LCD 디스플레이 시장은 우리나라가 중국에게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다. LG디스플레이가 미래 먹거리로 육성중인 OLED 사업 역시 낙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반도체 굴기에서 OLED 굴기로 전략을 변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미중 무역분쟁 속에서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맞이하고 있는 위협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 중국, 무역마찰 여파에 '반도체'에서 'OLED'로 전략 선회

중국이 지난해부터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빚어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중국이 첨단기술 국가 도약을 목표로 내세운 ‘중국제조 2025’ 정책의 핵심인 반도체 경쟁력 강화 전략이 디스플레이 초강국 도약으로 선회하는 모양새다.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에서 최고 디스플레이 부문을 수상한 LG디스플레이의 ‘8K OLED’. (사진=LGD)

김양재 KTB 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업체는 정부 투자 규제 완화로 지난해 12월부터 OLED 투자를 재개한 상태”라며 “미국 견제(미중 무역마찰)로 중국 반도체 굴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중국 정부 예산과 지원 정책 방향이 디스플레이로 선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신규 공장 팹(공장) 투자는 경기 진작과 고용 확대를 위해 필요한 카드”라며 “반도체와 달리 디스플레이는 미국 경쟁사가 없고, 중국 업체가 양산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미국 추가 제재 여지도 적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 2017년 자국 디스플레이 과잉 투자를 막기 위해 지원 정책을 축소하는 투자 규제에 나선 바 있다. 그 결과 2018년 중국의 6세대 OLED 투자는 월 14만장에서 월 4만천장 규모로 감축했지만, 최근 중국은 디스플레이 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오는 2020년까지 중국의 OLED 투자규모는 2018년 월 4만7천장에서 2019년 월 16만7천장, 2020년 월 19만7천장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중국 1위 디스플레이 업체 BOE는 우한에 두 번째 10.5세대 LCD 생산공장(B17)을 건설 중인 가운데 충칭과 푸저우에 OLED 생산공장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에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은 BOE를 비롯해 CEC 판다, 차이나스타, CHOT, HKC 디스플레이 등의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올해 총 1억2천330만대에 달하는 TV용 디스플레이를 출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LG디스플레이의 연간 생산량(5천250만대)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김양재 연구원은 “미국에는 디스플레이 제조사가 없고,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는 이미 LCD와 OLED 기술을 확보해 현재 발생한 매출을 근거로 지방 정부에서 대출을 받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제재할 근거도 없다”며 “중국 정부는 과거 정부 지원 아래 LCD 산업 헤게머니를 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OLED 지원 에 다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 OLED 굴기 무기는 ‘잉크젯프린팅’ 공정기술

중국의 디스플레이 초강국 도약은 LG디스플레이에게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LCD 산업에서 첨단 공정기술을 익힌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OLED 생산량을 급격히 늘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잉크젯프린팅 공정기술. (자료=LGD)

대표적으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도입을 준비 중인 잉크젯프린팅 기반의 생산공정을 꼽을 수 있다. 이 공정기술은 종이에 잉크를 뿌려 인쇄하는 것처럼 수립 피코리터(1조분의 1리터) 이하의 OLED 용액을 분사해 디스플레이를 양산하는 방식이다. 이는 LG디스플레이가 진공상태에서 기체 화합물을 반응시켜 OLED를 생산하는 진공증착 공정대비 재료효율을 높일 수 있다. 재료효율이 높으면 그만큼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어 중국의 특기인 물량공세로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강조하는 잉크젯프린팅 기술은 한국 기업들도 파일럿 라인을 통해 준비하고 있는 기술이다. 다만 아직 수익성을 확보할 수 없어 대량 양산체제를 갖추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반면, 중국은 수익과 무관하게 정부의 지원 하에 디스플레이 투자를 받아왔고, 거대한 내수시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TV 업체들이 존재해 장기적으로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 큰 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우려를 전했다.

BOE는 잉크젯프린팅 공정방식의 10.5세대 투자를 계획 중인 가운데 이미 지난해 말 잉크젯프린팅 기반의 55인치 OLED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2위 디스플레이 업체인 CSOT도 2021년부터 잉크젯프린팅 공정기반의 11세대 생산공장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 한 상태다. CSOT는 글로벌 TV업체 TCL의 자회사로 지난 2016년부터 주화라는 합작사를 설립해 잉크젯프린팅 공정기술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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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업계는 BOE와 CSOT의 이 같은 전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OLED 기술을 선도하고 있지만, 아직 잉크젯프린팅 기술로 양산에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곽민기 전자부품연구원 디스플레이연구센터장은 “OLED 산업은 LCD보다 더 빨리 중국이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고 본다”며 “중국은 잉크젯프린팅 공정기술을 무기로 OLED 시장 장악을 노리고 있는데 현실화되면 TV나 스마트폰 외 모든 전자제품으로 OLED 채용을 늘려 저변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