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1993년 3월 26일: IBM의 구원 투수 루 거스너 등장

일반입력 :2010/03/25 12:21    수정: 2010/05/08 11:12

이재구 기자

■거인의 몰락

“우리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난다....회사가 위기에 처한 이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너무 태평하다.”

1991년 6월 청교도적 전통을 가진 이 세계적 컴퓨터 회사의 최고경영책임자(CEO) 존 에이커스는 이렇게 울분을 토해냈다. 50명의 내부 경영진을 대상으로 경영자 수업을 하던 자리였다. 유례없는 거친 표현이었다. 한 참석자가 전직원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내용을 30만 직원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그의 발언은 회사가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직원들에게 이 질책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1991년이 마감될 무렵 공룡은 끔찍한 재앙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1985년 포춘지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모든 평가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던 천하의 IBM이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을 중고차”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32위로 전락해 버렸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컴퓨터 제국 IBM이 무너지는 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회사는 이미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60세 정년을 1년 남겨둔 가시왕관을 쓴 컴퓨터제국의 황제 에이커스는 불명예 퇴진만은 피하고 싶었다.

이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IBM맨인 존 에이커스 회장은 해고조치(주로 대형컴퓨터사업부)등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했지만 희망의 불빛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전형적인 IBM맨이란 메인프레임 중심의 성장이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란 의미의 다른 말이었다. 해고없는 회사의 전통, PC와 클라이언트서버로 추격해 오는 경쟁자, 메인프레임의 추락과 CEO의 우유부단함...

사실 이것이야말로 근 100년 만의 비IBM맨 출신 CEO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였다.

쿠키몬스터의 등장

“짐 버크씨입니다. 위층에 살고 계신데요. 정말로 오늘밤에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답니다.”

1992년 12월 14일 RJR나비스코 CEO자격으로 뉴욕 자선디너쇼에 참석한 후 귀가한 루 거스너회장에게 수위가 전화를 걸어왔다. 짐 버크는 존슨앤존슨 전 회장이었던 인물. 1982년 자사가 제조한 타이레놀에 누군가가 청산가리를 주입해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신속히 언론에 알리고 제품을 전량 리콜해 전세계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주인공이었다.

그는 “IBM의 최고 경영자 자리가 곧 공석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직책을 한번 맡아볼 생각이 없는지요?”라고 제안했다.

이듬해 1월 19일 나온 IBM의 1992회계년도 결산 발표내용은 심각했다. 645억달러 매출에 무려 49억7천만달러의 적자로 미국 기업 역사상 최악이었다. 주식은 50% 추락해 18년만의 최저치인 41달러 85센트를 기록했다.

유력 언론의 지면이 연일 에어커스회장을 압박하는 기사를 내는 가운데 에이커스 회장은 1주일 만에 사임을 결정했고 후임회장을 선출할 위원회가 설치됐다. 위원장은 짐 버크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사설에서 IBM에 대해 ‘가망없음’ 선고를 내렸다. 급변하는 기술에 발빠르게 움직이는 소규모회사들의 반격에 대응할 수 없고, IT산업이 컴퓨터서비스,SW,컨설팅 등으로 다변화되는 상황에서는 지금껏 대형컴퓨터로 거둬왔던 이익을 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인 거스너는 IBM의 93,94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을 검토한 결과 “IBM이란 공룡의 생존 확률이 채 20%도 안된다는 것, 그리고 무너지는 컴퓨터제국 IBM의 구원투수직을 수락할 일은 없을 것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 직책을 맡는 것은 당신이 미국에 진 빚을 갚는 것입니다”는 버크의 한마디에 그는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다. 3월 26일 루 거스너가 IBM회장 겸 CEO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과자와 담배를 제조업체 출신인 그에게 직원들은 ‘쿠키 몬스터’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지금 당장’ 가장 필요없는 것은 비전”

7월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거스너는 “‘지금 당장’ IBM에 가장 필요없는 것은 비전”이라고 말해 기자들을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부임 3개월 동안 가는 곳곳마다 서랍가득히 미래 비전계획서가 차 있는 것만을 보아 온 그에겐 어찌보면 당연했다. 기업 컨설턴트 출신의 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과제는 빈 회사 곳간을 채우는 일이었다. 연간 500억달러씩 거둬들이던 캐시카우였던 대형컴퓨터(메인프레임)의 점유율 하락으로 수입이 줄었지만 비용지출은 그대로였다. 이대로라면 모두가 함께 망할 수 밖에 없었다.

여름이 되자 그는 회사개혁과 관련된 조사를 마쳤고 주요계획들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됐다.

마침내 그가 움직였다.

“지난 2,3년간 이뤄졌던 것처럼 한차례식 한부분 한부분씩 인원감축을 하는 것은 부당하고 힘빠지는 처사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불안감을 고객에게는 의심을 선사할 뿐입니다.”

기자회견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그는 사내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전세계적 IBM직원들에게 마지막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라이벌인 애플이나 컴팩의 직원 1인당 매출액은 IBM의 3배에 가까웠다. 1달러를 버는데 드는 경비도 IBM보다 적었다. 인원감축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의 프로그램에 따르면 30만명의 직원가운데 10만명이 떠나게 되어있었다.

거스너는 128명의 최고정보책임자(CIO)를 1명으로, 155개 데이터 센터를 16개로 줄였고, 31개 내부통신망을 하나로 합쳤다. 21개였던 뉴욕본부건물도 5개로 통합했다.

RJR나비스코에서 실력을 발휘하면서 얻은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명성답게 그는 첫 해에만 28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했다.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거스너의 임무는 전문성과 승리를 위한 전략을 갖고 있으면서도 대형컴퓨터의 추락과 함께 얼어붙은 이 거인을 뒤흔들어 일깨우고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IBM은 심지어 최초의 PC인 5150을 제작, 컴퓨터산업 환경을 주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MS와 인텔에 내주는 우를 범했다. 대형컴퓨터의 성공은 오히려 독이었다.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쟁사인 암달,히타치,후지쯔가 메인프레임 가격을 30~40% 싸게 해 고객을 빼앗아 가자 IBM도 즉각 인하로 응수했다. 칩도 기존의 바이폴라대신 CMOS로 바꿨고 가격인하에 따른 매출하락은 저가 CMOS칩 비용으로 보전했다.

또 대형컴퓨터가 아직은 쓸 만 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딥블루와 세계체스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와의 대결 이벤트도 마련했다. 딥블루의 승리는 대형컴퓨터의 효용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13개 사업부를 분사시킨다는 전임 회장의 소위 ‘베이비블루(Baby Blue)' 계획도 백지화했다. IBM이 갖춘 IT 요소기술의 장점을 통합해 서비스하면 고객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터였다. IBM제국의 분열은 거기서 멈췄고 영역확장은 다시 시작됐다. 거대한 몸집의 코끼리는 춤추기 시작했다.

거스너는 성장에 필수적인 로터스를 우호적으로 인수하기 어려워지자 짐 맨지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5분 후에 33억달러 규모의 적대적 인수가 있을 예정입니다”라고 통보한 그는 이 회사를 우호적 자회사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막 불기 시작한 인터넷 열풍과 함께 향후 네트워킹 시장의 전망을 읽은 그는 시가의 2배를 투입하는 베팅으로 인수를 마쳤고 이는 인상깊은 성공으로 이어진다.

‘메인프레임→PC→네트워킹PC’라는 IT업계의 진행수순과 대응은 옳았다. IBM은 1996년 로터스인수에 힘입어 IBM로터스, MS,넷스케이프로 구성되는 인터넷 3강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빅블루에서 익스트림 블루를 향해

거스너가 정년으로 물러난 해 2002년 말 IBM은 812억 매출에 36억달러의 순익을 기록하는 견실성을 과시했다. 엔론사태와 분식결산이 한창 월가를 뒤흔든 시점이었다. 거스너가 추락한 컴퓨터제국의 몰락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결코 IT에 무지한 CEO가 아니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시절 5년간 그가 맡은 부서가 연평균 17%씩 성장한 원동력이 정보화였지 않은가?

게다가 이 신임 CEO는 노쇠한 IBM이 과거의 화려한 대형컴퓨터시절로 착각하고 오만한 고객서비스를 했을 때의 불쾌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내가 노쇠한 IBM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에서였다.....나는 이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IBM대리점 주인이 그날 아침 매니저를 찾아와서는 당신네가 암달을 들여놓았으니 데이터처리센터에 대한 IBM의 모든 지원을 거두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거스너는 IBM의 최대 고객에 대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대해 일개 상인이 이 정도로 무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IBM은 드디어 임자를 만난 셈이었다.

게다가 그는 경쟁에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냉철한 실천을 통해서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가였다. 이 모든 것도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뒷받침 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는 “비가 온다고 예상했다고 해서 점수를 얻을 수 없다. 방주를 만들어야 점수를 얻을 수 있다”며 직원을 다그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모든 것의 배경에는 그가 뼈저리게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고객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델 컴퓨터 회장 마이클 델의 “고객의 방식대로 하라‘와 같은 맥락의 시장중심주의는 루 거스너가 코끼리를 춤추게 한 원동력으로 꼽힌다.

오늘 날 IBM은 더 이상 하드웨어만 다루는 회사가 아니다. 거스너의 후계자인 새무얼 팔미사노 회장은 2003년취임 이래 80개의 회사를 인수합병, 슈퍼컴,서버 등 하드웨어는 물론 인터넷,SW,보안,SI를 아우르는 IT제국을 경영하고 있다.

거스너회장은 2002년 말 60세로 정년 퇴임했다. 그에겐 10년 동안 IBM 고문으로서 자문을 맡을 자격과 함께 사무실,비행기 등 모든 편의가 제공됐다. 그는 현재 칼라일이쿼티의 수석자문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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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빌게이츠, 잭 웰치에 버금가는 CEO라는 명성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전설이 된 CEO의 퇴임 7년 후. 거스너의 후계자 새무얼 팔미사노회장은 2009년 결산결과 월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957억달러 매출, 134억달러 순익을 기록하며 선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목요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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