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친 보조금'을 잡지 못하는 이유

[데스크칼럼]담합 쉬운 시장 구조 바꿀 생각 안해

일반입력 :2014/02/12 16:22    수정: 2014/02/13 10:31

구두 위를 아무리 긁어봐야 시원할 까닭이 없다. 배탈이 났는데 뱃가죽에다 아까징끼를 잔뜩 처발라봐야 속이 편해질 리도 만무하다. 다 헛수고다.

20년이 넘은 우리 보조금 정책이 그렇다. 수도 없이 제재 수위를 조절하고 갈수록 강한 법을 만들어 보지만 시장은 끄떡도 않는다. 다 헛발질이다.

오죽하면 ‘미친 보조금’이니 ‘대란’이니 하는 말까지 나왔을까.

모름지기 최고의 처방은 병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보조금 규제는 그 취지가 나쁘지 않지만 원인 진단부터 틀렸다. 당연히 처방 또한 약효가 있을 리 없다. 다시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사태를 진단해야 할 때다.

보조금은 그 자체로 악(惡)이 아니다. 기업에겐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소비자한테는 좋은 제품을 싸게 살 기회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할 때 보조금 싸움은 불가피하며 그 덕은 소비자가 본다. 시장은 저절로 그 합리적인 선을 찾아 간다.

보조금을 악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내용적으로 볼 때 '제품이나 서비스의 할인'이기 때문이다. 나온 지 오래 됐거나 잘 안 팔리는 제품과 서비스는 가격을 깎아주는 게 시장 상식이다. 아무리 공권력이 강한 나라더라도 시장 경제를 채택했다면 기업에게 그 정도 자유는 줘야 한다. 27만원까지만 깎아주라고 정부가 정하는 건 월권이다. 기업의 마케팅 자유와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소원 대상일 수도 있다.

보조금이 악으로 몰린 건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점 때문이다. 장소와 시간에 따라 들쑥날쑥해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논리다. 할인을 하더라도 일괄적으로 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장 현실을 외면한 생각이다. 소비자는 어떤 제품도 똑같은 가격에 구매하지 않는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배추 한 포기도 소비자마다 산 가격이 다르다. 정도의 차이만 있다. 다나와 같은 가격비교 사이트가 성업하고 있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소비자마다 제품 구매가격에 차이가 생기는 건 시장의 필요악인 셈이다. 그러니 보조금을 똑같이 지급하라거나 사전에 다 까라는 것은 시장 경제를 펼치는 나라에서는 사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정책이다. 공산주의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보조금 액수는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이 아니다. 그냥 놔둬서 더 많이 할인해 소비자가 이득을 보도록 하는 게 외려 정부가 할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 이동통신 시장에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심각하다. 담합과 그로 인한 부당이득의 문제다. 보조금이 미친 듯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서비스와 단말기의 가격을 고가로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게 진짜 문제다. 정부가 할 일은 그런 담합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우리 이동통신 시장은 구조적으로 담합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동통신 서비스 3사가 서비스는 물론이고 단말기 유통 시장까지 완전히 장악해 서비스와 단말기를 결합 판매한다. 결합 판매 구조에서는 공동 마케팅이 곧 담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모든 마케팅이 다 담합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이 포화돼 3사간 경쟁이 치열하다면 당연히 가입자를 빼오기 위해 요금 인하 경쟁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정부가 강제로 패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결합 판매를 통한 단말기 보조금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기 때문에 구태여 장기적인 수익 기반인 요금을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게다.

오히려 우리 시장의 경우 요금이 과하게 오른 측면이 크다. 예의 그 ‘전가의 보도’를 쓰기 위한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제조 업체 입장에서도 앞장서 할인 판매할 이유가 없다. 서비스 사업자가 때맞춰 보조금을 같이 제공해주니 협상을 잘 하는 게 최고 마케팅이다. 잘 나가는 제품이나 잘 안 나가는 제품이나 출고가가 엇비슷하게 책정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관련기사

결국 현재 시장 구조에서는 서비스 사업자에게나 제조업체에게나 거의 유일한 마케팅 수단이 보조금이다. 그러니 정부가 규제한다고 먹힐 일이겠나.

답은 뻔하다. 결합과 담합이 쉬운 시장 구조를 바꾸는 것 밖에 없다. 일찍이 이를 연구하고 고민했다면 지금 보조금은 악이 아닌 선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결합 판매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