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로 쏘아올린 나침반, GPS ②냉전의 폭풍속으로

2■일촉즉발 냉전시대...거대한 폭풍속으로

KAL007기는 항로를 이탈하면서 미소 냉전의 거대한 폭풍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미국과 소련이 대결구도를 벌이던 냉전시대였다. 4년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좌익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침공을 단행했다. 미국은 반발했다. 이미 전세계평화와 화합의 제전이라는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반쪽으로 치러졌을 정도였다. 소련은 극동에 미사일기지와 핵잠수함기지를 두고 군비증강을 하고 있었다. 세계의 양진영을 대표하는 두 축인 미소 양국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소련에서는 1964년 집권해 무려 18년간 장기집권해 오던 브레즈네프가 82년 겨울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이듬해 6월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KGB출신 안드로포프 서기장이었다.

하지만 안드로포프의 공식취임을 앞둔 시점인 이 해 3월 8일. 레이건대통령은 플로리다에서 열린 한 유태인 종교집회에 참석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로 부르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레이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레이저를 쏘아 격추시키겠다.” 그로부터 불과 2주일 만인 23일 레이건 미 대통령은 전략방위구상(SDI)이라는 전략을 내놓았다.

우주에서 레이저포를 쏘아 소련의 대륙간탄도탄(ICBM)이 날아오기 전에 미사일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계획이었다.

전세계 언론들은 이 구상이 시행되면 우주전쟁시대가 열리는 것이라며 대서특필했다.

1981년 사상최대 표차로 카터후보를 물리친 레이건이 취임하면서 대소련 기조가 변했다.

강력한 반공주의자 레이건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대해 취임 초기부터 강력하게 밀어 부쳤다. 그런가 하면 폴란드 자유노조도 적극 지지하면서 소련을 압박했다. 퍼싱2미사일이 서유럽 나토(NATO)군 쪽에서 소련을 향해 배치됐다.

소련 캄차카 미사일기지에서 ICBM으로 미국대륙을 위협하고 있던 소련에게 SDI발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는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방식으로 핵전쟁을 일으켜 승리할까 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KGB수장 출신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은 이 구상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며 반발했다.

실제로 안드로포프는 전세계 KGB첩보망을 통해 서방세계의 군사대응태세를 점검했다. 은행계좌를 점검했고 병원침상을 늘리는 등 실제 핵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그만큼 SDI는 소련지도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도 소련지도자들은 미국의 IT에 대해 높은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SDI라는 전쟁 개념은 그 자체로도 전세계의 군사전문가나 일반인 누구라고 할 것없이 쇼킹한 것이었다.

KAL기 격추사건 기자회견을 한 오가코프 소련 제1 국방차관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DI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는 미국의 무기 수준을 1~2세대 안에 따라 잡을 수 없다. 미국의 국방기술은 컴퓨터에 기초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어린애도 컴퓨터를 다룬다...우리는 국방부의 모든 사무실에컴퓨터를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광범위하게 컴퓨터를 들여놓을 처지가 못된다. 우리는 경제혁명을 하기 전에는 현대 무기에서 당신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의 발언에는 미국의 IBM이 전세계의 중대형컴퓨터를 장악한 데 이어 2년 전(1981.9.12.) PC대중화 물꼬를 튼 IBM PC(5150)에 대한 두려움이 배어있었다.

1983년은 이처럼 미소냉전시대의 정점에서 소련의 미국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이 교차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듬 해 공산국가들이 미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을 보이콧하면서 53년 수소폭탄실험 이래 가장 강력한 핵전쟁 위기상황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소련은 당시 민항기인 KAL기를 식별할 수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그게 어떤 비행기였든 소련에게 일촉즉발의 긴장된 위기감을 극단으로 몰고 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캄차카반도는 미국을 겨누고 있는 소련의 대륙간탄도탄(ICBM)미사일 기지가 있는데다 페트로 파블로브스크에는 핵잠수함 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교신량이 엄청나게 많을 것은 자명했다. 이는 미국첩보당국이 비밀정찰기를 띄울 충분한 이유가 됐고 실제로 그런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