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모전, 저작권 갈취 아냐?"

기자수첩입력 :2012/03/16 14:12    수정: 2012/03/16 15:03

최근 현상 공모 분야가 소프트웨어(SW)와 디지털 형태의 문화콘텐츠, 이를 융합한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확산 추세다. 대개 주최측은 수상을 한 응모작의 저작권을 갖겠다 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정당한 권리 양도가 얼마나 이뤄지는지 걱정스럽다. 알아보니 분쟁 여지가 많거나 권리자에 불리한 경우가 적잖다. 권리를 운운하며 정작 그 의미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한 기업이 발에 채인다.

당장 아무 공모전이나 검색해서 '저작권'을 언급한 항목을 찾아 읽어 보라. 열에 아홉은 입상작(또는 수상작) 저작권은 회사(또는 주최측)로 귀속되며 응모작은 반환되지 않는다고 써 놨을 거다. 이 '관행적' 문구는 응모자가 무시하기엔 너무 불리하게 와닿지만 실제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에는 모호하다.

공모전마다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저 문구를 잠재적 응모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왔을까. 수상작에 주어지는 상금이나 상품과 자신의 출품작을 맞바꾸는 일종의 거래계약이라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이는 법리적으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해석이다. 저작권위원회에 물었더니 공모전 홍보 전단이나 공식 웹사이트에 써놓은 약관을 읽고 응모하면 그 조건을 전제한 주최측과 참가자간 계약이 성립한다.

그러나 개인이든 기업이든 우선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정부가 당사자간 서명을 포함한 정식 계약을 권장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인용한 공모전 약관 몇 줄 따위로는 저작권 문제를 매끄럽게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관행대로라면 권리자와 주최측에 다툼을 빚을 여지가 크다.

■주최측이 알아서 오해를 줄이려면

방법은 어렵지 않다. 주최 기업이 공모 출품작으로 무엇인가 후속 사업을 할 계획이 없다면 '저작권이 응모자에게 귀속된다'고 명시하는 게 가장 편하다. 주최측이 응모된 결과물로 뭔가 할 생각이라면 '수상작에 대한 저작권은 주최측에 귀속된다'는 말과 함께 '저작권 양도를 위해 수상자와 회사간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는 문구를 더하면 된다.

실제 계약서 내용을 통해 이전할 권리가 '저작재산권' 모두인지 일부분인지, 2차적저작물을 만들 권리를 포함하는지 마는지, 권리 양도 범위는 시간적, 지역적으로 어떤 단서가 붙는지 등을 함께 다룰 수 있다. 이를 설명한 문화체육관광부는 광고에 저작권의 양도를 언급한 것과는 달리 별도의 양도계약을 체결하거나 동의를 받아둘 필요가 있다며 주최측이 우수작을 변경 이용할 때는 광고나 부속 계약서에 응모자가 그에 동의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게 필요하다고 권장한다.

이같은 정부 권고사항을 모든 회사가 알고 잘 따르도록 기대하긴 어려운 모양이다. 이같은 바람이 썩 가깝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사례 몇 가지를 들어 본다.

■아쉬운 사례

하나. 이달 소개한 '우리은행 모바일앱 아이디어 공모전' 기사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했다. 게재 하루만에 주최측 관계자가 연락해왔지만 앞으로 어떤 구체적 조치를 취하리란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현재까지 공모전을 소개한 공식 웹사이트 내용도 그대로다. 부디 응모자들이 수상작 저작권 양도에 관해 상세한 안내를 받고 사후 관련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기 바란다.

둘. SK텔레콤은 최근 시상식을 치른 MVNO 대학생아이디어공모전을 통해 실제 사업에 반영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 회사도 역시 수상작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주최측 3사에 귀속된다고 명시했다. 공모전 담당자에 물으니 유의사항에 명시했기 때문에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보고 시상 이후 수상자들과 직접 계약서를 쓰진 않았단다. 문제 없을 거라는 사내 법무팀 자문을 받고 검토한 사항이라며.

말이야 맞지만, SK텔레콤 정도 규모라면 치밀한 절차를 갖췄을 것이라 짐작한 기대는 어긋났다. 오히려 담당자는 법적 분쟁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다소 자신감이 줄어든 목소리로 기자가 알고 있는 사항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을 요구한 걸 보면, 그 회사 법무팀은 다른 일로 바빴던 모양이다.

셋.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지난 1월 모바일앱 디자인 공모전 시상을 치렀다. 확인 결과 이 회사는 입선작을 제외한 최우수상, 우수상작 저작권을 거둬들였다. NHN측은 그 수상팀과 저작권 협의도 마쳤다고 최근 밝혔다. 사실 이 정도면 칭찬할만한 사례다. 다만 주최측이 저작권 협의를 참가자들에게 미리 공지했다는 사실과 협의 여부를 공모전 약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공모전 소개에 사후 계약을 진행할 거라고 미리 밝히면 안 되는 절대적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최근 간단히 찾아본 일부가 이렇다. 번번이 공모전에 대한 기사화를 통해 주최측 기업에 각성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업 규모나 업력을 가리지 않더라도, 관습적으로 응모작 저작권을 귀속하겠단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변화를 기대한다

결국 각 개인들이 정확한 저작권 개념과 권리의식을 갖추는 게 중요해 보인다. 기업 행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어떤 현상 공모에든 잠재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반인들의 관심이다. 일부 변화의 가능성도 언뜻 비친다.

한 사례는 지난달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가 열겠다던 앱 공모전 일정을 무기한 미룬 일이다. 회사가 공모전 약관 가운데 수상한 응모작의 저작권을 갖겠다는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검토중이란 이유다. 재개한다면 응모작 저작권은 응모자에게 남아있거나, 회사측과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이 될 모양이다.

이렇게 문제를 받아들여 개선해나가는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지난달 이를 다룬 '다나와 앱 공모전, 개발자 '혹평'…왜?' 기사가 발단이었다면 아쉬운 일이긴 하다. 번번이 기사화할 수 없는 게 사실이고, 근본적으로 기업의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한 예시. 지난 2010년 삼성전자도 스마트TV용 앱 공모전을 열며 제공한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 이용약관을 통해 개발자는 삼성SDK를 써서 만든 앱에 대해 어떤 소유권이나 지적재산권을 갖지 않는다며 이를 이용해 만든 프로그램과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삼성에 비독점적 사용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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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태에 쏟아진 비판의 학습효과(?)일까. 현재 진행중인 '바다 앱 개발 공모전'에서는 이같은 '패기'를 찾아볼 수 없다. 삼성전자측에 출품작에 대한 저작권 귀속여부가 어떻게 되느냐 묻자, 회사는 앱 개발 공모전 출품작의 저작권이 개발자에게 있다고 답했다.

흔히 기업들의 현상공모 목적이 '저작권 갈취'에 있다는 인식도 만연한 상황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어떤 속내를 가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사람들은 기업들이 이런 오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부분들을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