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딜레마 빠진 삼성..."HW+SW=?"

일반입력 :2013/10/15 13:57    수정: 2013/10/16 09:59

성장 둔화설에 휘말린 삼성전자가 이달초 3분기 잠정 실적을 통해 업계 전망치를 넘어섰지만 '위기론'을 완벽하게 가라앉히진 못했다. 회사가 하드웨어(HW) 제품 혁신, 취약한 소프트웨어(SW) 인력 확보, 외부 생태계 강화를 해법으로 취한 가운데 앞으로 단기 성과 위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게 숙제로 꼽힌다.

그간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 시리즈를 시작으로 갤럭시기어와 최근 갤럭시라운드까지, HW 특성을 활용한 제품 혁신을 강조해 왔다. 또 SW역량 강화 목표로 국내서는 인문계 출신 채용을 강화하고 국외서는 벤처업체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자사 기술과 타이젠 등 자체 플랫폼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를 열며 자체 생태계 영향력 키우기에 나섰다.

업계는 이런 삼성전자의 전략적 행보를 놓고 긍정도 부정도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일단 아직 콘텐츠 없는 HW 위주의 혁신을 뜻 깊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와 별개로 벤처인수나 SW인재 채용방식의 변화에 대한 인식도 엇갈린다. 한편 자체 플랫폼 영향력을 키우려는 노력들은 성과 이전에 경험치를 쌓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드웨어'라는 혁신의 굴레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기반의 모바일 기기 시장에 발을 들이며 제품 다양화 요소를 '화면 크기'에서 찾았다. 플래그십 용도로 갤럭시S와 갤럭시탭 시리즈를 내세우며 주요 특징으로 디스플레이 크기와 화소수를 강조한 것이다.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측면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에 의존하다 보니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그래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진영의 초기 스마트폰과 태블릿들은 화면 크기를 제외하면 전화 기능을 지원하느냐, 무선랜 전용 모델이 제공되느냐 정도의 차이만 보였다. 이는 애플이 단일 화면 크기와 공통된 운영체제(OS), 정제된 단일 앱과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제품 세대별로 차등화된 기능, 가격을 제시한 아이폰 및 아이패드 전략과는 상반됐다.

이러한 가운데 갤럭시S2 이후 첫 등장한 갤럭시노트는 회사가 터치 전용 펜 입력도구를 도입함으로써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UX)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내놓은 드문 성공사례다. 3~4인치대가 많았던 스마트폰과 7인치 이상인 태블릿의 중간으로 설정된 5인치대 화면 크기는, 차별화 요소로써는 오히려 부수적이었다. 회사는 갤럭시노트의 성공 이후 갤럭시S 시리즈와 대등한 플래그십 모델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갤럭시노트 시리즈는 흔히 '패블릿' 제품으로 묶이지만 두드러진 차별성은 필기구 형태의 입력도구와 연계한 기능에서 나왔다. 디스플레이를 통한 혁신을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HW 차별화에 머문다. SW, 콘텐츠, 서비스에 대한 구글 의존성은 여전히 크다. 이 경향은 지난달 갤럭시노트3와 함께 선보인 스마트워치 '갤럭시기어'나 지난 9일 국내 출시한 곡면 스마트폰 '갤럭시라운드'에서도 이어진다.

혁신의 '완결성' 측면에서 갤럭시기어는 오히려 퇴보라는 평가다. 비싸기만 했지 기존 스마트폰과 확연히 다른 '뭔가'는 없었다. 예상과 달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안 쓴 투박한 디자인도 문제였다. 애플이 '아이워치'를 준비한단 소문에 서두른 듯 비쳤다. 삼성전자의 해법은 공격적 마케팅이었다. 이달초 미국 뉴욕타임스에 10면짜리 전면광고를 실었다. 이 신문이 '사면 안 되는 제품'이라고 혹평한 이튿날이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곡면 스마트폰, 갤럭시라운드에 들어갔다. 삼성전자가 좋아하는 '세계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지난 9일 한정판으로 출시된 갤럭시라운드는 '써보고 싶다'는 기대와 '기왓장일 뿐'이라는 비아냥을 함께 받았다. 여전히 HW에 의존한 '혁신'이 문제였다. 오목하게 굳은 화면은 '플렉서블(휘는)'이란 표현이 무색했다. 제한된 물량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처럼 수율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삼성전자의 스마트기기 혁신 행보는 애플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에 시달리고 있다. 애플이 사용자인터페이스(UI) 특허 소송으로 덧씌운 '카피캣' 이미지를 벗으려 한다는 평가다. 어쨌든 노트 시리즈는 나쁘지 않았고 다만 기어와 라운드는 덜 숙성된 인상이 크다. SW와 콘텐츠 부재 탓이다. 애플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삼성전자가 한 발 앞서려면 제품에서 SW와 콘텐츠의 혁신을 함께 보여야 할 듯하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HW와 더불어 SW혁신을 계속 하고 있고 향후 파트너들과의 상생을 위한 방향으로 성장해나갈 것으로 기대 중이라며 워치 제품의 경우 피처폰, 풀터치폰에 이어 스마트폰에 대응되는 단말기로 (갤럭시기어를) 내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해 경쟁사를 의식한 결과물이라는 추측을 반박했다.

■'인재 영입'을 통한 SW역량 강화의 한계

삼성전자가 HW 위주 혁신에 의존해온 제품의 한계를 자각했을지는 미지수지만, 국내외서 SW인력 확충을 위해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 우선 국내서 인문계 대학 출신과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대상으로도 SW담당 인력으로 채용할 계획을 세워 진행 중이다. 국외서는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 출신의 SW분야 벤처업체 인력들을 M&A 방식으로 확보할 계획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지난 2011년 한양대학교,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와 손잡고 SW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협력을 시작했다. 3월 한양대에 SW학과를 신설한데 이어 5월말 삼성전자와 서울대의 SW공동연구센터(CIC) 개소식을 열었다. 그 연구실에 교수진 외에도 전공 학부생과 타학과 및 동아리 학생들의 활동을 위한 자재도입, 인프라 구축, 운영비 지원을 예고하며 서울대와의 공동연구를 수행 계획을 밝혔다.

이어 2011년 11월 삼성전자는 산업계 맞춤형 인력 양성을 위해 14개 대학과 체결했던 '삼성탤런트프로그램'을 SW분야에 특화한 프로그램으로 성균관대와 협력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5년제 학석사 연계과정으로 학생들을 실무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 인턴십 등으로 SW역량을 키운다는 계획이었다. 참가 학생들은 삼성전자 채용전형에 응시해 취업 보장과 장학금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올해는 연초부터 전문인력 채용과 저학년층 기반 확대에 나섰다. 상반기엔 지난해 디지털미디어센터(DMC)연구소 안에 신설한 SW센터에 투입할 경력직(학사 8년·석사 6년·박사급)을 적극 채용했다. 지난 7월 '주니어SW아카데미'를 시작해 오는 2017년까지 SW소양을 키울 초중고교생 4만여명에게 교육 혜택을 제공한다. 연 10억원을 들여 SW대회, 멤버십, 교육효과연구를 진행하고 교육부와도 협력한다.

회사는 그룹 차원에서도 소위 '통섭형 인재'를 확보한다는 목표로 SW개발자 인력 양성에 나섰다. 올해 공채부터 인문계 전공자를 뽑아 직무교육을 이수케한 뒤 SW개발자로 채용하는 '삼성컨버전스SW아카데미(SCSA)를 도입했다. SCSA는 ▲프로그래밍언어 수준의 SW기초과정 ▲제품, 반도체, 웹, 3개분야 특화과정 ▲기업내 프로젝트 위주의 실전과정 등 6개월짜리 3단계 과정으로 운영을 예고했다.

삼성전자가 SW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요 대학 연구진들과의 협력, 전공 석박사급 인재 영입, 그룹 차원의 비전공자 인력 채용, 초중고교 SW분야 역량 지원에 힘쓰는 노력에선 일종의 '진정성'이 엿보인다. 사회 인프라와 연계해 대규모 자원을 장기간 투입할 수 있는 대기업의 능력을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런 공채와 교육 위주의 SW인재 확보 전략은 'SW혁신'의 밑거름이 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SW혁신을 위해서는 회사 수뇌부와 의존성 없는 외부 조직간의 긴밀한 협력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공채와 교육프로그램 출신 SW인재는 삼성전자 내부에 수직계열화된 기술 연구와 제품 개발 조직의 하위층에 배치돼, SW혁신보다 분기별 실적에 치중하는 전문 경영인의 통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아무래도 SW 그 자체보다는 HW를 활용하기 위한 기술로써의 SW를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기에 개별 단말기 범주를 넘어선 플랫폼이나 서비스 측면으로 발전시키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실리콘밸리와 개발자 커뮤니티에 내민 손

삼성전자도 이런 문제를 자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가 꺼내든 해법은 미국 실리콘밸리와 국내외 개발자 커뮤니티 등 외부 SW 및 콘텐츠 생태계 조성이다. 여건상 국내에선 내부 역량만으로 단기간에 SW혁신을 꾀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외에서의 노력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보인다. 본사에 SW관련 정책 면에서 힘있는 목소리를 낼만한 엔지니어 출신 고위 임원이 적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2013년 조직개편 당시 빠른 아이디어 제품화를 위한 '창의개발센터'나 사내벤처 방식의 인재발굴을 위한 '크리에이티브랩' 등 창의성에 방점을 둔 신설조직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중 스타트업 후원을 위한 '액셀러레이터'와 제품관련 핵심인력 채용을 위해 소규모 M&A를 주도할 '오픈이노베이션센터(OIC)', 부품관련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를 위한 '삼성전략혁신센터(SSIC)'가 돋보였다.

삼성전자의 액셀러레이터, OIC, SSIC는 모두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전사 조직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사업부간 벽을 깨고 광범위한 협력을 도모한다는 명분아래 예산 및 운영에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이는 개발자들의 성지인 실리콘밸리와 그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개발자들의 생리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공룡기업 삼성전자' 치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회사는 지난 7월 팔로알토, 지난달 뉴욕 맨해튼, 또 멘로파크 등에 OIC의 액셀러레이터 사무소를 확대 설치하고 현지 벤처업계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영입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구글 비즈니스 개발 및 투자 담당 출신인 루이스 아불루를 멘로파크 OIC 조직으로 데려온 게 한 사례로 비쳤지만, 당시 삼성전자 측 관계자는 멘로파크에 OIC 신설 소식을 부인했다.

지난달 뉴욕시 액셀러레이터 개소식에서 데이비드 은 삼성전자 OIC 총괄 부사장은 우리의 미래는 HW와 SW의 신중한 통합이라면서 OIC는 SW와 서비스 영역에서의 혁신을 주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이는 우리가 스타트업에 특히 관심이 많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와 뉴욕의 스타트업에만 관심을 쏟는 건 아니다. 실은 전세계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손짓하고 있지만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과 같은 '개발자 생태계' 확보에 나선 것인데 개발자 커뮤니티 사이에서의 시선은 아직 냉랭하다. 개발자들이 삼성전자라는 이름 안에서 일반 소비자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읽어내기 때문이다.

개발자 세계에서 삼성전자는 아직 '신중하게 투자해야 할 회사'다. 앞서 회사가 자체 플랫폼 '바다'를 기반으로 만든 스마트폰 '웨이브' 시리즈를 조용히 단종시킨 전례 때문이다. 웨이브 시리즈는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분기마다 1종의 신모델로 명맥을 이었지만 올해는 출시되지 않았다. 대신 삼성전자는 연내 인텔과 손잡은 오픈소스 운영체제(OS) '타이젠' 단말기를 내놓을 계획이었다.

삼성전자가 웨이브 시리즈를 사실상 단종시키면서 바다 플랫폼의 역사는 끝난 듯 보인다. 지난해 2월엔 2억6천만원 규모의 상금을 걸고 바다 앱개발 공모전까지 벌였지만, 이후 별 설명이나 예고 없이 제품 개발과 관련 사업이 중단됐다. 바다 개발팀은 이후 오픈소스 운영체제(OS) '타이젠' 개발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젠에서 바다 앱을 지원한다지만, 바다앱 개발자들은 '속은 기분'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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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개로 삼성전자는 오는 27~29일(현지시각) 미국서 1천명 규모로 단독개최하는 개발자 컨퍼런스를 준비했다. 새 모바일 SW개발도구(SDK), S펜 신기술, 앱 수익화, 스마트TV SDK, 보안기술 '녹스(Knox)', 메신저 '챗온'과 전자지갑 '삼성월렛'의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 타이젠OS 관련 강연이다. 하지만 등록 1개월이 넘도록 티켓은 매진되지 않아 애플, 구글, MS 행사와 대조됐다.

이달초 삼성전자 MSC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행사의 성격에 대해 타사 연례 행사처럼 회사 이름을 걸고 마련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그 체계는 (아직) 미흡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가 극복해야 할 제약은 아직 무르익지 못한 SW 역량의 한계와 그를 둘러싼 외부 개발자들의 선입관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