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꺼내든 현대차, 정의선 체제 힘 싣는다

세대교체 가속화 조짐...실적 악화 속 칼바람 관측도

카테크입력 :2015/11/18 14:57    수정: 2015/11/18 17:40

정기수 기자

실적 악화에 시달린 재계에 이른 추위가 임박했다.

주요 대기업들이 올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데다, 3세 경영인들의 본격적인 경영 행보 등 세대교체 조짐까지 더해져 연말 인사에 인적 쇄신을 더한 큰 폭의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자동차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 예측하기 힘든 신흥국 환율 리스크 등 연이은 악재로 올 한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입차 공세에 따른 내수 고전은 물론, 저가(低價)로 무장한 중국 현지업체와의 경쟁 심화, 엔저와 신흥국 경기침체 등 안팎으로 거센 풍랑에 휩싸였다.

실적 부진을 이유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인사 잣대를 들이댈 경우, '물갈이'식 인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다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실적 부진과 품질 논란 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사장단급 인사를 수시로 단행해 온 만큼, 연말 인사에서 문책 인사의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최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글로벌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범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세대교체의 바람도 감지된다.

제네시스 브랜드 선포식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사진=지디넷코리아)

18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내달 25일을 전후해 연말 정기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연말 정기인사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수시로 주요 보직에 대한 승진이나 교체, 경질 카드를 꺼내든다.

실제 올 들어서도 특정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현대차그룹의 사장단 교체는 숨가쁘게 진행돼왔다. 이미 신종운 현대차 품질담당 부회장과 안병모 기아차 북미총괄 부회장이 자리를 비웠다. 한동안 판매 부진을 겪던 중국법인에 대한 인사도 최종적으로 자문으로 물러났던 김태윤 상근자문을 중국담당 사장에 재차 불러들이며 최근 마무리됐다.

올해 이미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굵직한 인사가 몇 차례 단행된 데다, 과거 전례를 감안할 때 정기 연말인사에서는 주로 계열사별 임원 승진 인사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여기에 정의선 부회장이 고성능차 브랜드 'N'에 이어 최근 럭셔리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을 통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이를 보좌하기 위한 추가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룹 안팎의 관측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연말 정기인사는 승진 인사가 주축을 이뤄 문책성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며 "그룹의 사활을 건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을 위한 인적 보강과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싣고 있는 연구·개발(R&D) 분야의 승진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 4일 제네시스 브랜드 출시를 직접 발표하며 브랜드의 방향성과 목표를 설명했다. 정 부회장이 국내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2009년 YF쏘나타 신차발표회 이후 6년 만이다.

특히 이번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을 정 부회장이 주도한 것을 놓고 그룹 내 입지 강화는 물론, 본격적인 경영 승계의 신호탄으로 재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여느 신차발표회와 달리 이번 행사가 현대차가 창사 이래 최초로 고급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공표하는 자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분석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후계자로서의 달라진 입지와 역할에 대한 당위성을 그룹 안팎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이번 제네시스 프로젝트는 정 부회장이 통과해야 할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진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정 부회장이 이를 기반으로 현대차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킨 기린아로 명성을 얻을 지, 한계를 절감하는 3세 경영인으로 남을 지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전사적으로 정 부회장의 지원에 전폭 나서며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과 고려대 동문인 장원신 부사장(해외영업본부장), 김걸 부사장(기획조정 1실장), 이용우 부사장(HMB법인장) 등 정 부회장에게 힘을 받쳐줄 수 있는 젋은 세대들이 전면에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 부회장이 브랜드 고급화 전략 강화 차원에서 2010년 영입했던 조원홍 부사장(마케팅사업부장)의 역할 확대도 예상된다.

이밖에 현대차그룹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 부회장이 야심차게 영입해 온 인사들의 영향력 변화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 2006년 디자인 혁신을 위해 영입한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물론, 지난해 말 고성능차 브랜드 개발을 위해 데려온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 등은 향후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이 고급차와 고성능차에 향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지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디자인을 맡기 위해 내년 상반기부터 합류할 예정인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 출신의 루크 동커볼케는 향후 슈라이어 사장 은퇴 후 현대차와 제네시스 디자인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꼽힌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사진=지디넷코리아)

9명으로 숫자가 줄어든 부회장단에서도 정 부회장의 측근을 전진 배치하며 향후 조직 다지기를 위한 추가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포스트 양웅철'로 회자되며 그룹 내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권문식 부회장과 고성능차 개발을 뒷받침할 김해진 부회장, 정 부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부회장 등이 중요 인사로 분류된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부회장단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비롯해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 윤여철 현대차 노무담당 부회장, 양웅철 R&D(연구개발) 총괄담당 부회장, 김용환 전략기획담당 부회장, 권문식 현대기아차 부회장(연구개발 본부장), 김해진 현대파워텍 부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다.

재계 관계자는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차그룹의 인사에서도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특징은 세대교체였다"면서 "정 부회장을 보좌할 수 있는 인물을을 중심으로 출범을 알린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와 고성능 브랜드 'N' 관련 핵심 인물들의 전면 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수시로 현안별 대응 인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정몽구 회장이 연말 인사에서 다시 한 번 칼을 빼들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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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가 올해 내수용 역차별 의혹을 비롯해 리콜, 연비과장 등 끊임없는 품질 논란과 노조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과 실적 부진에 시달려 온 만큼, 책임을 묻는 차원의 문책 인사가 단행될 여지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신상필벌'을 강조하는 정몽구 회장의 인사 특징을 고려하면 품질 논란과 노조 파업, 실적 부진 등의 책임을 물어 연말 또는 불시에 문책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