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방송중단 극단적 선택, 왜?

[긴급진단]①280원의 갈등인가?

일반입력 :2012/01/17 16:07    수정: 2012/01/17 16:17

3년여를 끌어온 지상파-케이블 간 재송신 협상이 끝내 ‘KBS2 방송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어냈다. 16일 오후 3시부터 중단된 KBS2 방송은 24시간째 ‘블랙아웃’ 상태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재송신 분쟁은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대가 산정’에서 비롯됐다. 쉽게 말해, 지상파는 콘텐츠 대가로 가입자당 월 280원을, 케이블은 그 이하인 약 100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송신 분쟁은 간단히 돈의 흥정으로 비롯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지루한 싸움이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막장으로 간 방송철학 다툼

재송신 분쟁이 이처럼 막장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재송신에 대한 평행선을 달리는 지상파와 케이블의 철학이 큰 몫을 차지한다.

지상파는 자사 콘텐츠를 케이블이 무단으로 활용해 불법적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반면 케이블은 직접 수신환경 개선에 소홀했던 지상파가 케이블을 난시청해소에 활용하면서도 그 대가는 무시한 채 콘텐츠 대가만 요구한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케이블업계가 SBS를 상대로 지난 10년간 재송신 송출 대가를 요구하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작권료’와 ‘송출 대가’로 이름만 다를 뿐 양측 모두 상대방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을의 입장인 케이블이 지상파와 규제기관인 방통위에 낮은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었다면, 지상파는 시종일관 기존 입장을 고수했으며, 방통위는 방관자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MBC·SBS가 보편적 시청권?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배경 중 하나는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정의가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 경기 대회나 그 밖의 주요 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다. 또 이를 보장하는 조치로써 ‘국민 전체 가구 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관련해 의무재송신 제도로 KBS1과 EBS는 케이블이 의무적으로 재송신해야 하며, 지난해 말 개국한 4개 종합편성채널도 방송법상 의무재송신 대상에 포함돼 있다.

때문에 케이블이 KBS1의 송출을 중단했다면 의무재송신 위반이지만, KBS2의 송출을 중단한 것은 사실상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KBS2, MBC, SBS는 의무재송신 대상이 아니다.

케이블에서 과징금과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이 내려질 경우 행정소송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연유다. 다만, 케이블은 시청자에게 불편을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할 뿐이다.

케이블에서 KBS2의 방송 송출을 중단한 이후 시청률이 3분의 1 토막이 난 것도 지상파의 주장처럼 보편적 시청권에 필요한 90% 이상의 직접수신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상파의 직접수신율은 7.9%에 불과하다.

현재 재송신 제도 개선안에 KBS2, MBC, SBS를 의무재송신 대상에 포함시키되 KBS1, EBS와 달리 유료화를 하려는 것도 이 같은 허점에서 나온 꼼수다.

오히려, 방통위의 전신이었던 방송위는 “무분별한 지상파TV 콘텐츠의 재송신을 막아 지상파3사의 독점 체제를 막겠다”며 위성DMB의 지상파 재송신을 불허했다.

■재송신 제도 개선 그렇게 어렵나?

케이블이 16일 오후 2시 KBS2의 송출 중단을 예고하자 방통위는 부랴부랴 “송출 중단을 잠시 미뤄달라”고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시청권을 훼손했다”며 긴급 전체회의를 열고 케이블의 제재를 의결했다.

2년여 동안 방통위의 재송신 제도 개선을 요구했던, 지상파에 지불해야 될 간접강제 이행금이 100억원이 쌓일 때까지도 기다렸던 케이블업계에 말이다.

이처럼 케이블이 히든카드였던 ‘송출 중단’의 카드를 꺼낸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송출 중단으로 인해 ‘볼모잡힌 시청권’이란 비난과 ‘가입자 이탈’을 각오하면서도 꺼낸 카드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제재 근거로, “지상파에게도 원인을 제공한 책임이 있지만 케이블이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 위해 2년을 기다려온 방통위다.

당초 방통위는 지난해 1월까지 재송신 제도 개선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었지만 오는 19일 전체회의에 관련 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정책이 아닌 정치를 했던 방통위가 지난해 정부업무평가에서 ‘꼴찌’를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