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정책입안자들은 규제 과몰입”

일반입력 :2011/12/01 10:58    수정: 2011/12/01 11:20

전하나 기자

내년 1월 22일 시행을 앞둔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으로 인해 게임업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달 20일 시행된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보호법의 하위법안으로 게임사업자의 과몰입 예방조치와 사행성 방지를 의무화한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개정안은 ▲게임 과몰입 예방조치 시행 세부 절차 및 방법 규정 ▲셧다운제 대상 게임물의 적절성 여부 평가 방법 및 절차 ▲청소년 이용 게임의 게임머니 또는 게임아이템 환전업, 환전알선업, 재매입업 금지 ▲아케이드 점수 보관증 폐지 등을 담고 있다.

지난달 3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코엑스에서 주최한 관련 공청회에선 이에 대한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이들 의견은 대부분 “입법취지와 규제 근거가 일치하지 않고,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선택적 셧다운, 일괄 셧다운제보다 더 포괄적 규제”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김성곤 한국게임산업협회 국장은 “개정안은 규제 적용대상 게임을 포괄적으로 정의해 다양하고 복잡한 온라인 게임의 서비스 방식이나 특성에 따라 정부가 규제 집행을 관리감독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개정안이 모든 게임 사업자에게 일률적으로 선택적 셧다운제 도입을 강제하면서도 운용 방식에 대해선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밝히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국장은 “이는 궁극적으로 게임 사업자, 특히 중소게임사에게 개발 부담을 가중시키고 게임 서비스에 손해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개정안이 예외 대상 게임물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김 국장은 “로그인을 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 개인정보가 불필요한 플래시 게임, PC기반 웹게임, 소셜게임은 규제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웹페이지에서 단독으로 실행되는 특성 때문에 사업자가 이용자 접속, 게임 이용을 개별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게임물 특성상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있고 글로벌 서버를 운영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국내외 이용자를 구별할 수 없는 PC패키지 게임도 제외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표적 PC패키지 게임도 ‘스타크래프트’는 앞서 셧다운제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된 바 있다. 이와 관련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측은 규제 적용을 받게 되면 서비스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김 국장은 게임 이용자의 회원가입시 실명 연령 확인 및 본인 인증 확인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게임물을 실제 이용하는 시점’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칫하면 포털, 쇼핑몰, 통신사업자도 단순히 게임물이 웹사이트에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하게 규제를 적용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이템 현거래, 아케이드 점수 보관증도 ‘핫이슈’

이날 공청회는 비단 온라인게임사 뿐 아니라 중개거래사, 아케이드게임 업체들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게임법 개정안이 아케이드 업체의 점수 보관증과 아이템 현금거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업계는 무엇보다 점수보관증 개·변조 무죄판결 사례와 게임아이템과 게임머니가 실제적인 재산으로 인정된다는 판례를 예로 들며 문화부가 초법적 기관인지를 따져 물었다.

아케이드 업계는 “점수보관을 인정하고 영업의 연속성을 보장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게임장 업자는 “이용자들이 점수를 사유재산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며 “보관증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문화부가 고객들에게 보여줄 자료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아이템 중개거래 업체들도 단단히 뿔이 났다. 자신을 중개거래사 직원이라고 밝힌 참석자는 “규제에 순응하면서 합법적으로 아이템 거래 시장에 종사해왔다”면서 “연간 1조5천억원 정도 규모가 되는 이 시장을 정부가 하나의 산업군으로 바라보고 있는건지나 궁금하다”고 성토했다.

게임 이용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평소 게임을 즐긴다는 한 시민은 “거래 사이트를 통하지 않으면 개인간 거래를 하거나 중국 등 외국 사이트를 이용해야 하는데 음성적 거래만 늘 것”이라며 “만약 이용자들이 재산상의 손실을 잃게 되면 책임은 문화부가 지는거냐”고 조롱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들도 어느 정도 의견을 함께 했다. 권헌영 광운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헌법상 영업의 자유에 따라 게임을 서비스하고 자율적인 계약자유 원칙에 따라 게임을 즐기는데 그 원칙 자체를 훼손하는 규제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태순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는 “분명한 것은 아이템 현금거래 이용자 대다수가 선량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공청회장 뒷편에선 ‘성인인권 침해하는 게임법. 공산국이 따로 없습니다’ ‘게임거래 사이트 없어지면 불법직거래자 날뛸 텐데 그 책임은 문화부가 집니까’ ‘문화부 다시 한번 범죄의 소굴로 게이머를 몰아넣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온 시위자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슈 난립했으나…“정책입안자들은 규제 과몰입” 한목소리

이날 아케이드게임 업체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나온 김동현 세종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는 “정책 입안자들이 이용자들한테 게임 과몰입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정책 입안자들이 규제 과몰입에 빠진 것 아닌가“라고 관계부처 비판에 쐐기를 박았다. 이 대목에선 좌중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법무법인 로텍의 이헌욱 변호사도 규제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이 변호사는 “국가정책으로 게임산업을 육성하면서 한편에선 게임산업 전반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규제 정책을 취하는 것은 효율적인 국가작용이 아니다”며 법체계상 게임은 음악, 영화 등과 같이 진흥·장려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산업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두고 규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가 전세계 유일하고도 최초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게임 관련 단행법을 보유한 나라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게임법은 규제가 아닌 산업을 진흥하겠다는 헌법적 결단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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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게임업계와 문화부가 최소한의 ‘동지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헌영 교수는 “업계와 게임 이용자들이 주무부처인 문화부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여성가족부 등) 외부의 규제부터 끊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기정 문화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대부분의 법률 개정과정에서 정부가 나서게 되는 것은 관련 분야의 이해관계자들과 문제 해결이 안될 때”라면서 “문제가 한쪽 방향으로 해결되서는 안되기 때문에 공익을 위해서 어떤 이익을 보호하고 어떤 이익을 억제할 수밖에 없느냐를 잘 분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