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배터리는 왜 크기가 모두 다를까

표준화 민원 많지만 실효성 낮다는 의견도 적잖아

일반입력 :2014/04/24 13:13    수정: 2014/04/24 17:25

잦은 휴대폰 교체주기 탓에 집안 서랍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소위 ‘장롱폰’ 외에도 넘쳐나는 물건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터리와 충전기다. 보상판매에서도 여분의 배터리와 충전기는 회수 대상이 아닌 탓에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배터리를 생색내듯 주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생기는 궁금증은 왜 휴대폰 배터리의 크기는 모두 다르냐는 것이다.

배터리 크기가 같다면 휴대폰을 교체해도 계속 사용할 수 있고 외장 배터리를 구매하거나 배터리 소모에 따른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23일 업계 및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휴대폰 배터리 크기를 표준화해 사용하자는 취지의 소비자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며, 지난 1월 국민신문고에도 휴대폰 배터리를 호환시키자는 민원이 접수돼 2월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전지 전문가들로 전문위원회가 구성돼 이를 논의한 바 있다.

당시 논의의 결과는 ‘휴대폰 배터리의 표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고성능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배터리 또한 대형화나 슬림화가 이뤄지고 있어 동일 크기의 배터리 사용을 유도할 수 없고, 제조사가 최초 설계한 것과 다른 배터리가 사용될 경우 휴대폰 사용 시 인체에 흡수되는 전자파 측정값인 SAR이 변경돼 이용자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 휴대폰 제조사들은 스마트폰의 디자인, 진화되는 내부 부품의 크기, 최적의 배터리 용량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크기를 규격화하는 것은 실효성이 낮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복수의 휴대폰 제조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배터리는 소모품이고 이를 규격화해서 얻을 수 있는 효율성이 낮다”며 “소비자들의 요구도 최적의, 최대의 배터리 용량을 얻는 것이지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 배터리, 휴대폰 원가 약 4%

이 같은 국가기관의 발표나 제조사들의 설명에도 결과는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고성능화가 빠르게 진행돼 왔지만 보급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성능, 크기, 디자인 등에서 혁신성이 크게 줄었고, 휴대폰의 전자파는 제조사 스스로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부분이다.

특히 모든 제조사의 표준화가 어렵다면 각 제조사별로 표준화를 하는 단계적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일례로, 인기모델인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시리즈의 경우 갤럭시노트1(5.3인치), 노트2(5.5인치), 노트3(5.6인치) 등으로 크기에서 큰 차이가 없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들 스마트폰의 배터리 크기가 같다면 재활용할 수 있고, 배터리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휴대폰 구입비를 낮출 수 있다. 휴대폰에서 배터리의 원가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시장조사기관인 IHS는 갤럭시S5의 원가를 256.52달러라고 예측하면서 배터리 2개 비용을 11달러로 분석했다. 배터리가 휴대폰 가격에서 약 4.3% 비중을 차지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휴대폰 제조사 관계자는 “1개의 배터리가 제공되는 일체형이나 2개를 주는 착탈식이나 스마트폰 가격에서 큰 차이가 없지 않느냐”며 “배터리를 옵션으로 선택하게 해도 휴대폰 가격이 크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구글의 아라 프로젝트도 이 같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진행되는 것이고 고려해볼 만한 일”이라며 “모듈 방식의 스마트폰이 트렌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배터리 크기 통일하면 효율성 떨어진다?

제조사들은 배터리 크기를 통일시키자는 것에 반대하는 논리중 하나로 최적화, 최대의 용량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스마트폰이 대형화되고 높아지는 멀티미디어 사용량에 대응하는데 배터리 크기를 규격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갤럭시노트 시리즈의 예를 살펴보면 이 같은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용량이 2500mA이었던 갤럭시노트1의 배터리는 노트2와 노트3로 진화하면서 배터리 용량도 3100mA, 3200mA로 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100% 타당한 것만은 아니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제조사가 휴대폰의 사이즈, 스펙, 배터리 용량 등을 결정하면 이에 맞춰 배터리를 개발한다”며 “배터리 크기가 커지면 용량이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크기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고 에너지 밀도가 더 중요하며 작은 크기의 배터리가 더 큰 용량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CPU, 카메라 모듈 등의 배열 설계에서 배터리 크기가 규격화돼 있으면 디자인의 자유도는 낮아지겠지만 표준화로 얻는 좋은 점도 있다”며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가 원형 18650 배터리를 표준화시켜 생산 단가를 낮춘 것이 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 배터리 ‘단체표준’…제조사 “나 몰라라”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휴대폰 배터리는 용량을 기준으로 제조사별로 단체표준이 만들어져 있다. 지난 2010년 10월 한국기계전기전시험연구원이 한국기술표준원의 학술 연구 용역 과제의 하나로 실시한 ‘휴대폰 배터리 표준안 개발’ 연구조사가 토대가 됐다.

당시 이 연구는 휴대폰 모델이 700여종에 달해 이를 표준화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환경 보전에 긍정적이고, 제조업계의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 등에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 시작됐다.

박해범 국가기술표준원 에너지환경표준과 사무관은 “배터리 크기를 통일시키자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2010년 해당 연구가 이뤄졌다”며 “하지만 국가표준이든 단체표준이든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제조사가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고 현재 따르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휴대폰 배터리 표준화 추진은 미국 등과 무역마찰의 소지도 있다”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은 우리나라가 2009년 휴대폰 배터리 표준화를 추진하자 한‧미 통상협의 의제로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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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연구조사에서는 “배터리 표준화가 기술적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제조사의 입장만을 고려해 표준화 논의를 중단할 수 없다”며 “우선 제조사별로 단체표준으로 추진하고 관련 업계가 지속적으로 표준모델의 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14~64세 이용자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83.7%는 휴대폰 배터리의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77.4%는 기존 배터리를 재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