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CEO 사임한 폴 오텔리니 미스테리

일반입력 :2012/11/27 11:22

봉성창 기자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의 차기 CEO 후계 구도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폴 오텔리니 현 CEO의 급작스러운 사임이 가져온 후폭풍이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

발단은 지난 19일 폴 오텔리니가 내년 5월 CEO직과 이사회 멤버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것부터 시작했다. 정년 퇴임까지 3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린 그의 결정에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인텔 이사회다.

인텔은 지난 45년간 5명의 CEO를 거치면서 단 한 번도 후계 문제에 잡음이 없었다. 전통적으로 탄탄한 후계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5년 7월 폴 오텔리니가 취임한 이후 그의 후계자로 점찍어진 인물은 당시 중국 법인 대표를 담당한 션 말로니 총괄 부사장과 팻 갤싱어 전 인텔 CTO다. 이 둘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쳤지만 2009년 9월 팻 갤싱어 CTO가 EMC로 자리를 옮기면서 션 말로니 총괄 부사장으로 굳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3월에 션 말로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인텔의 CEO직을 물려받을 수 없게 된 말로니를 대체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텔은 올해 초 경영체제 개편을 통해 고육지책으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수석 부사장을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앉힌다. 그간 전통을 볼 때 인텔 COO는 CEO로 가기 위한 수순과 같은 자리다. 게다가 물리 에덴 PC 클라이언트 사업 본부장이 모국인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등 대대적인 경영 개편이 이뤄졌다.

이때부터 인텔의 차기 CEO는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부사장이 이어받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그가 내년 5월 인텔을 이끌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이다. 인텔은 오텔리니 대표의 사임 발표 이후 크르자니크를 포함해 레니 제임스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본부장과 스테이시 스미스 최고재무책임자를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이는 크르자니크가 인텔 차기 CEO로 아직 낙점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인텔이 외부 인사를 영입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왔다. 스콧 포스톨 전 애플 iOS 담당 부사장이나 스티븐 시노프스키 윈도그룹총괄 사장 등이다. 당초 후계자 물망에 올랐다가 인텔을 떠난 팻 갤싱어 VM웨어 대표도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인텔이 지금까지 한번도 외부에서 CEO를 영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 내부 분위기다. 팻 갤싱어 역시 한번 인텔을 떠났다는 점에서 이사회가 과연 그를 승인해줄지 미지수다.

폴 오텔리니도 이러한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텔의 모바일 시장 대응 미숙이 그가 용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사회는 여전히 그를 신임하고 있었다. 폴 오텔리니 취임 후 지난 7년간 인텔은 실적 측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텔은 그동안 여러 사업 부문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특유의 기술력과 막강한 제조 능력으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스마트폰 시장에도 어느 정도 대응 전략을 마련해 놓은 상황이다. 만약 폴 오텔리니가 CEO를 그만두더라도 결코 그 시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 인텔 내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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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폴 오텔리니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유는 그의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좀 더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가 다른 IT 기업으로 이직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는 인텔 CEO에 취임할 당시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를 이끄는 특권을 부여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폴 오텔리니가 임기를 모두 채웠더라면 자연스럽게 인텔 이사회 멤버로서 활동을 하다가 의장까지 맡게되는 수순을 밟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항간에는 그가 정계에 진출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실제로 그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공식적으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등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니면 그야말로 62세를 끝으로 IT업계에서 은퇴한 후 그가 소유한 와이너리에서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