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모바일 칩 제작 '회심의 칼' 뺄까

필요성 충분…협력사 등 고려사항도 많아

홈&모바일입력 :2015/11/06 11:28    수정: 2015/11/07 12:1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안드로이드 맹주’인 구글이 과연 모바일 칩 제작이란 칼을 빼들까?

모토로라 매각 이후 한 동안 잠잠했던 구글의 하드웨어 직접 제작설이 또 고개를 들었다. 미국의 인포메이션은 5일(현지 시각) 구글이 모바일 칩을 직접 제작하기 위해 최근 몇몇 마이크로칩 제조 업체들과 협상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더버지를 비롯한 주요 IT 매체들도 연이어 인포메이션 보도를 인용하면서 여론몰이에 나섰다. 대표적인 IT 칼럼니스트인 월터 모스버그는 “구글도 이젠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 때가 됐다”면서 ‘구글의 하드웨어 진출설’에 힘을 실었다.

그런가하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지난 달 구글이 구인 공고를 내면서 ’멀티미디어 칩 아키텍처’를 모집한다고 밝힌 점에 주목했다. 정황상 모바일 칩 제작 쪽에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었다.

구글이 모바일 생태계 강화를 위해 칩 자체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 시장 파편화로 '단말기 최적화' 등 애플보다 불리

모바일 플랫폼 양대 강자인 애플과 구글. 하지만 그들의 생존 전략은 확연히 다르다.

애플은 운영체제(OS)부터 단말기까지 직접 관리한다. 소수정예 전략으로 탄탄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반면 구글은 안드로이드 OS 핵심 부분만 직접 관장하고 나머지는 전부 동맹업체들에게 맡긴다. 일종의 ‘동맹군 전략’인 셈이다. 후발 주자인 구글이 단기간에 OS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데는 동맹군 전략이 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동맹’이 커질수록 구글의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탄탄한 생태계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애플. 구글은 그런 애플이 부럽다. 사진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씨넷

최근 안드로이드 시장이 파편화되면서 보안 위협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에 대응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다. 게다가 제조 업체들마다 다양한 프로세서와 운영체제 버전, 그리고 하드웨어 디자인을 제공하면서 ‘안드로이드’란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게 갈수록 힘들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단말기와 OS간 최적화 역시 애플보다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같은 신기술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구글 입장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관여하고픈 욕망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인포메이션 역시 구글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모바일 칩 자체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구글, 지난 달 '멀티미디어 칩 아키텍처' 모집 공고

비즈니스인사이더도 최근 구글의 행보를 주목했다. 구글이 지난 달 ‘멀티미디어 칩 아키텍처’ 모집 공고를 낸 부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

당시 구글의 구인 공고에는 “칩 개발 작업을 지휘하고” “칩 탑재 작업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들과 공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돼 있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 같은 공고가 “칩 디자인 뿐 아니라 자체 제작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화웨이가 만든 안드로이드 레퍼런스폰 '넥서스6P'의 홈화면 (사진=지디넷코리아)

물론 인력 모집 공고만으로 단언할 순 없다. 구글 내에도 안드로이드 최적화를 원하는 단말기 제조업체들과 긴밀하게 협조하기 위해선 칩 전문 인력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구글이 인력을 모집하면서 이미지 처리, 동영상 처리, 안정화 등을 특별히 강조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칩 사업에 좀 더 깊숙이 뛰어드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동영상 처리 능력을 요구한다는 건 카메라 관련 작업과 관련돼 있으며, 안정화는 휴대형 기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반도체 전문가의 말을 인용, “애플, 퀄컴 등에서 차세대 칩 개발 작업을 하는 인력은 대부분 카메라 관련 기술 개선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카메라 기술에서 가장 큰 부분은 이미지를 안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급망 통합-협상력 증대 등 효과는 많아

이런 보도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칩 자체 제작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또 설사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초보적인 논의 수준에 머물고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해선 “맞다, 틀리다”고 딱 부러지게 얘기하긴 힘들다.

하지만 구글이 모바일 칩을 자체 디자인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지는 따져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동맹업체들과 관계 등 고려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생태계만 갖고 고민할 경우엔 해볼만한 게임이란 얘기다.

구글의 최신 태블릿 ‘픽셀C’는 모바일 칩 자체 제작의 원형이 될 수도 있다. (사진=씨넷)

비즈니스인사이더, 더버지 등 IT 매체들은 구글이 최근 공개한 하이브리드 태블릿 픽셀C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이 제품은 구글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제작을 담당한 제품이다.선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이 제품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전체 공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의 성공 사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IT 전문 칼럼니스트인 스티브 차니는 최근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면서 칩까지 직접 제작한 전략으로 얻은 효과를 몇 가지로 요약했다.

우선 공급망을 통합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서드파티 업체들에게 칩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게 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A9 칩을 아이폰 단말기에 최적화하는 것도 한결 수월하다. 부품 공급업체들과 협상 때 강력한 힘을 갖게 됐다는 점 역시 무시하기 힘든 부대 효과로 꼽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칩까지 모든 것을 손에 쥠에 따라 다른 업체들이 쉽게 모방하기 힘든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아이폰의 경쟁력을 바로 그 부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모스버그 "애플이 3D터치 등서 앞선 건 SW-HW 통합 덕분"

실리콘밸리 특급 IT 저널리스트로 명성이 자자한 월터 모스버그는 아예 “구글도 이젠 자체 하드웨어를 제작할 때가 됐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모스버그 역시 “직접 제작한 하드웨어가 있을 때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더 빛을 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모바일 시장에서 성공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며, 마이크로소프트(MS)가 최근 하드웨어 사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차원이란 것이다.

팀 쿡과 대담 중인 월터 모스버그. [사진=씨넷]

그는 또 “애플이 2년 사이에 지문인식, 3D 터치 등에서 구글을 압도한 것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험을 결합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최근 불거졌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안드로이드와 크롬OS 통합설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모스버그가 지적했다. 이게 실현될 경우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 뿐 아니라 데스크톱PC에까지 깔리게 된다.

모스버그는 “OS 통합을 위해선 구글 자체 하드웨어는 필수”면서 “그렇게 될 경우 구글은 애플 데스크톱을 대체할 경쟁력 있는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드로이드 생태계 자체의 문제로 고려 대상이다. 안드로이드 군단이 모바일 플랫폼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단말기 제조 쪽에선 취약한 편이다. 세계 시장에서 두루 통하는 파트너사는 삼성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스버그는 “구글이 직접 제작한 하드웨어는 최근 삼성의 판매량과 수익이 주춤한 점을 보완해주는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유럽연합(EU)이 구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점 역시 심각하게 고려할 대목이라고 모스버그가 지적했다. EU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업체들에게 자신들의 앱을 기본 탑재하도록 강요한 부분이다. 애플처럼 모바일 생태계를 전부 주도할 경우엔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모스버그의 주장이다.

안드로이드 동맹 와해 등 고려 사항도 많아

물론 구글의 하드웨어 제작설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또 구글이 직접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것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자칫하면 ‘안드로이드 동맹와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글이 지난 2011년 모토로라를 인수한 직후부터 안드로이드업체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끊이지 않았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우대할 경우 다른 안드로이드업체들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글이 지난 해 2월 모토로라를 전격 매각한 데는 이런 우려도 일정부분 작용했다. 실제로 당시 구글이 모토로라를 매각한 직후 삼성과의 공조가 좀 더 긴밀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버지가 지적한 것처럼 퀄컴을 비롯한 제휴 업체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구글 주문생산업체(OEM)로 전락하는 상황을 퀄컴이 선뜻 받아들일 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5'(왼쪽)와 애플 '아이폰6S 플러스'

‘안드로이드 군단’ 에이스인 삼성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안드로이드 생태계는 삼성과 구글이 양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구글이 제갈량 같은 책사 역할이라면, 삼성은 관운장 같은 일선 맹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구글과 삼성은 이미 지난 해초 한 차례 갈등 관계를 보인 적 있다. 구글의 칩 자체 제작설을 보도한 인포메이션은 지난 해 7월 삼성과 구글이 플랫폼 문제를 놓고 불편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삼성이 스마트 시계 플랫폼으로 타이젠을 밀고 있는 것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또 삼성이 자체 앱 개발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당시 인포메이션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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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대로라면 삼성이 플랫폼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것에 대해 구글이 강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 봐야 한다.

구글의 모바일 칩 자체 제작 추진설은 당시와는 정반대 상황인 셈이다. 당시 보도대로라면, 구글이 하드웨어까지 넘보는 것에 대해 삼성 쪽에선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다. 적어도 논리적으론 그렇다는 얘기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