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혁명 지도자의 인터넷 이야기

‘이집트의 봄’은 어떻게 왔나

일반입력 :2013/05/30 11:17    수정: 2013/05/30 15:18

전하나 기자

“우리는 2011년 1월 25일을 혁명일이라고 정하고 모일 장소와 시간을 발표했습니다. 혹자는 그렇게 공개적으로 정부에 통보하듯 하는 혁명이 어디 있느냐며 비웃었지만, 저는 인터넷을 통해 단결된 사람들 중 단 10만명만 거리로 나온다면 누구도 우리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와엘 고님㉛은 평범한 중산층 젊은이로 자랐다. 2008년 “인터넷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는 확신으로 구글에 입사한 뒤에는 열심히 일해 중동 지역 마케팅 책임자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다국적 기업 간부로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반정부 사이버운동의 지도자가 됐다. 재작년 군부독재 장기집권을 밀어내고 ‘이집트의 봄’을 이뤄낸 장본인이다.

고님을 시민운동가의 길로 접어들게 한 사건은 당시 스물 아홉 또래의 이집트 청년 칼레드 사이드의 비극적 죽음이었다. 2010년 6월 한 카페에 앉아 있던 칼레드 사이드는 갑자기 들이닥친 형사 두 명에 긴급 체포됐다. 부패 경찰이 마리화나를 나누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사이드는 끌려가는 동안 무참히 폭행당했고 결국 숨졌다.

고국서 들려온 이 참혹한 소식에 와엘 고님은 회사에 장기 휴직계를 내고 곧장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젊은이가 경찰에 의해 구타당하고 살해당한 사진을 본 순간극한 좌절감을 느꼈다”는 그는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페이지는 훗날 이집트의 정권교체를 이뤄낸 불씨가 됐다.

처음부터 자신이 만든 인터넷 페이지 하나가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29일 구글코리아에서 만난 고님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것은 나처럼 사이드의 죽음에 충격받고 독재정권에 대해 좌절감을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던 대다수 이집트인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당초 목표로 했던 가입자 10만명이 페이지 개설 삼일 만에 모였다. 지금은 그 숫자가 300만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사람들은 자신의 출신 지방, 연령, 이름, 나이를 적은 푯말을 들고 찍은 사진이나 그림을 그려 올리는 등 자신만의 갖가지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했다.한 임신한 이집트 여성은 ‘이 아이의 이름은 칼레드 사이드’라고 적은 초음파 사진을 페이지상에 게시했다. 또 익명의 활동가가 “검은 옷을 입고 모이자. 그리고 5m 간격을 두고 서서 한 쪽 방향을 바라보고 1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자”고 제안하자 사람들이 행동했다. 비단 이집트에서만이 아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도 같은 날 같은 시간 이 침묵시위에 참여했다. 고님은 “정부가 외면한 국민의 목소리를 인터넷이라는 민주적 공간이 들어줬다”고 했다.

인터넷서 쉴새 없이 이집트의 미래를 이야기했던 시민들은 1월 25일 수도 카이로 한복판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 민주화를 외쳤다. 이후에도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2월 21일 마침내 무바라크가 퇴진을 결정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요원했을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혁명의 수단일 뿐 전부가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기술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집트의 봄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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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그는 이집트에 봄이 오고도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비관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집트는 무바라크 퇴진 이후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고님은 “인터넷이 혁명의 전부를 이뤄낸 것이 아닌 만큼 인터넷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며 “수십년동안 시민사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 곳곳에서 계속 실패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번영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혁명으로 인해 이집트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고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됐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고님은 현재 NGO 단체인 네바닷 재단(Nabadat Foundation)을 설립해 이집트의 빈곤 퇴치와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은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며 “IT기술이 기반이 된 전지구적 소통이 평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