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청소년보호법 추진…"게임산업 망친다"

국회 토론회 열려…규제일변도 아닌 ‘자율’에 한 목소리

일반입력 :2010/11/26 09:27    수정: 2010/11/30 23:33

전하나 기자

문화산업 규제 정책의 개선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민·관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공청회가 열렸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한나라당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하 문산연)이 주관한 ‘청소년보호법을 통한 문화산업 규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25일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는 최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꺼내든 ‘규제의 칼’ 청소년보호법(이하 청보법)의 문제점을 짚기 위해 문화관광체육부(이하 문화부)가 공식적으로 마련한 첫 자리라는 데 의미가 크다.

인사말에 나선 정병국 위원장은 이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문화산업 종사자들 중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며 “청소년 보호라는 전제 하에 건강한 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하는 의무는 당연하다.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언적 의미의 청보법이 실질적인 효과 거둘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이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현택 문산연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자동차산업보다 더 큰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 문화콘텐츠산업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긍지로 일하고 있다”며 “문화콘텐츠산업의 진일보를 위해 진흥과 규제 정책의 조화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소신을 전했다.

특히 축사에 나선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오늘 토론회가) 문화산업 발전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산업발전과 청소년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하면서 “특히 근래 논란이 불거진 여가부와 문화부의 청보법과 게임법은 몇 가지 다른 쟁점이 있지만 청소년 보호라는 기본 전제는 같다. 오늘 토론회에서 나오는 좋은 안을 문화부가 잘 수렴하겠다”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김민규 교수(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가 주제 발제를 맡았다. 토론자로는 김정환 교수(서울시립대 법대), 김보라미 변호사(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주영호 연구위원(SBS 정책팀), 이정현 부사장(스타제국엔터테인먼트), 문제갑 의장(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정책위원회), 김재현 과장(문화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 김성곤 사무국장(한국게임산업협회)이 나섰다.

■“청보법으로 문화산업 규제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

이날 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여가부가 내놓은 청보법의 정책배경은 인정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 일변도의 법이라고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발제를 맡은 김민규 교수(아주대 문화콘텐츠학)는 “문화산업과 관련한 담론이 사회적 이슈로 자주 부상하고 있다. 이는 문화산업이 일상적인 소비 생활에서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청소년 시기는 문화적 욕구가 가장 왕성한 때다. 문화적 소비가 매체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네트워크·디지털시대에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규제를 위한 제도는 원래의 취지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진흥과 규제는 배타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소비패턴과 매체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진흥과 규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효과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전문가들은 여가부의 청보법이 현실성과 전문성 모두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민규 교수는 “청소년에 대한 담론은 사회 전 영역과 관련돼 있다. 이를 모두 청보법에서 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문화산업에 대한 표현의 자유 전반을 억제하는 것이다. 문화산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그는 문화콘텐츠 유통 관리는 매체환경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있고 문화산업정책을 관할하는 부처 내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훈 교수(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는 “1997년 제정된 청보법의 골자는 청소년을 유해환 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함으로써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며 “여가부가 내놓은 청보법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라 청소년의 부모의 가치 보호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청보법은 청소년보호를 위한 최전방의 법률이 아니라 최후전선으로 자리 잡고, 최전선에서 적용되는 법률들이 청소년보호를 위해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고리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토론자로는 유일한 여성인 김보라미 변호사(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는 “청소년보호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과연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지 참 궁금하다”며 운을 뗐다.

그는 “오늘날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만든 문화산업을 소비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며 “청소년보호규제는 이같은 청소년의 역량을 왜곡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청소년보호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규제당국의 관할 싸움으로 그들의 기본권이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피력했다.

주영호 연구위원(SBS 정책팀)은 “청소년이 일방적으로 교화받고 지도받아야 할만큼 역량이 없는 지에 대해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때”라며 “국가가 만든 법률은 여러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보호도 중요하지만 표현과 창작의 자유, 나아가 영업의 자유도 국가가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관련 규제기간이 균형적인 시각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게임산업 이중고 해결해야”

무엇보다 이번 공청회에서 논의된 내용의 핵심은 게임법이다. 여가부가 청보법으로 규제하겠다고 하는 대표적 문화콘텐츠가 게임이고, 이 내용을 중복으로 담고 있는 청보법이 문화부의 게임법과 충돌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토론자들이 업계가 관할 부서인 문화부와 협력해 자율적인 규제안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모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김민규 교수는 “게임같은 경우 다른 문화콘텐츠와는 또 다르다. 보통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와 이용할 수 없는 콘텐츠로 구분짓는데 게임은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 내에서 규제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용금지가 아닌 이용개선이라는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접근할 때 규제의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갑 의장(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정책위원회)은 “규제보다는 환경개선이 우선이며 졸속 입법으로 산업을 위축시켜서는 안된다. 문화산업은 산업의 특성마다 규제방식이 달라야 하며 개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과장(문화부 게임콘텐츠산업과)은 “게임산업이 국가의 성장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사회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강제적으로 규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가부의 주장은 전체이용가나 교육용 게임도 규제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게임을 음란물과 폭력물로 취급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청보법이 창작자의 사기와 문화콘텐츠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은 불보듯 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 과장은 이어 “건전한 게임을 육성시켜서 국민들의 여가활동이나 국가산업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게임법의 취지다”며 “콘텐츠가 어떻게 제작되고 유통되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규제의 칼을 뽑아든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며 여가부의 청보법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게임법에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의 과몰입까지 다루고 있다. 청보법이 통과된다면 향후 청소년 게임 과몰입은 여성가족부에서, 성인의 게임과몰입은 문화부에서 다루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져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정책의 효과성도 저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곤 게임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청보법에 대한 반대가 청소년보호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어떻게 보호해야 하느냐에 대한 방식이 다를 뿐”이라며 “우리나라는 쉽고 편한 방법으로 규제하는 것에 익숙하다. 수준 낮은 규제 과잉, 규제 중복이 기업을 힘들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업의 우선적인 역할은 질 높은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 만들어낸 문화상품에 대한 이용정보를 제공해 책임을 다하면 되는 것”이라며 “최근 업계가 자발적으로 기금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었고, 포털사이트를 구축해 게임이용확인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정보제공사업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같은 활동이 업계의 자율규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문화산업에 대한 학교, 가정, 기업, 정부의 역할은 다 따로 있다. 게임산업의 역기능에 대해 오로지 기업에게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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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문화부는 이날 공청회에 여가부를 초청했으나 참석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여가부는 같은 날 '청소년정책관계기관협의회'를 열어 제4차 청소년정책 기본계획(2008~2012)을 의결·확정했다. 이는 지난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존 제4차 청소년정책기본계획을 보완한 것으로 인터넷게임 중독 등 각종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문화재단도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게임문화재단은 내년 상반기에 '게임과몰입예방치유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위해 과몰입 전문가와 업계 관련자가 참여하는 준비팀을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여전히 난항 중인 게임법을 비롯, 문화산업 전반의 규제 정책이 어떻게 해결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