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직의 미래를 만드는 관리자

가진 것을 후배에게 주어라. 그리고 비상하라!

전문가 칼럼입력 :2011/10/17 10:30    수정: 2011/10/17 13:29

이정규
이정규

군대에 가기 전에 타자를 배워 자판을 보지 않고 한글과 영문자를 빠르게 쳐 내려갈 수 있었다. 덕분에 일병 5개월 때에 차출되어 연대본부 작전병으로 전출을 갔다. 연대에는 나보다 2주 늦게 입대한 1기수 아래의 후임이 있었다. 연대 작전장교는 매달마다 사단본부 보고를 위해 딱딱한 종이 프레임에 끼워진 얇고 투명한 OHP(오버 헤드 프로젝터) 챠트를 수 십장 만들어야 했다. 이 작업은 내 후임의 주 업무였다. 컴퓨터가 없었던 당시 그 친구는 10cm 플라스틱 자와 3가지색 유성팬으로 보고용 OHP챠트를 정말 잘 쓰고 그려냈다.

본부중대원들이 무장구보를 출발할 때쯤이면, 작전과(課) 하사관들은 그를 불러 빼냈다. 연대본부의 인사과, 군수과에서도 그 친구를 빌려갔다. 괴로운 야간 순검(점호)도 열외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부대원들이 검열준비에 바쁠 때에도, 사무실에서 장교들과 어울려 농담하며 나름 군생활을 잘 즐기는 것 같았다. 장교들과 친하니 병장들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연대본부에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친구가 외박을 나가 날자를 하루 넘겨 귀대했다. 상상이 안 되는 군기 위반이었다. 한달 간 군기교육대에 보낸다고 완전군장을 시켜 놓고도 작전장교는 실행에 옮기지를 못했다. 곧 있을 사단 보고를 걱정한 때문이다. “절대로 나를 군기교육대는 못 보낼 걸”하며 미소 짓는 그 후임의 모습을 기억한다. 작은 재주를 믿고 오만함을 드러낸 사례이다.

■조직의 폭탄과 보배

초등학교 시절에 '청기와 장수' 이야기를 선생님이 해 주셨다. 고려청자의 제작비밀을 자식에게도 가르치지 않아서 제작방법이 사라져 버리게 만든 청기와 장수의 교훈을 말이다. 그 때문에 후손들이 지금도 이를 재현하기 위하여 너무도 많은 수고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경험하고 획득한 재능과 기술을 머리 속에만 넣어두고 후배들에게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여럿 보아 왔다. 자신이 '조직에 필요한 이유가, 없으면 일이 안되기 때문'으로 작심한 사람들이다. 하는 일을 문서화 하라고 거듭 설득해도 이들은 여러 가지 핑계로 잘 따르지 않는다. 지인인 김익환 대표는 이들을 빨리 제거해야 할 '조직의 폭탄'이라고 폄하한다.

무림고수가 최고의 필살기를 수제자에게만 구결(말)로 전하는 이유는 그것이 여러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살수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릇이 큰 수제자를 선별하기 위해 혹독한 시험을 거친다. 반면 필살기도 못 되는 하찮은 노하우를 자신만 갖고 있어야 안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 같은 태도가 자신에게 굴레를 씌우는 일임을 깨우치지 못한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내가 보다 나은 경력을 위해 보직을 변경할 기회를 도모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성장하고 싶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은 빨리 동료나 후배에게 전수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이러한 직원은 회사의 보배이다. 조직이 이들을 아끼는 이유는 '없으면 안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회사의 미래를 만들기 때문'이다.

■가치관이냐? 실행이냐?

GE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가 강연 중에 질문을 받았다. 누군가를 고용하려고 할 때 면접에서 물어봐야 할 꼭 한가지의 질문이 무엇입니까? 책에서 잭 웰치는 단 한가지의 면접질문으로 "무슨 이유로 이전 직장을 그만 두었는지 묻겠다"고 말했다. 회사를 옮기는 일이 그 사람의 인생 철학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월급이 작아서, 성장의 기회가 없어서, 상급자와 맞지 않아서, 보다 큰 대기업의 브랜드명이 필요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원해서,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갈등으로…처럼 자발적으로 그만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기는 일은 나의 지배가치와 가치관을 보여주는 좋은 시금석이 된다.

반면에 누군가 내게 면접에서 꼭 물어봐야 할 단 하나의 질문을 묻는다면 나는 실행에 대하여 묻고 싶다. 실행에 걸맞은 질문은 "나로 인해서 조직이 변화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이다. 크고 작은 사건을 떠나 이러한 일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삶의 주체로서, 리더로서의 직장생활이 아니라 머슴으로서의 직장생활을 한 것이다. 상사가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응하고, 조직의 발전을 위한 능동적 실행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의 범주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감도 없는 사람”이기 쉽다.

■직원과는 달라야 하는 관리자의 역할

직장 내에서 직원의 수동성은 직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직원은 상사의 기대만큼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직의 활성화에 대하여 해외 사업으로 최근에 알게 된 이한식 대표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중국에서 저는 버리는 기술부터 배웠습니다. 모래를 빨리 움켜쥐면 모래가 다 빠져 나갑니다. 천천히 쥐어야 옮길 수(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직원관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직원을 통제하기 보다는 생각을 넘겨주어야, 직원이 발전합니다. 그래야 내(관리자, 사장)가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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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나누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상사 밑에 조직의 변화를 실행하는 직원이 함께 일한다면 정말 복된 일이다.

직원들에게 조직내의 비전을 물으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하급 직원들에게는 수긍이 되는 답변일지 모르나, 관리자들에게는 모자란 답변이다. 훌륭한 관리자라면 "자신이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가도록 기업문화를 만들고 회사의 미래 성장의 견인차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관리자는 그 자리를 떠난 후에야 훌륭함을 판단할 수 있다. 관리자가 보직을 변경해도 부서가 잘 운영되고, 프로세스와 학습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면 정말 훌륭한 관리자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