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료 목 멘 국정위, 4차혁명 인프라는…

[기본료 논란(상)] 중장기 윈-윈 전략 찾아야

방송/통신입력 :2017/06/15 07:55    수정: 2017/06/20 08:31

김태진, 박수형 기자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최근 논의되는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논란에 딱 어울린다. 새 정부가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며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면서도 그 핵심 인프라인 5G나 사물인터넷(IoT) 전국망을 구축하는 이동통신사에게 ‘당장 먹고 살 만큼만 빼고 다 내 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현재는 이통사에게 기본료 폐지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과 이동통신 3사의 반발로 한 숨 돌리는 형국이지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결정된 만큼 향후 인사청문회에서는 정책 검증을 빌미로 또 다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가 민간사업자인 통신사에게 강제적으로 요금을 내리라고 할 수 있느냐의 법제도적 문제는 덮어두더라도 1인당 1만1천원, 3인 가구를 기준으로 월 3만3천원의 기본료 면제가 초고속인터넷, 이동통신망 등 ICT 인프라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를 고려하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당장 기본료 폐지가 서민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명분과 이동통신사에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들었다’는 굴레를 씌워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다.

■ 기본료 폐지, 왜 결론 못 내나

기본료 폐지 논란의 요지는 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초기 투자비용을 이통사들이 회수하도록 만들었지만 이미 통신망 구축이 완료됐기 때문에 감가상각이 완료된 불필요한 기본료를 없애자는 것이다.

반대로 통신사들은 5천500만명(알뜰폰 제외)에 이르는 이동전화 가입자의 기본료 1만1천원을 인하하면 연간 약 7조2천억원의 매출 감소가 발생해 적자전환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통신망 중에는 이미 감가상각이 완료된 2G와 3G와 같은 망도 있고, 이통사 주장대로 기본료를 폐지하면 7조원이 넘는 매출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시민단체에서는 7조원의 매출 감소가 이뤄지더라도 과거보다 통신장비 구축비용도 저렴해졌고 마케팅비 축소 등을 통해 충분히 통신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기본료 없애도 통신사들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광고 등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도 알고 있는 것처럼 4G LTE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2011년 하반기(KT는 2012년) 시작된 LTE 서비스는 이후 LTE-A, 광대역 LTE, 광대역 LTE-A, 3밴드 광대역 LTE-A 등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지금은 이를 5G의 중간단계인 4.5G라고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 4G 서비스에 대해서는 여전히 투자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통사들은 2018년 평창올림픽에 맞춰 5G 시연서비스, 2019년 5G 상용화를 위해 또 다시 전국망 구축에 나서는 실정이다. 통신 3사가 연간 지출하는 설비투자 비용은 약 6조원에 이른다.

■ 말 바뀐 4차 산업혁명과 기본료 폐지

기본료 폐지 찬반을 주장하는 양측의 옮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것은 기본료를 폐지했을 때 이것이 국가적으로나 소비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실익이 있느냐의 여부다.

“ICT 경쟁력이 참여정부 때 세계 3위로 평가를 받았는데 지난 10년간 27위까지 떨어졌고,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준비 수준이 42위라는 평가를 받고 많은 전문가들이 충격을 받았다”

지난 1일 국가기획자문위원회의 김진표 위원장이 미래부를 포함한 6개 부처 합동 업무보고서에서 한 말이다.

이날 그는 “우리 정부가 아직도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이나 어떤 기업의 영역이 도입될 때 규제 때문에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국제사회 전문가들에게 지적을 받는다”면서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성장 동력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철저히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면 바꿔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정부 공약을 만들었다는 점을 공유해 달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위한 성장 동력 인프라 구축에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고 ICT 경쟁력을 10년 전으로 다시 복원시키자는 의미를 강조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전 “신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는 최소규제, 자율규제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신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모두 다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ICT 경쟁력의 토대가 되는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동통신사에게는 반대의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자율규제가 아닌 정부의 행정지도를 통해 요금인하를 강요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5G와 IoT망을 기반으로 모든 산업 분야의 시스템을 ICT 기술과 융합시켜 지능화하고 고도화 해 산업을 혁신하자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초연결’, ‘초지능’ 사회라고 부르는 이유다.

여기에는 의료, 교육, 자동차, 건설, 제조, 국방 등 모든 산업 분야가 포함되며 법제도부터 교육, 사회, 문화 등 국가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전제도 요구된다.

새 정부가 각 부처의 협업을 위해 대통령 직속의 4차산업혁명위위원회를 구성하고, 4차 산업을 주관하게 될 미래부에 장관급 차관 자리를 만들어 예산 권한까지 부여한 것도 이를 고려한 조치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촉발시켰고 대표적 분야로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 드론 산업이 꼽힌다”며 “하지만 자율주행차, 드론 산업도 현재 4G망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하고 5G 이상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사 입장에서는 새롭게 망을 투자하는 것보다 이미 투자된 망에서 최대한 서비스를 지속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며 “감가상각이 끝났다고 기본료 등 요금인하만 강요받는다면 통신사들이 서둘러 5G나 IoT에 투자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평창올림픽 등 대형 국제 행사를 빌미로 사실상 조기 투자를 강요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통신서비스에서 늘 세계 최초란 타이틀을 가져 왔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ICT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과도기에 국가와 국민, 통신사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기본료 폐지만 강요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 기본료 폐지하면 통신비 이슈 해결되나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모두 20%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걸고 이를 실천하겠다며 기본료 1천원 인하, 이동통신 가입비 폐지를 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통신비가 절감됐다고 느끼는 소비자는 없다.

기본료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3~4인 가구의 월 통신비가 30~40만원에 달해 가계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기본료를 우선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이지만, 가구당 월 3만3천원~4만4천원의 통신비가 절감된다고 통신비 이슈는 해결되지 않는다.

즉, 통신비 절감 이슈와 기본료 폐지는 등치 관계가 아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로 음성에서 데이터로 통신 이용패턴이 변화하는 데 맞춰 소비자들이 최대한 저렴하게 통신비 지출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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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기본료를 폐지하고 정액제 기반의 데이터 요금을 종량제로 바꾼다거나 요금체계를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만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쉽게 가는 길은 그만큼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고 오히려 폭증하는 데이터 이용량에 맞춰 실질적인 요금인하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통사들에게도 투자 유인책을 만들어주면서 해법을 찾아야지 향후 5G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 인프라 조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