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로 쏘아올린 나침반,GPS ③죽음의 항로

일반입력 :2013/04/18 00:10    수정: 2013/04/19 08:02

이재구 기자

3■죽음의 항로...주변상공엔 美 첩보정찰기도 있었다

비운의 KAL007기는 피격 당하기 전날인 8월31일 뉴욕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앵커리지 공항에 중간 기착해 급유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은 순조로와 보였다.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 기체 우측엔 ‘ I ♥ NEWYORK'라고 쓰여 있었다.

KAL007은 알래스카에서 캄차카반도 남부 공해상을 지난 후 일본 중부를 거쳐 서울로 가는 보잉747기종였다. 대통령 전용기를 운항했던 천기영 기장이 조종하고 있었다.

1983년 8월 31일 밤 10시(현지시각) KAL007(KE007)기가 앵커리지를 출발, 서울로 향했다.

“KE007, 베델(Bethel)시로 향해 곧장 날아서 R-20항로를 따라 서울로 가라.”

기장은 앵커리지를 뒤로 하고 이륙해 1천피트 상공에 이르렀을 때 앵커리지 관제탑(Air Traffic Control ‧ ATC)으로부터 이같이 지시받았다.

밤 10시49분(미서부표준시) KAL007기장은 “베델 쪽으로 향하고 있다. 다음 기착지는 11시30분 경 나비(Nabee)가 될 것이다”라고 교신했다. 하지만 정작 비행기가 베델에 도착할 시점에 왔을 때엔 이미 북쪽으로 50마일(80km)나 빗나간 항로를 날고 있었다.

실제로 비행기는 앵커리지에서 이륙한 지 약 90초 만에 예정 항로보다 오른쪽(북쪽)을 향해 조금씩 비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케언산의 북쪽 5마일 지점까지 비껴났지만 점차 벌어져 정상 항로에서 12마일이나 비껴 가고 있었다. 예정된 R-20항로를 벗어나 이제는 북쪽 러시아 영공으로 향하고 있었다.

KAL007은 R-20항로의 웨이포인트(waypoint)인 누크스(Nukks),니바(Neeva),니노(Ninno),니피(Nippi),나이팀(Nytim),노카(Nokka),노호(Noho)상공을 순서대로 거쳐 날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앵커리지 이륙 2시간 후 KAL007의 항로는 이보다 훨씬 더 위쪽을 날고 있었다.

어느 새 정상 항로보다 오른쪽(북쪽)으로 100마일(160km)이나 비껴 있었다.

이제 비행기는 점점더 R-20(Romeo-20)루트를 벗어나 소련 영공인 캄차카반도 해안에서 17.5마일(28.2km) 떨어진 하늘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KAL007기가 항로를 이탈해 날고 있던 이 부근에는 KAL007만이 날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불행히도 비슷한 시각 미국의 첩보기 RC-135기가 비슷한 항로로 캄차카반도 위를 날고 있었다. 그곳은 소련 영공이었다. 두 비행기는 잠시 만났다가 사라졌다.

소련은 베링해를 건너 미국과 마주보는 캄차카반도 해군기지와 방공망을 엄청나게 증강시키고 있었다. 이 지역은 소련의 핵잠수함 발진기지 페트로 파블로브스크가 있었다.

엄청난 통신이 오갔다. 보잉707기를 개조한 RC-135가 코드명 '코브라볼(Cobra Ball)'이란 이름의 첩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알래스카 솀야(Shemya)섬에서 소련의 캄차카반도 영공까지 날아와 해군기지와 대공방어 레이더기지의 상황을 촬영하고, 거기서 이뤄지는 모든 통신을 감청하고 있었다.

소련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날 베링해를 건너 소련 캄차카반도 상공으로 진입한 대한항공의 운명은 1960년 5월 1일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이른바 'U-2기 사건'이었다. 소련은 23년전 자국 영공에서 스파이활동을 하던 눈엣가시 같던 미국의 U-2기를 격추시킨 경험이 있었다. 당시 미공군 게리 파워스 대위는 ‘하늘의 스파이’로 불리는 U-2기를 몰고 소련 영공을 넘었다. 파키스탄 페샤와르기지에서 발진한 이 비행기의 임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기지가 있는 스베르드로프스크와 플레셰츠크, 그리고 플루토늄처리 단지가 있는 또 마이약(Mayak)을 초정밀 항공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었다.

당시 소련의 예브게니 사비츠키 공군 중장역시 전군에 비상을 걸고 U-2기 격추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 지역의 모든 비상대기중인 비행기는 반드시 영공 침입자를 공격하고 필요하면 비행기를 들어 받아도 좋다.”

U-2는 초고도(extreme high altitude)에서 나는 비행기였지만 결국 우랄산맥 부근에서 지대공 미사일을 맞고 격추됐다. 암호명 그랜드 슬램이었던 CIA의 이 첩보작전은 U-2기의 출몰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소련당국에게 결정적 한방을 안겨주었다.

1983년 8월31일 밤. 마치 1960년 5월 미국이 U-2로 소련영공에서 첩보활동을 하던 상황과 유사한 일이 이 소련 영공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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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라진 것은 소련군이 공격대상으로 삼은 비행기가 23년 전과 달리 첩보기가 아닌 민간 항공기였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U-2기사건 당시보다도 훨씬 더 첨예한 미소 대치 속에 캄차카 상공은 민항기에게조차 죽음의 항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