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기본료 ‘돌팔이 시술’에 대한 우려

[이균성 칼럼]일방적인 모든 건 적폐다

데스크 칼럼입력 :2017/06/09 13:54    수정: 2018/11/16 11:31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세상에는 뭐 하나 쉽거나 단순한 게 없다는 이치를 깨우친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들이다. 쾌도난마는 그래서 많은 경우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편으로 명쾌해 보이는 해법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무 때나 메스를 들이대는 의사는 돌팔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 공약 중 기본료 폐지와 관련해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관계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이 공약의 핵심 내용은 모든 이동전화 사용자에게 매달 1만1천원을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공약의 현실성 논쟁은 둘째 치고 이를 실현하려는 국정위의 태도와 자세는 비판받아서 마땅하다. 체질이 허약한 환자 앞에 메스를 들고 선 돌팔이 꼴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이 사안은 매우 복잡하고 오랫동안 진행된 구조의 문제다. 누가 봐도 분명한 암세포를 외과적 수술로 떼어내는 과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쾌도난마식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래부 공무원들이 멍청하거나 게을러서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통신사한테 부정한 청탁을 받은 건 더욱 아니다. 그렇게 보는 건 모욕일 뿐이다.

#상품 가격 결정은 본질적으로 시장의 문제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조절되는 게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시장이 그 자체로 평형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정부가 중재자로 개입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개입하는 방식이다. 정부라고 해서 초법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법률을 집행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법제도 개선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미래부가 곤혹스러운 건 당장 요금 1만1천원을 깎는 방법은 현재의 법제도 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행정지도야 할 수 있겠지만 한꺼번에 1만1천원을 일괄적으로 내리게 하는 방법은 없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는 건 초법적인 행위이고 민간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지마저 있다. 공무원은 깡패나 영웅이 아니다. 깡패 같은 초법적 권력자. 적폐 중의 적폐가 그것 아니었던가.

#한 사람당 매월 1만1천원이면 연간 전체적으로 7조원 안팎이다. 이동통신 3사의 연간 영업이익이 3조원 중반대니까 만약 이 초법적 조치가 강행된다면 이통사는 순식간에 그만큼의 적자로 돌아선다. 그로 인한 불상사는 뻔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재산권이 침해된 주주와 기업의 소송이 잇따를 것이다. 본연의 사업에 집중해야 할 기업들이 엉뚱한 데다 사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통신사를 정점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대동맥인 5G 통신망 건설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 우려된다. 한 때 우리가 IT 강국으로 불렸던 건 김대중 정부 시절에 강력하게 추진했던 초고속인터넷망 구축 덕분이다. 모바일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선도적으로 5G망에 투자해야 하는 건 국가적 과제다.

#5G 투자에 차질이 생기면 미래 성장 동력이자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스타트업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들며 기반을 다져가던 알뜰폰 사업자들의 경쟁력은 더욱 취약해질 것이다. 이동통신 유통업에 종사하던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일자리도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불길한 예측이 현실화한다면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셈이 된다.

#이 사안을 구조적이라 말하고, 깡패 같은 강압적 방법이 아니라 법제도 개선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단지 요금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국가 경쟁력의 문제이고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복잡한 시장의 문제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 임기 내내 고민하고 초석을 다져도 될까 말까한 사안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정권 초기에 힘으로 눌러 뚝딱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통신사가 마케팅비를 줄이면 그 정도 요금을 내리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꼭 소비자한테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 통신사 마케팅비의 대부분은 스마트폰 보조금이다. 결국 마케팅비를 줄인다는 것은 보조금을 줄이는 것이고 소비자는 그만큼 더 비싼 가격으로 스마트폰을 사야 한다는 의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또한 결과적으로 조삼모사의 방법일 뿐이다.

#이 사안에 대해 답을 가장 잘 아는 곳은 미래부다. 미래부 정책 기조는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 촉진을 통해 산업발전을 유도하고 소비자 후생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아주 느린 걸음이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일부 부작용도 있긴 하지만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그 일환이었고 알뜰폰 도입과 제4이통을 위한 오랜 노력 또한 마찬가지다. 이 기조를 강화하고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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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약을 조금이라도 더 현실화하려면 국정위의 고민이 출발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래부보다 더 큰 그림을 고민하고 미래부보다 더 미세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그러는 것처럼 계급장 떼고 미리 결론을 정해놓지 말고 진지한 마음으로 전문가 및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충분하게 의견을 듣고 활발하게 토론해야 한다. 이 사안 또한 쉽잖은 시장 구조 문제기 때문이다.

#우물을 닦달한다고 숭늉이 나올 리는 만무하지 않겠는가. 숭늉은 씨 뿌려 농사짓고 불 때 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