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익' 탄생 20주년, 웹이 세상에 나온 날

일반입력 :2013/04/23 08:49    수정: 2013/04/23 15:01

그래픽 기반 웹브라우저 '모자익(MOSAIC)'이 탄생 20주년을 맞았다. 모자익은 사라졌지만, 이 브라우저의 탄생에 모든 게 바뀌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지디넷은 그래픽 웹브라우저 모자익이 탄생 20주년을 맞았다며, 일반인이 웹을 쟁취한 날을 기념했다

20년전 일리노이대학교의 국가슈퍼컴퓨팅애플리케이션센터(NCSA)에서 어바나 챔피언스의 모자익이 22일 탄생했다. 1993년 웹이 시각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며 대중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느 기기에서든 브라우저를 작동시켜 인터넷을 할 수 있지만, 모자익의 개발 이전만 해도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은 28.8Kbps 모뎀으로 PC통신을 이용해야 했다. 세계 첫번째 통신용브라우저인 링스(Lynx)는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문자 인터페이스로 돼 있었다. 그러나 모자익의 등장과 월드와이드웹(WWW)이 세상을 바꿔놓았다.

모자익은 마크 앤데르센과 에릭 비나에 의해 창조됐다. 엄밀히 말해 모자익이 세계 최초의 그래픽 웹브라우저는 아니다. 비올라WWW란 브라우저가 세계 첫 그래픽 기반 브라우저다. 비올라WWW는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에서만 작동했다. 첫번째 윈도 기반 그래픽 웹브라우저는 셀로다. 하지만 셀로보다 늦게 나온 모자익이 처음으로 대중적인 웹브라우저란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모자익이 사용하기 쉬웠다고 하긴 어렵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 인터넷은 검은색으로 덮여 있었다. 윈도는 인터넷을 위한 필수 프로토콜인 TCP/IP도 기본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윈도의 TCP/IP 지원은 윈도95에서야 이뤄졌다.

그전까지 윈도에서 TCP/IP를 사용하려면 트럼펫 윈소켓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인터넷서비스프로바이더를 찾아야했다.

모자익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시각적인 웹의 모습에 흥분했다. 더구나 모자익은 무료, 오픈소스였다.

모자익의 성공가능성을 본 마크 앤데르센과 에릭 비나는 1994년 10월 모자익의 소스코드를 기반으로 넷스케이프란 상용 웹브라우저를 내놓게 된다.

모자익, 그리고 넷스케이프의 성공 이후에야 MS는 인터넷과 웹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윽고 MS는 모자익의 코드에 기반한 웹브라우저를 만들던 스파이글래스란 회사를 통해 인터넷익스플로러(IE)의 첫번째 버전을 만들게 된다. 이 IE 1.0은 1995년 8월 윈도95에 기본구성으로 탑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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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넷스케이프와 IE 사이의 웹브라우저 전쟁이 시작됐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모자익이란 웹브라우저 자체는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모자익은 90년대 중반 인터넷과 웹을 대중에 소개하고, 현재는 파이어폭스와 크롬, IE10 같은 자손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