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큰 韓, 디지털세 신중해야...통상마찰 우려”

전문가들 “국제조세 개혁과 발맞춰야” 한 목소리

인터넷입력 :2018/11/28 18:44    수정: 2018/11/29 07:52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하면서도 정확한 매출 파악이 안 돼 정당한 세금을 걷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세금 납부에 있어 국내 기업과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회와 여러 언론들은 유럽연합(EU)이나 영국처럼 다국적 기업에 대해 디지털 서비스세나 우회수익세 등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된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조세원칙의 형평성뿐 아니라 정당성을 고려해야 하고,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이 EU나 선진국들의 방식을 취할 경우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시됐다. 미국과의 통상마찰로 역풍을 맞을 수 있어 국제조세규약의 변화의 속도에 발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국제조세협회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반영한 바람직한 세제개편의 방향' 세미나 참석자들.

한국국제조세협회는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반영한 바람직한 세제개편 방향’이란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법무법인 율촌 이경근 부이사장이 진행을 맡고, 숙명여대 오준석 교수, 국제정치경제센터(ECIPE)의 이호석 디렉터, 서울시립대 박훈 교수 등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또 법무법인 태평양의 유철형 변호사, 성균관대 이준봉 교수, 옥스퍼드 대학의 존 벨라 교수 등이 패널토론을 진행했다.

먼저 오준석 교수는 이중과세 문제 해결을 위해 과세권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이중비과세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위한 국제적인 움직임이 EU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 교수는 “조세규약이 강화될수록 해외 투자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유능한 납세자이기도 한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위축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조세원칙에 있어 형평성뿐 아니라 정당성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외국 투자기업은 자사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원천지국(자국의 국민과 자국의 영토 내에서 발생된 모든 소득에 대해 해당국가가 과세권을 행사하는 것)이 세금을 받는 정당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단지 외국 기업이라 해서, 애국심으로 과세 하면 유능한 납세자를 쫓아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들을 끌어와야지 나가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호석 디렉터는 조세와 통상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인터넷 기업에 대한 과세 문제가 자칫 통상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인세를 어떻게 과세할지에 대한 국제적인 규칙이 있는데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구글, 애플 등이 국내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비판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이호석 디렉터는 “디지털 회사들이 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세금을 자국에 내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회사들이 세금을 안 낸다는 것은 오해”라며 “미국 회사들이 상당수 세율이 높은 캘리포니아에 있는데 오히려 한국으로 오면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디렉터는 특정 회사에 대해 일방적으로 과세할 경우, 이 회사의 나라에서도 비슷한 서비스에 과세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구글에 추가적인 과세를 할 경우, 미국이 삼성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

이호석 디렉터는 “수출이 중요한 경제에서는 디지털 세금을 안 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대야 하는 시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면서 “중국이든 미국이든 어떤 분야를 봤을 때 100% 보복이 없을 거란 보장을 할 수 없다면 안 하는 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GDP의 반 이상이 수출에서 나오는 한국의 경우 미국과의 통상 전쟁이나 보복을 당할 경우 전체 경제가 멈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우려가 생기기 전에 국제조세원칙을 바꾸기 위한 협상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디렉터의 결론이다.

박훈 교수 역시 국제조세변화를 따라가되, 국내 환경이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제기했다.

아울러 서버를 고정사업장으로 보고 이를 기반으로 과세를 하고 있어 외국 기업을 향해 서버를 옮기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히 과세 이슈뿐 아니라 서버 압수수색이 일어났을 때 파생적 요인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과세권 행사를 위해 OECD가 논의 중인 고정사업장 개념을 조금씩 바꾸는 건 찬성이지만, 한 나라 과세권 확대가 또 다른 나라 과세권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세수입 때문에 국회가 과세 확대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가 잃는 것도 있다. 우리 법을 바꾸면 상대방 국가와 외교적 마찰이 우려되는 만큼 국제조세 변화에 따라가는 게 중요하지, 정치적 이유로 갑자기 바꾸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균관대학교 이준봉 교수 역시 대규모 다국적 기업을 별도 취급하기 위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고, 조세조약과 충돌할 가능성이 커 수출 위주의 소규모 국가인 우리가 도입하기엔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밖에 우회수익세를 도입한 영국에 대해 존 벨라 교수는 우회수익세로 인한 조세회피 문제가 해결은 되지만, 불확실성에 따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해 기업들이 불만을 갖는 상황이라고. 그 역시 미국의 정치 보복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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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교수는 “현재 논의 되고 있는 디지털세 문제는 이 자체를 논할 게 아니라 국제조세 체계를 바꿔야 하는 것”이라면서 “가치가 창출되는 곳에 과세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용자가 가치를 창출하니 과세해야 한다고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사실 이 가치가 어디에서 창출되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국제조세 체계가 복잡한데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세는 이 복잡도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고, 국제조세체계의 불확실성을 키울 뿐 아니라 소수 나라가 시작하면 미국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