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경쟁상대는 ICT기업이다"

권혁순 KB핀테크허브센터장 "협업도 중요"

인터넷입력 :2016/06/29 15:15    수정: 2016/06/29 15:16

손경호 기자

핀테크 시대, KB국민은행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뱅크나 뱅킹처럼 브랜드만 놓고 볼 때 은행 이미지를 풍기지 않는 모바일 금융 서비스 '리브(Liiv)'까지 내놨다. '리브'에서 KB국민은행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름만 보면 비 금융 회사들이 내놓은 서비스처럼 느껴진다.

리브는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OTP생성기 없이도 계좌를 개설하고, 조회, 송금하는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은행은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협업을 통해 여기에 적용된 기술을 캄보디아 현지에도 '디지털뱅크'라는 이름으로 내달 초부터 서비스할 예정이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주목하는 블록체인 기술도 도입했다.

KB국민은행은 비대면 본인인증과 관련된 전자문서를 기록하는 용도로 쓰는가 하면 KB저축은행은 공인인증서 대신 사설인증서 정보를 블록체인에 암호화된 형태로 저장해 활용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KB국민카드도 개념증명(POC)을 거쳐 결제 내역을 기록하는 등 용도로 블록체인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원래 암호화 화폐인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기록하는 일종의 온라인 장부 역할을 해왔던 블록체인은 중앙서버를 활용하는 방식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더 안전하게 각종 문서나 거래내역을 저장하고, 조회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R3CEV 컨소시엄, 하이퍼레저프로젝트 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주요 금융사가 외환송금, 은행 간 어음교환 등에 이러한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KB금융그룹 계열사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다고 결정한 글로벌 트렌드에 비춰서도 상당히 발빠른 행보라 주목된다.

권혁순 KB핀테크허브센터장.

■이제 경쟁사는 ICT기업

불과 몇 년 전만하더라도 검은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고지식해 보이는 금융맨들이 먼저 떠올랐던 금융사들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뭘까?

일각에서는 정부가 핀테크 바람을 불어넣다보니 좀처럼 변화를 싫어하는 금융사들 입장에서 하는 시늉만 내다 말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그러나 금융사 내부에서도 나름대로 사정은 절박해 보인다.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따라가지 않고서는 고객들을 뺏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큰 탓이다. 대결 상대는 기존 금융사가 아니라 보다 빠르고, 편리하고, 유용한 핀테크 서비스로 무장한 ICT기업이라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28일 서울 여의도 KB금융지주 사옥 인근에서 만난 권혁순 KB핀테크허브센터장은 "과거에는 금융사들이 안정적인 서비스를 최고라 여겼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도입할 때는 굉장히 소극적이었다"고 운을 뗐다.

반면 지금은 "더 좋은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서비스 레벨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인식에서 금융사들도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정부 정책도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금융사 스스로 느끼고 있는 위기의식이 더 컸다는 뜻이다.

권 센터장은 1987년 한국주택은행에 입사한 뒤 이 은행이 KB국민은행과 통합된 이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전산업무를 하다가 지난해 3월26일부터 핀테크허브센터장을 맡게 됐다. 2000년 초 휴대폰에 별도 금융거래용 칩을 탑재해 사용하는 IC칩뱅킹을 개발하고, 이메일뱅킹, WAP뱅킹 등 현재 스마트폰뱅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겪었다.

그의 눈에 비친 현재 금융사들의 경쟁사는 은행과 같은 기존 금융사가 아니라 IT회사, 이동통신회사 등 ICT기업들이다. 수많은 사용자들을 확보한 이들 기업이 발빠르게 핀테크 서비스를 내놓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고객들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당장 내년에 출범하게 될 카카오뱅크, K뱅크 등이 그렇다.

KB국민은행, KB국민카드, KB저축은행 등이 코인플러그와 협업을 통해 블록체인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권 센터장은 "과거에 은행에서 비대면 신규계좌개설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서비스 되는 중"이라며 "예전에는 빅데이터 갖고 뭘 하겠냐고 생각하고, 과거에는 컴퓨터가 펀드매니저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금융사들도 로보어드바이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권이 공들이는 '블록체인' 기술 도입 배경 보니...

금융권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도 달라진 경쟁환경이 반영된 결과다.

권 센터장은 "블록체인이 암호화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금융사들이 이것을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비트코인은 은행에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와 제도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은 활용할만한 곳이 많겠다고 판단해 도입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KB국민은행은 공인인증서, 비대면 본인인증 관련 전자문서를 기록하는 용도 외에 해외송금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방법을 검토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 KB국민은행, KB저축은행, KB국민카드의 모든 서비스에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권 센터장은 "저축은행, 국민카드의 경우 블록체인 기반 사설인증서로 계좌에 대한 조회 등 서비스만 활용할 수 있으며, 아직까지는 안전성에 대해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비대면 계좌개설, 계좌조회 등 업무에는 블록체인 기반 기술이 적용됐지만 여전히 이체를 위해서는 오프라인 지점에 방문해 전자금융거래신청서를 작성하고 발급받은 공인인증서나 보안매체들을 활용해야한다는 설명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법적, 제도적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캄보디아에 서비스할 모바일뱅크는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활용해 거래정보를 암호화해서 전송하는 방법을 적용할 계획이다.

■R3CEV 가입할 것...비즈니스 모델은 지켜봐야

국내서는 KEB하나은행, 신한은행이 가입하기로 한 R3CEV 컨소시엄에 대한 의견은 어떨까?

결론적으로 KB국민은행도 이 컨소시엄에 참여할 생각이다. 다만 권 센터장은 "아직까지 R3에 가입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몇몇 계약조항들을 검토해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KB금융그룹이 운영 중인 KB스타터스밸리 소속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협업해 캄보디아에 '글로벌 디지털 뱅킹' 서비스를 내달 초부터 서비스할 계획이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참여해 블록체인 기반 금융인프라를 만들려는 프로젝트에 발을 담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서비스를 하려는 것인지 거리를 두고 지켜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R3CEV 가입비용은 3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ICT와 경쟁해도, 협업 끈 놓지 않아

금융사가 ICT기업을 새로운 경쟁사로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기존 핀테크 핵심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들과 협업은 보다 긴밀해졌다.

KB핀테크허브센터는 서울 명동에 마련한 'KB스타터스밸리'에서 핀테크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와 멘토링, 협업 등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P2P대출서비스 스타트업인 펀디드와 패스콘이라는 아이콘 기반 인증기술을 가진 지코드이노베이션이 이곳에 입주했다.

이와 함께 내달 초에는 이곳에서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캄보디아 현지에 디지털뱅크를 서비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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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기업들이 위협적인 경쟁사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내년 출범 예정인 인터넷전문은행이 빠른 시일 내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권 센터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이 킬러앱을 갖고 나올 것이지만 스마트폰만을 사용하는 금융서비스가 기존 은행들을 추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기존 은행들은 전국 곳곳에 설립한 오프라인 지점들이 일종의 'O2O' 서비스 형태로 운영된다. 더구나 인터넷뱅킹, 스마트폰뱅킹을 통해 조회, 이체 등 서비스를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젊은층 조차도 아직까지는 은행 창구에서 여러가지 상담을 거쳐 계좌를 개설하는 비율이 높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