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소녀' 권은희, KT 회장에 던지는 돌직구

"새 CEO, 낙하산 벗고 IT비전과 리더십 갖춘 인물로"

일반입력 :2013/11/07 17:38    수정: 2013/11/07 17:40

정윤희 기자

“옛날 레코드가 아니었으면 한다. 옛날에 다 한 판 돌렸던 사람들.”

“자리 욕심, 연봉 욕심 안 된다.”

돌직구가 쏟아진다. 25년간 몸담았던 친정에 뱉어내는 쓴소리다. 그만큼 현 KT의 상황이 누구보다 더 안타깝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권은희 의원(새누리당)을 만났다. 지난 1986년부터 KT에서 근무해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임원(상무)으로 승진한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KT 저격수’로 변신했다.

“KT의 가장 큰 문제는 경영진과 직원들 사이의 이질감이에요. 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진지 오래고요. 사실 KT 사람들은 130여년의 역사와 프라이드를 가진, 마음만 먹으면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직원들이 능력 발휘를 못하게, 하고 싶지도 않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새 회장, 낙하산-연봉 욕심 안돼…직원 보듬어야

권의원이 KT 회장에 가장 필요한 자질로 ‘따뜻한 리더십’을 꼽은 이유다. 상처 받고 사기가 저하된 직원들을 치유하고 응집시킬 수 있는 인물, 3만2천 직원들을 보듬어줄 그런 인물이 새 CEO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통신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KT가 통신업계의 ‘맏형’인데다 유무선 통신, 방송, SI 등 사업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점을 감안하면 KT를, 통신을 잘 아는 사람이 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 CEO 자신이 아주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통신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 핵심이다.

“새 CEO는 옛날 레코드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죠. 이석채 회장도 탈통신을 외치긴 했지만 본업(통신)을 버리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패러다임 변화에 맞게 통신을 통해 사업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카드, 렌탈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때문에 최근 거론되는 이석채 회장의 후임 하마평을 보는 그의 마음은 다소 착잡하다. “제가 누구를 적합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열손가락을 넘어가는 하마평 중 적합한 인물이 있는 동시에 일부는 너무 인위적, 의도적인 인물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다.

“(기사를 보다보면) 본인이 KT 회장이 되고 싶어 의도적으로 누구는 안 된다고 하거나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이미 회장, 부회장, 사장까지 다 짜고 나온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들 정도입니다. 지금의 KT 상황에서는 KT를 좀 아는 분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아무래도 KT에 적을 뒀던 분이 직간접적으로 KT에 대해 많이 알지 않겠습니까.”

권은희 의원은 일례로 ‘스티브 잡스의 연봉 1달러’를 들었다. 무작정 CEO의 연봉을 깎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리나 연봉 욕심이 아닌 KT를 정말 잘 이끌어갈 사람을 뽑아달라는 안타까운 당부다.

“저는 새로 CEO가 되는 분이 선언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월급으로 월 100만원씩만 받겠다. 나머지는 연말에 우리 직원들과 이사회가 나를 평가해서 달라. 연봉을 바라고 오는 사람은 안 된다는 겁니다. KT 회장은 그런 각오가 있어야 됩니다.”

■낙하산 정리 시급…직원 구조조정 안돼

새 회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는 ‘낙하산 정리’를 꼽았다. 회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적인 인사는 정리하고 정말로 필요한 사람만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직원들의 처우를 공평하게 정리하는 것도 과제로 들었다.

“어떤 사람은 똑같은 직급인데 나보다 연봉을 두 배 받는다 하면 불만이 생기지 않겠어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직급에 따라 직원들도 연봉과 처우를 맞춰줘야 합니다. 정말 능력이 뛰어나다면 연봉을 높일 것이 아니라 직급을 높여야죠. 그런 불만 요소들을 정리해야 3만2천여 직원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KT의 비전을 제시하는 점도 중요하다. 아주 먼 비전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미래 정도는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직원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석채 회장이 KT 임직원이 경쟁사보다 훨씬 많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것이 모든 것의 발단이었다는 의견이다. 권 의원은 KT를 ‘대갓집 맏며느리’에 비유하며 이를 설명했다.

“정리해야 하는 것은 직원이 아니라 낙하산입니다. KT는 이를테면 대갓집 맏며느리로 손이 많이 가고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필요 없는 막내며느리와는 다르죠. 현재의 상황에서 각자 자기 일에 성과를 내서 회사가 이익을 내야 하는 거지, 직원들을 자르는 것은 아닙니다. 또 KT는 국민기업이니 일자리 창출에도 책임이 있고요.”

■이석채, KT보다 대그룹 스케일…직원 포용 아쉬워

지난 3일 사의를 표명한 이석채 회장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KT라는 회사보다 너무 큰 스케일, '대기업 회장님' 스타일이었다는 얘기다.

이 회장이 KT의 묵었던 숙제였던 내부 비리를 일부 정화하긴 했지만 ‘원래 KT’를 품는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KT 내부에서는 기존 직원을 뜻하는 ‘원래 KT’, 이 회장이 영입한 외부 인사를 칭하는 ‘올레 KT’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낙하산이 정리되면 나머지는 다 품어야 합니다. 아무리 스타일이 다르다 해도 내가 데리고 있는 직원이 가장 소중한 사람인거죠. 그런데 이석채 회장은 ‘원래 KT’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외부에서 경영자를 많이 영입해 이들 중심의 경영을 하다 보니 정책 부분에서도 실책이 있었다고 봅니다.”

KT 현실에 맞지 않는 여러 정책 시도들을 추진한 것 역시 실책으로 꼽았다. 특히 부동산 자산 매각(세일&리스백)은 경영적 판단이었겠지만 KT 입장에서는 옳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세일&리스백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고, 다시 임대 계약을 맺어 사용하는 형태를 뜻한다.

“선진 기법이랍시고 여러 시도를 했는데 현실에 맞지 않았어요. 저는 세일&리스백이 아무리 우수한 기법이라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무궁화 위성 매각 논란, 러시아 통신산업 매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경영적 판단이었겠지만 KT로서는 실책이라고 봅니다.”

권 의원은 이 회장의 배임 정책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내놨다. 회사의 실적에 관계없이 배당률을 정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주주총회 당시 주주들에게 주당 2천원의 배당을 약속했었다.

“이건 심하게 말하면 명백한 배임입니다. 배당은 순익을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데 이익이 나든 적자가 나든 상관없이 무조건 2천원을 주다니요. 자신의 연임을 위해 회사를 일부 이용한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듭니다. 잘한 부분도 있지만 KT 회장으로서는 스케일이 너무 컸어요.”

■KT, 낙하산 굴레 벗으려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시 ‘낙하산’으로 흘러갔다. KT에 대해 얘기를 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바뀐 KT로서는 뼈아픈 얘기다. 이석채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현재까지도 정재계의 눈은 KT 내부가 아닌 청와대로 쏠려있는 상황이다.

“이석채 회장 역시도 그렇게 왔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일종의 학습효과를 준 겁니다. 지금 KT의 CEO 선정 과정을 보면 외부 개입이 안 될 수가 없는 구조에요. 예전에는 CEO추천위원회에 KT 전 사장, 외부 인사가 들어가도록 돼있는데 지금은 이 회장이 뽑아놓은 이사회가 후임을 뽑게 돼있어요. 이 회장의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죠.”

권 의원은 대안 중 하나로 CEO추천위원회 자문을 꼽았다. KT라는 선박을 누가 잘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해 CEO추천위원회가 업계 전문가, KT 직원들, 정부 등에 자문을 받으라는 권유다. “오로지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으로 오는 후보는 사양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다.

열린 경영 역시 강조했다. 직원들과 과정과 성과를 공유해야 하는데 일부 사람만 알게 되면 직원들은 수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벽돌공 이야기를 예로 들려줬다.

“벽돌공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단순히 벽돌을 쌓는다 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짓고 있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벌써 일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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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KT 직원들에 대한 믿음이다. 130여년 동안 축적된 저력이 있다는 얘기다. 쓴소리의 저변에 깔린 KT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KT 직원들은 하고자 하면 어느 누구보다 잘합니다. 외주를 많이 활용하는 SK텔레콤, LG유플러스와 달리 KT는 직접 하는 것이 많습니다. 직접 하기 때문에 더더욱 잘할 수 있는 거죠. 저는 KT가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정상궤도를 찾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