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가 하이엔드 이어폰 “묻혔던 소리 캐낸다”

젠하이저 IE 800 리뷰

일반입력 :2014/08/19 10:31

권봉석

젠하이저 IE 800(이하 IE 800)은 젠하이저 이어폰 중 플래그십에 해당하는 모델이다. 귓속에 유닛을 집어넣는 인이어 방식 이어폰이며 케이블은 비대칭이 아닌 대칭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위한 통화 기능이나 재생 조절 기능은 없으며 케이블 길이는 1.2미터(110cm), 무게는 16g이다. 음향기기와 연결되는 단자는 L자 플러그를 썼다. 이어폰 본체는 긁힘에 강한 세라믹 소재를 사용했다.

재생 가능 대역폭은 5 ~ 46,500Hz이며 헤드폰에 쓰이는 와이드 밴드 트랜스듀서를 소형화한 드라이버다. 통풍 구멍을 2개 만들어 소리가 떨리는 현상을 줄였다. 귀에 끼우는 이어팁은 총 네 종류이며 실리콘으로 만들어 피부 알레르기 현상을 최소화 했다. 전량 독일에서 생산되며 무상보증기간은 구입 후 2년간이다. 가격은 67만원 선.

좌·우 분리 부분으로 쏠리는 무게중심

몸값이 여간한 고급형 헤드폰만큼 비싼 이어폰이지만 생김새는 특이하거나 썩 인상적이지는 않다. 케이블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케블라 소재 위에 피복을 씌워 마찰이나 꼬임 현상이 덜하다. 여기에 이어폰 부분과 케이블이 2단으로 분리되게 만들어 케이블이 고장날 경우 연장선 부분만 쉽게 교체할 수 있다. 다만 연결부위가 무게중심 역할을 해서 고개를 돌리거나 끼고 있을때 가슴쪽으로 케이블이 와닿아 약간 갑갑한 느낌을 준다. 케이블 길이가 1.2미터로 짧은 탓에 키가 큰 사람이 바지 뒷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놓고 IE 800을 연결하면 케이블이 몸 뒤로 당겨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어팁은 대·소, 원형·타원형 등 총 네 종류다. 자신에게 맞는 이어팁을 고르지 못할 경우 고음은 귀가 따갑고 저음은 맥이 빠진데다 볼륨을 키워도 자꾸 주위 소리가 들려오는 현상을 겪는다. 이런 현상을 겪고 있다면 크기나 모양이 다른 이어팁을 끼워보며 시도를 해 보아야 한다. 지나치게 볼륨을 키우지 않은 상태에서 키고 있을 때 주위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묻혔던 소리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흔히 온이어 이어폰이라고 하면 중저음이 강조된 대신 중간 대역이나 고음역대가 무언가에 가로막혀 다소 답답한 인상을 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IE 800은 고음역대는 매우 명확하게, 저음역대는 탄력있게 잡아준다. 심벌즈가 찰랑이는 소리나 스네어드럼을 두드릴 때 경쾌한 여운도 그대로 살려낸다. 주위 소리를 가려주는 차음성때문에 공간감도 넓다.

특히 여러 악기가 동시에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템포가 빠른(BPM이 높은) 곡, 혹은 속도감이 넘치는 곡을 들어보면 이 이어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보컬은 보컬대로, 악기는 악기대로 들리지만 겉돌거나 융화되지 않아 어색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이른바 ‘묻힌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작곡·편곡자나 프로듀서가 드러내고 싶었지만 다른 소리에 묻혀버린 소리, 또는 다른 소리에 묻힐 것으로 예상하고 거의 손을 안 댄 소리까지 듣게 된다. 이전에 쓰던 이어폰으로 자주 듣던 곡을 들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 가지 신경쓰이는 것은 바로 치찰음이다. IE 800은 상당히 아슬아슬한 수준에서 치찰음을 억제하고 있는데 재생하는 기기나 음원에 따라 유독 치찰음이 귀에 거슬릴 정도로 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퀄라이저 등으로 저음역대를 약간 낮추거나 이어팁을 바꿔 고막과 이어폰 사이 거리를 떨어뜨리면 나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방법을 써도 개선되면 어느 정도는 타협하고 쓰거나, 아쉽지만 떠나 보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결론 : 거품이 빠진 하이엔드 이어폰, 하지만 올라운드는 아니다

IE 800은 가격 하락이 극심한 하이엔드 이어폰이다. 2년 전 국내에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정가가 110만원을 훌쩍 넘겼지만 지금은 거의 반값(?)인 60만원 전후에 살 수 있다. 70만원 전후에 파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봐도 확실히 싸다. 그럼에도 확 ‘저지를 수’ 있는 몸값은 여전히 아니다. 제법 괜찮은 헤드폰을 세 개나 사서 쓸 수 있는 돈을 이어폰 하나에 쏟아 붓는 것은 여간한 확신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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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IE 800은 착용 상태, 특히 이어팁 밀착 여부에 따라 소리가 크게 달라진다. 제품에 포함된 이어팁을 모두 끼워봐도 영 마음에 드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이 이어폰은 포기하는게 낫다. 또 인이어형 이어폰 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는 소리를 들려주지만 담백하거나 질리지 않고 오래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니다. 묻힌 소리를 살려내는 재주가 처음에는 신기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혹은 큰 기대를 걸고 샀다가 평균 이상의 만족도를 얻기 꽤 어려운 조건이 많이 걸려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IE 800은 여태껏 쓰던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을 숨기고 있다. 모든 음향기기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 제품만큼은 직접 들어보고 판단할 것을 권한다. 단, 들고 난뒤에도 뒷감당이 걱정된다면 차라리 듣지 말 것을 권한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그간 잘 사용하던 다른 좋은 이어폰도 3천원짜리 싸구려 소리로 들리게 만드는 위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