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망중립성' 강풍, 국내시장 강타할까

[긴급진단- 망중립성①] 큰 틀 달라…반향 관심

방송/통신입력 :2018/06/24 12:00    수정: 2018/06/25 14:39

통신사업자에게 강력한 의무를 부여한 망중립성 원칙이 미국에서 공식 폐기됐다.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 해 12월 통과시킨 '인터넷자유회복' 문건이 6월11일(현지시간)부터 본격 적용된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망중립성 원칙 폐기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디넷코리아는 미국 망중립성 폐기를 계기로 한국의 망중립성 논의를 5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주]

망중립성의 기본 원칙은 통신망 제공자들이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통신과 인터넷 콘텐츠업계의 이익이 정면 충돌하는 현상이 자주 벌어졌다.

미국에서도 망중립성 원칙을 놓고 수 년 동안 뜨거운 공방을 벌여 왔다. 친인터넷 성향이 강한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15년엔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확립했다.

미국 인터넷 이용자들이 망중립성 원칙 폐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씨넷)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결국 아짓 파이 위원장이 이끄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전격 폐지하면서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미국이 망중립성 원칙을 공식 폐기하면서 국내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물론 미국과 한국은 법체계와 시장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망중림성 원칙 폐지 근거로 내세운 투자와 서비스 혁신 감소는 한국에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킬 것이란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가이드라인 수준인 한국 망중립성 정책이 네트워크 투자와 서비스 혁신에 미치는 결과를 꼼꼼하게 살펴볼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

■ 미국의 망중립성은 어떻게 변했나

미국 FCC는 지난 해 12월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통신사업자(ISP)의 산업 분류를 재조정하는 '인터넷 자유회복' 문건을 가결 처리했다. 이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11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내 모든 인터넷 서비스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망중립성은 큰 클에선 ISP가 콘텐츠 사업자(CP)나 이용자를 차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 정책 당국은 망중립성 폐지 이유로 강력한 규제 틀 때문에 인터넷 서비스는 혁신이 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또 이로 인해 망 관련 투자는 감소했다면서 느슨한 규제 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망중립성과 관련한 미국의 정책 변화는 조금 특이한 편이다. ISP가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통신 영역 규제에서 정보서비스 영역으로 변경했다.

이 조치로 ISP들에게 부과됐던 차별금지, 차단금지 의무는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망투명성 관리 원칙은 그대로 남아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이번 조치로 규제 기관이 바뀌게 됐다는 점이다. ISP가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1(정보서비스사업자)로 재분류되면서 연방거래위원회(FTC)가 관할권을 갖게 됐다.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기반으로 한 사전 규제가 독점금지법 등에 근거한 사후 규제로 전환된 것이다.

■ 투명성 원칙, 훨씬 더 강력한 규제

미국 망중립성 원칙 폐기가 국내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독점금지법을 기반으로 한 사후규제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할까.

둘째. 여전히 남아 있는 망투명성 원칙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까.

이와 관련해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투명성 원칙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 논리에 따라 서비스나 요금에 차별을 두더라도 망투명성 원칙 때문에 차별 이유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망중립성이 폐지라고 됐더라도 투명성 원칙으로 따져보면 미국이 국내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틀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 ISP의 망 이용대가가 그동안 투명하게 공개됐는지 고려하면 여전히 미국의 규제가 더욱 강력한 범위에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폐지된 망중립성이 한국의 기존 망중립성 가이드라인보다 더욱 강한 규제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ISP 뿐 아니라 CP들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망중립성 문제는 국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5G 네트워크 슬라이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5G 네트워크 투자를 앞두고 통신 업계에서는 하나의 물리적 망에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슬라이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같은 네트워크 안에서 서비스 별 차별을 인정하더라도 각각의 서비스 내에서 차별을 할 경우 망중립성 원칙과 정면 배치될 수도 있다. 따라서 망 투명성 원칙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에 따라 이 부분도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 한국 망중립성은 어디로

현 상황에서 주된 관심사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국내 망중립성 정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부분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중심으로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를 통해 연내에 망중립성 정책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데이터 트래픽 증가와 함께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이전까지 한국의 망중립성 정책은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유지돼 왔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금지행위 규제를 통해 불합리한 차별을 사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정도다.

정부 관계자는 “통신업계, 인터넷 사업자, 전문가 등과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관련 정책의 방향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특정 방향으로 큰 폭의 변화가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이같은 의견은 증권가와 통신업계에서도 일치하는 편이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에도 5G 서비스 개시와는 별개로 망중립성 원칙 제정과 관련한 논란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정책을 두고 한쪽의 방향으로 급선회하는 정책이 마련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면서 “현행 망중립성 원칙이 약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글로벌 CP의 망 이용대가 논의는 새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정책 방향에 미치는 영향이 적더라도 미국이 여러 논란 속에서도 망중립성 정책을 전환한 배경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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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미래연구소의 권오상 센터장은 “미국의 정책 변화가 국내 상황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미국이 기존 망중립성으로 인해 혁신과 투자가 줄고 있다고 꼬집은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 망중립성 정책을 검토하면서 기존의 정책 방향이 혁신 서비스와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국의 망중립성 폐지가 재검토 필요성을 환기시킨 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