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출판사, 전자책을 말하다

일반입력 :2010/09/10 08:07    수정: 2010/09/13 14:13

남혜현 기자

비교적 잘나가는 출판 업체 위즈덤하우스는 최근 <박선주의 하우쏭>이라는 책을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고 애플 앱스토어 등록 승인을 대기중이다.

정은선 위즈덤하우스 멀티콘텐츠사업부 실장은 앱을 출시하는날 기뻐서, 그리고 설레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세상에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는 전자책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출판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눈물이 날것 같다며 기대감을 보이는 것일까?

종이의 질감과 두께, 활자, 판형 등에 누구보다 친숙하고 민감한 게 편집자에요. 때때로 출판사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로 남아있죠.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출판사가 책만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기회가 있는 거죠. 전자책은 출판사에 위기이자 기회라고 봅니다. 누가 먼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출판시장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화를 거듭하지 않겠어요?

기자는 지난 주 성대훈 교보문고 디지털콘텐츠팀장을 만나 대형서점이 바라보는 전자책 시장 현황과 미래에 대해 물었고 그는 출판사가 전자책 시장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느냐고 질타했다. 정은선 실장의 발언은 성 팀장의 질타를 무색케(?) 한다. 전자책은 출판사의 미래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 출판사엔 '발등에 떨어진 불'

국내 출판사들 중 메이저급은 독자적인 전자책 비즈니스 모델을 그려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제가 보기엔 전자책 시장은 오픈 마인드로 상생 비즈니스를 가장 잘 하는 곳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1999년 설립된 위즈덤 하우스는 예담, 스콜라, 역사의 아침, 잉크 등 분야별 출판 브랜드를 갖춘 국내 대표 출판사 중 하나다. <조선 왕을 말하다, 이덕일 지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꼴, 허영만 지음> <배려, 한상복 지음> 등 분야별 베스트셀러 수십종을 출간하기도 했다.

종이책 시장에서 왠만큼 인지도를 높인 위즈덤하우스는 전자책 시장진입에도 타 출판사에 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 실장은 위즈덤하우스에 2003년 입사한 이후부터 당시로선 이름도 생소한 신규사업인 '인터넷 사업팀'을 맡아왔다. 그는 지난 7년간 전송권을 비롯한 디지털 저작권에 대한 계약과 전자책 시장에서 위즈덤하우스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해 리스트업했다. 외서를 제외하고, 위즈덤하우스가 출판하는 국내 저작물들에 대해서도 이미 대부분 전송권을 확보한 상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출판사들이 출판권만 계약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희같은 경우는 전송과 저작을 모두 출판사와 협의하게끔 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이제는 출판물을 전자 콘텐츠에 맞게 새롭게 변형하는 일을 기획하고 있어요. <박선주의 하우쏭>만해도 앱에서 책을 읽으면서 동영상으로 '노래 잘 부르는 법'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수많은 아이디어가 오고가면서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 아닌 일을 파악해 나가며 배우고 있죠. 어렵지만 재밌고, 기대되는 분야에요.

다만 이같은 빠른 대응은 아직까지 소수 대형 출판사에 한해서다. 소규모 출판사에서는 전자책 콘텐츠를 전담할 사람도, 투자할 자본도 부족하다. 올해부터는 출판사들도 종이책 외에 전자책을 대비한 전송권도 확보해야 한다는 자각심을 가지고 움직이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어려움은 많다. 종이책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도 출판사 독자 기술로는 어려운 점이 많은데 여기에 '앱'을 제작하는 일이 쉽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저자와 출판사가 함께 가야 '상생'

정 실장에 따르면 출판사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전송권 확보'와 기술'이다. 위즈덤하우스는 기존의 전송권 설정 계약을 현 저작권과 비즈니스상황에 맞게 수정, 저자들과 합리적으로 계약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기존 종이책 형태를 e펍(Pub)과 PDF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도록 콘텐츠 데이터베이스를 강화한다는 전략도 내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기존 출판 디자이너들에게는 생소한 영역이라는 데 있다. 때문에 위즈덤하우스는 지난해 인큐브테크와 기술협력을 맺고 자사 출판도서를 전자책으로 변환하고 있다.

출판사가 굳이 책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기술을 확보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파일소유권’때문이다. 누가 디지털로 파일을 변환하느냐에 따라 파일에 대한 권리소유가 달라진다. 파일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은 자유롭게 전자책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지난해부터 출판사들도 디지털화 작업에 정책을 세워 실행해나가고 있는 분위기다.

따라서 정 실장은 무엇보다 출판사가 직접 e펍 변환 기술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유통사가 디지털 변환을 주도한다면, 하나의 콘텐츠가 여러 형태의 파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인만큼 자원낭비도 크다는 설명이다. 또 독자들의 요구사항에 대한 전체적인 파악도 출판사 주도하에서 더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좋은 건 현재의 편집자들이 능숙하게 e펍같은 새로운 편집 기술을 익히는 거죠. 그런데 사실상 쉽지는 않아요. 만약 정부나 업계 지원이 주어진다면, 교육과 기술 부문에 더 힘써줬으면 좋겠어요. 디지털화와 관련된 편집 툴도 더 많이 개발되고 보급됐으면 좋겠고요. e펍과 같은 신기술에 능한 젊은이들이 출판사와 함께 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정 실장은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음악에서 인정되는 '저작인접권'을 출판에도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다. 국내 출판물의 최종 저작권은 저자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책은 단순히 ‘콘텐츠’로만 이뤄지진 않는다. 편집에서 디자인을 거치면서 책은 더 가치있게 다듬어진다. 출판사로서는 제기할만한 주장이기도 하다.

전자책에 종이책의 미래 있다

다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다. 전자책 활성화는 1인 출판 시대를 불러 올 것이고, 자연스레 출판사의 입지는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물었다. 정 실장은 일부에서는 출판사가 저자 에이전시업체로 변화할 것이라 예상하기도 하지만 이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저자도 중요하지만 콘텐츠를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느냐도 관건이기 때문에 콘텐츠 경영을 잘 하는 출 판사가 앞으로도 경쟁력을 가지고 미래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자본의 논리를 강조하는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아쉬움을 보였다. 저자와 출판사, 유통업체가 모두 함께 사는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저자의 콘텐츠를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출판사를 배제하고 2차 비즈니스를진행한다면 저자들이 당장은 행복할 수도 있지만 이후 나올 저작물에 대해서는 어디와 함께 협업할 것인지도 꼬집었다.

비즈니스를 함께 상생하겠다는 의지보다 독점하겠다는 업체를 볼 때 아쉬움이 많죠. 자본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에 맞는 서비스를 준비하는 감성과 노력도 필요한데 말이죠. 또 출판사들도 저자와 저작권에 대한 이슈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봐요.

도서시장은 물론 아직까진 종이책이 대다수다. 종이책도 온라인보단 오프라인에서 더 많이 팔린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위즈덤하우스가 자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서점 판매량이 40%가까이 치고 올라왔다. 온라인 서점의 상승세는 곧,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예고 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전자책 콘텐츠 판매량은 한자릿 수로 미미하다. 현재로서는 '관망'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 실장은 내년 하반기쯤에는 전자책 콘텐츠 판매량도 두자릿 수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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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나 로맨스 같은 전자책 시장 성공모델을 제외하고, 단행본으로 봤을 때 자기계발같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의미가 있는 책 중심으로 전자책이 시장성이 있다고 파악돼요. '원 소스, 멀티 유즈'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콘텐츠를 기획, 편집하는 핵심역량을 갖춘 출판사는 콘텐츠 비즈니스가 다양하게 발전할수록 기회가 많지 않겠어요? 미디어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편집 마케팅하는 역량강화가 지금 출판사에게 필요한 핵심이죠.

지금까지 출판 유통, 전자책 단말기, 대형 서점 그리고 출판사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전자책 시장 이슈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전자책 시장이 이제막 시작된 만큼, 릴레이 인터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현장을 누비는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전자책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아낼 것이다. 그래서다. 기자는 지금 전자책 시장의 맥을 짚어주는 얘기를 해줄 인터뷰 상대를 찾고 있는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