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우물서 숭늉 찾는 정부의 ‘게임 규제’

기자수첩입력 :2013/01/11 10:07    수정: 2013/01/11 10:16

얼마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총기 난사 사건이 미국 코네티컷 주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났다. 이 갑작스런 ‘묻지마 범죄’는 20명 넘는 어린 학생들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갔다.

분노한 미국 시민들은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에 미국 총기협회(NRA)는 돌연 책임을 폭력적인 게임에 돌렸다. 또 “총을 가진 나쁜 사람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총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누가 봐도 이익단체의 제 밥그릇 지키기다.

이처럼 우물서 숭늉 찾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뜬금없이 나온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이 그 중 하나다.

발의 법안 주요 내용은 청소년들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강화, 인터넷게임 사업자 부담금 강제 징수,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종합계획 수립 및 예방위원회 설립 등이다. 또 청소년의 게임 결제 시 보호자 동의 의무화, 게임 아이템거래 전면 금지 등도 포함돼 있다.

취지는 게임 과몰입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수면권 및 건강권을 지켜준다는 것. 그런데 이 법안은 기존에 나온 내용을 한 데 모으고 더욱 강화 시킨 ‘게임 규제 종합 선물세트’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묻지마 식’ 규제다.

이는 또 총기 난사 사건이 게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NRA의 억측과 유사해 보인다. 과연 게임 이용을 제한하면 청소년들이 더 많은 잠을 자고, 허약해진 건강을 되찾게 될까라는 의문만 쌓인다. ‘맹목적인 입시 경쟁’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데 말이다.

이미 많은 학계 전문들과 시민단체들은 게임에 빠지게 되는 원인에 대해 과한 경쟁을 부추기는 국내 교육제도와 맞벌이 해야만 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근본적인 문제로 지목했다.

또 게임을 대체할 놀 거리 부족도 청소년들이 게임에 빠지게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사업자 부담금 강제 징수는 중소 게임사들을 죽이고, 창업의 기회와 꿈나무들의 취업 기회마저 박탈한다는 우려를 낳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정부는 양의 탈을 쓴 채 늑대처럼 게임산업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지난 2008년에는 2012년까지 한국을 세계 3위 게임 강국으로 만들겠다더니, 이제는 예산을 줄이고 규제 강화에만 ‘과몰입’ 하는 모습이다. 게임 강국은 옛말이고, 필요 없다는 식이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무지의 극치", "진화하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쓴소리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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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게임도 지나치면 중독이 되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부분에는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 역시 과유불급의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다. 또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알맞은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학계 전문가와 업계가 주문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진짜 잠을 못 자는 이유, 그들을 나가 놀지 못하게 하고 책상 앞에만 앉혀 놓는 진짜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솔직히 털어놓고 논의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리사욕에 빠져 우물가서 숭늉 찾아봐야 얻는 건 맹물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