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통신비가 도마에 오르는 까닭

통신비 인하요구 무엇인 문제인가①

일반입력 :2015/04/14 06:00    수정: 2015/04/14 17:28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통신시장이 얼어붙었다. 정부에서는 기기변경이나 단말기 판매량 수치가 법 시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발표하지만 유통업계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밑바닥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회에서는 이보다 더 파격적인 완전자급제 도입, 기본료 폐지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의 이들 주장이, 객관적 지표나 논리에 의해 제기되기보다는 매번 선거철용 구호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정치권의 주장들도 이달 말 치러지는 보궐선거와 내년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겨냥한 사전포석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에서는 총 4회에 걸쳐 매번 선거철마다 반복되고 있는 통신비 인하 주장이 무엇이 문제이고, 또 세계 각국에 비해 우리나라 통신비가 어느 수준인지 점검해본다.[편집자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4월 임시국회 화두는 단연 통신비 인하다. 지난 10일 열린 전체회의에서는 완전자급제 도입, 요금인가제 폐지, 알뜰폰 활성화 등 정부를 향한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게 전개됐다. 정부가 시행 중인 단말기유통법이 사실상 시장에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만큼, 국회가 이에 대한 후속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은 “단말기유통법이 현재 효력 상실 상태”라며 “단말기유통법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정부가 시장 메커니즘에 개입하는 땜질 처방을 내놓고 있고, 6개월이 지난 단말기유통법에 대해서 소비자나 유통망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이어 “완전자급제 도입을 통한 단말 가격 경쟁, 요금인가제 폐지를 통한 요금경쟁 활성화, 알뜰폰 활성화를 통한 서비스 촉진 정책으로 통신비 인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등과 함께 ‘기본료 폐지’ 등을 요구하며 요금인가제 폐지나 변형된 형태인 ‘이용약관심의위원회’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OECD 국가의 평균 통신비가 2%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배가 넘는 가계통신비를 부담하고 있는 만큼, 통신비 인하정책이 절실하다는게 우 의원의 주장이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통신비 인하 요구

정치권이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통신비 인하 압박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이나 관련 업계에서는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정치권의 요구가 선거에서 표심을 얻기위한 선심성 공약으로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오는 29일 보궐 선거와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의심을 들게하는 부문이다.

과거에도 정치권은 선거때마다 통신비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2012년 총선거를 앞두고 꺼낸 통신비 인하 주장이다. 당시 정치권의 주장으로 2011년 9월 SK텔레콤을 시작으로 이동통신 3사가 기본료를 1천원 인하한 바 있다. 당시, 정치권의 통신비 인하 요구가 전국을 시끄럽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한 효과는 미미했다.

전문가들은 통신비 인하 압박이 이동통신 사용자이자,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대표적인 표퓰리즘 행보로 판단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전에 국내 통신비 수준은 어느 수준이고, 또 시장상황은 어떤지 면밀한 검토없이, 통신비 인하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통신비는 통신사간 자율경쟁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이 매번 정부나 이통사들에 일방적으로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질 전망이다.

■ 가계통신비 진단과 처방 제각각

국회에서 주장하는 가계통신비 주장을 뜯어보면 진단과 처방이 제대로 인지조차 헷갈린다. 통신비가 비싸다는 것인지, 휴대폰이 비싸다는 것인지 두루뭉술하다. 진단은 통신요금과 단말 할부금을 더한 가계통신비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처방은 사실상 통신요금 인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회에서는 단말기유통법 시행 당시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제조사의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통신사의 지원금과 제조사의 장려금을 구분하는 ‘분리공시’를 주장했지만, 현재 이 얘기는 쏙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단말자급제의 경우 통신사, 제조사뿐만 아니라 대리점·판매점 등 유통업계의 존폐 여부가 달려 있고 소비자가 통신서비스 가입 등에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수년 내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나 통계청을 비롯한 여러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소비자가 느끼는 가계통신비의 부담은 비싼 단말기 탓이 크다.

문병호 의원은 “우리나라 휴대폰 가격이 지난 2012년부터 3년간 OECD 29개국 중 1~2위를 다투고 있어 가계통신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아예 국내에서는 저가폰이 출시조차 되지 않고 있어 2012~2014년 가트너의 조사대상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저가폰에 대한 조사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불법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고가요금제 가입자가 줄고, 중·저가요금제 가입자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싼 단말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굳이 고가요금제에 가입하지 않고 합리적인 통신 소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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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통신비 인하 방안의 일환으로 알뜰폰이 보급되고 있지만, 정작 가계통신비에 부담을 주고 있는 출고가 인하 대책은 효과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단순히 선거를 위한 홍보 전략이 아닌 제대로 된 가계통신비 인하 대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제대로 된 처방과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