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5주기…주변 사람이 기억하는 잡스는?

팀 쿡 "세상 변화시킨 이"…디테일 집착 유명

홈&모바일입력 :2016/10/06 10:51    수정: 2016/10/06 10:52

2011년 10월 5일(이하 미국 현지 시각). 전 세계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뉴스가 전해졌다. '애플의 심장'인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잡스의 나이 56세. 뛰어난 통찰력으로 IT 시장을 주도했던 잡스였지만 췌장암과의 싸움에선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 언론들은 "신은 그에게 재능은 줬지만, 시간은 주지 않았다"며 잡스의 갑작스런 죽음을 애도했다.

그로부터 5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잡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를 다룬 영화나 책은 나올 때마다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던 애플에선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다.

잡스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은 팀 쿡은 트위터에 가슴 찡한 글을 올렸다. 쿡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스티브와 그가 세상을 변화시킨 많은 방법들을 기억한다.”면서 그를 회고했다.

물론 잡스에게 밝은 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논란이 많은 리더이기도 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이나 미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씨넷은 5일 스티브 잡스 5주기를 맞아 그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만나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 디테일에 대한 집착

디자이너 클레멘트 모크는 1982년 애플에 합류했다. 스티브 잡스가 1984년 컴퓨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매킨토시를 출시하기 2년 전이었다.

모크는 매킨토시 출시 때까지 제품 브랜딩 작업을 담당했다. 마케팅, 제품 패키징, 맥 홍보 자료 등을 제작해 애플의 상징이 되는 브랜딩 작업을 책임졌다. 또 그가 한 일 중 하나는 애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로고를 다시 만들 때마다 잡스의 명함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그는 씨넷과 인터뷰에서 잡스의 명함을 첫음 만들던 때를 회고했다.

사진=씨넷

당시 모크는 명함 샘플을 들고 잡스를 찾아가 "이것이 당신의 새로운 명함이다. 인쇄하기 전에 당신이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살펴보고 말 잡스가 아니었다. 잡스는 카드를 보면서 '여기, 여기는 글자 사이의 공간이 너무 타이트하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는 너무 타이트해.”라고 말했다.

모크는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나는 그가 작은 디테일까지 잡아내는 것에 어리둥절했다. 나는 그 때 그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에 엄청난 존경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스티브잡스는 그 당시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수준의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 제품 패키지를 걸어다니는 광고판으로

잡스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유명하다. 그 중 하나가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데 사용되는 포장 패키지였다. 애플 제품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하얀 색의 아이폰, 맥 상자는 잡스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톰 수터는 말했다.

톰 수터는 1984년 맥 출시를 도왔던 애플의 첫 번째 크리에이티브 서비스 디렉터로 애플의 제품 패키지 개편 작업에도 참여했다.

애플 제품은 화려한 포장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1980년대 초엔 그렇지 않았다. 제품마다 패키징이 달랐다. 부서별로 디자어너가 모두 다른 데다 통일된 표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톰 수터의 팀은 1984년 애플제품의 통합 제품 패키지를 디자인하게 된다. 그가 개발한 패키지 안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비용이 적게 드는 안과 다른 하나는 3배 이상 비싼 안이었다.

저렴한 패키지 안은 두 가지 색을 사용해 골판지 재료로 만들었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췄다. 또 하나의 안은 애플 로고를 6가지 색상을 사용해 만든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수터의 팀은 사내 다른 부서에 해당 포장 패키지를 제시했다. 이 두 가지 안은 비용 면에서 아주 극명하게 달랐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견이 저렴한 안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모두를 중단시키고 말했다. “아니다. 우리는 이 비용을 지불할 방법이 있다. 우리는 광고 예산에서 돈을 가지고 올 것이다. 난 제품 패키지가 하나의 광고판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제품 박스를 옮기고 자동차에 실을 때 이 것은 하나의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애플은 지금도 이 당시와 비슷한 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사용한다.

■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

스티브 잡스는 많은 사람에게 천재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괴팍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1981년 매킨토시의 금융 관리자로 일한 데비 콜맨은 잡스가 복도를 걸어다니며 “바보, 난 당신이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잡스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고 밝혔다.

1984년 맥 제조부문 임원이었고 1986년 애플의 CFO 역할을 맡았었던 조안나 호프만은 잡스를 기억하며 잡스가 괴팍했지만 부드러운 면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매킨토시 초기였던 어느 일요일 아침, 잡스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맥팩토리에서 만나자고 했던 일을 회상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여행을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스티브가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방법을 볼 수 있었던 멋진 경험이었다"콜맨은 말했다. 그는 이 사건 이전, 이후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 존 스컬리가 말하는 잡스

사진=씨넷

잡스는 1980년대 펩시 CEO였던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했다. 당시 스컬리는 펩시가 음료 시장 1위를 차지하던 코카콜라를 추월하는 성과를 이룬 잘 나가는 CEO였다.

이때 잡스는 그의 영입을 위해 유명한 말을 한다. "나머지 삶을 설탕 물이나 팔기를 원하는가? 나와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자.” 존 스컬리는 이후 애플의 CEO로 일하게 된다.

존 스컬리는 1982년 실리콘 밸리에 있는 애플 사무실을 방문했던 때를 기억하며 말했다. "나는 그 당시 주소를 보고 내가 잘못 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빌딩이 아닌 그냥 집이었다."고 스컬리는 말했다. 그는 그 집에서 잡스를 만났고 이후 그 곳에서 근무하게 된다. 몇 년 후 잡스와 스컬리는 그 집에서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사무실을 세우게 된다.

"그 집에는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 있었고 지붕에는 해적 깃발이 있었다."며 "스티브는 그 당시 리사 [컴퓨터] 그룹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리사는 해군이었고 스티브는 해적이 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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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매킨토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초기 멤버 앤디 허츠펄드가 특이한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스티브는 나를 CEO로 영입하면서 채용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난 펩시 CEO로써 펩시를 위한 맥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앤디는 맥의 화면에서 펩시 캔이 춤을 추는 모습을 만들어 시연했다. 나는 이 것이 정말 힘든 일이 될 지 몰랐다. 그때 나는 왜 앤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는 지도 몰랐다. 이 것이 내가 처음 애플에 발을 딛은 순간이다.”라고 그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