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알뜰폰은 죽으라는 겁니까

기자수첩입력 :2018/05/15 14:26    수정: 2018/05/15 14:26

보편요금제를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다. 정부입법으로 추진되는 제도이니 5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이동통신사가 고가요금제에 혜택을 집중하고, 저가요금제는 상대적으로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는 게 보편요금제의 등장 배경이다. 이통사의 상위구간과 하위구간의 요금수준이 324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정부가 법을 동원해서라도 싼 요금제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법적으로 강제하기 어려운 기본료 1만1천원 공약이 일보 후퇴하면서, 보편요금제로 LTE의 요금 수준을 인하시키겠다는 노림수도 포함됐다.

당시 국정위는 “현행 LTE의 요금 수준이 사실상 월 1만원 이상 인하되는 직·간접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3만9천800원짜리 요금제에서 데이터를 300MB 밖에 주질 않고 있지만 2만원대에 약 2GB를 주는 상품이 나오면 자연스레 다른 상품의 요금을 내릴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말이다.

알뜰폰 이미지

여기까지는 정부가 법으로까지 보편요금제를 만들려는 이유도 그 기대효과도 이해된다. 많은 통신소비자들이 한 달 동안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조차 쉽지 않은 300MB짜리 데이터 상품을 보면서 잇속만 챙기려는 통신사에 혀를 내둘러 봤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보편요금제에 대해 이통사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5G 투자여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해외와 비교해 품질 대비 요금이 비싸지 않다’, ‘알뜰폰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등의 얘기는 따지지 않겠다.

정부는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도 ‘요금인가제 폐지’를 담은 법안을 제출했다.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면 대상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요금신고 만으로 자유롭게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어 이통사 간 상품 경쟁을 하게 돼 통신비 인하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이유다. 또 해외에서는 인가제를 유지하는 나라도 없고 규제완화 추세라는 설명까지 친절히 덧붙였다.

하지만 보편요금제는 인가제보다 훨씬 더 강한 규제다. 요금을 인가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업자는 정부가 법에 규정한 대로 요금을 정해 상품을 출시해야만 한다. 인가제를 운영하는 나라가 없어 폐지하자던 정부의 설명이 무색하다.

또, 현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위가 보편요금제의 직·간접적 효과로 LTE 요금제의 1만원 이상 절감을 도입효과로 설명해놓고, 이제 와서 정부는 다른 요금제에까지 영향을 줄 만큼 과도한 규제는 아니라며 발뺌한다. 너무 과도한 규제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서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보편요금제와 알뜰폰 정책의 괴리다. 두 정책은 동시에 존립하기 어렵다. 이는 정부에서도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규개위에서도 우려됐던 부분이다.

지난해 정부는 알뜰폰 도매대가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프리미엄과 중저가 시장을 양분하는 정책을 폈다. 네트워크 투자를 하지 않고 이를 빌려 쓰는 알뜰폰이 이통사의 영역까지 침범하지 말고 중저가 시장에만 머무르라는 일종의 선긋기를 했다.

하지만 보편요금제에서는 이통사가 중저가 시장으로 넘어가도록 법으로 아예 명문화했다. 당연히 프리미엄 시장으로 넘어갈 수도 없고 이통사의 침범까지 당해야 하는 알뜰폰은 정부정책에 따라 고사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알뜰폰에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특례제도를 도입해 알뜰폰도 보편요금제를 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낮은 인지도와 품질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딛고 이통사와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같은 논리라면 알뜰폰에는 이미 보편요금제보다 저렴한 요금제가 있으니 소비자에게 통신비 절감을 위해 알뜰폰을 쓰라고 강요해야 한다. 즉, 알뜰폰에 특례제도가 적용된다고 해서 이통사로 갈 가입자들이 알뜰폰으로 올 리 만무하다.

오히려 ‘싼 게 비지떡’이란 국민들의 보편적 인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알뜰폰의 입지만 더욱 곤궁해 질 수 있다.

따라서 전체 이동통신시장에서 12%를 차지하고 있는 알뜰폰 시장을 정부정책이 이 정도로 무력화시킬 정도라면 '정책실패'를 먼저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통신비 인하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

보편요금제는 ‘경쟁 정책으로는 통신비 인하를 꾀하는 것은 어려워 이를 포기했으며, 정부가 강력한 규제 권한을 바탕으로 직접 개입해 통신비를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때문에 특례제도를 핑계로 '알뜰폰은 가난한 사람만 쓰는 서비스는 아니고 가성비 높은 서비스’라고 아무리 우겨봐야 공허한 메아리다.

알뜰폰을 만든 정부조차 보편요금제보다 '싼' 취급을 하고 있으니 해당 업계가 '알뜰폰'이란 브랜드를 왜 버리려 하는지 이해된다.

더욱이 이런 험로를 뚫고 보편요금제가 출시돼도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 보편요금제의 대상이 음성과 데이터의 소량이용자인데 다량이용자들이 요금절감을 위해 내려올 가능성보다 더 아래 있는 이용자들이 올라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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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동전화 가입자 중 LTE 가입자 비중이 80%에 달하지만 여전히 2G 가입자가 230만여명, 3G가 1천30만여명에 이른다. 오히려 1260만여명에 이르는 2G·3G 가입자가 LTE 가입자로 옮겨갈 수 있다.

이들 가입자를 타깃으로 한 알뜰폰만 잠재 고객층을 잃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