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디지털 문패 잔혹사' 끝나길

[기자수첩] 연속성 노력은 고무적…디지털 신뢰 신경써야

기자수첩입력 :2017/08/31 14:02    수정: 2017/08/31 16:33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4차산업혁명 대응 주관 부처란 특명을 안고 지난달 출범했다.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 체제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더한 3차관 체제를 갖추게 됐다.

사실 걱정스러웠다. 새 부처가 지난 정부의 흔적을 남김 없이 청산해버릴까 우려스러웠다. 이상하게 들렸다면 이것 때문일 게다. 지난 정부 출범과 함께 신설된 미래부는 '창조경제' 주무부처로 통했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최서원의 개입 의혹이 짙었던, 각종 비리와 부정과 이권의 개입으로 얼룩진 그 창조경제다. 하지만 지금은 논하려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정부 부처의 홈페이지 주소, 인터넷 도메인 얘기다. 그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부 조직개편이란 이름아래 온갖 부처의 '헤쳐모여'가 다반사였다. 부처 문패가 바뀌니 디지털 세계에선 기존 부처의 흔적도 깡그리 증발하곤 했다. 새 이름에 맞춰 인터넷 도메인을 뚝딱 바꿔버리면서, 그 조직이 과거에 인터넷으로 수행한 전자적 활동 기록과 온라인의 신뢰성이 산산이 무너져 왔다.

수시로 바뀌는 정부부처 홈페이지의 도메인은 문패가 바뀌는 것 이상의 결과를 낳곤 했다. 기존 도메인으로 연결된 외부 링크를 죽이고, 방문자에게 정부부처로서의 신뢰성을 제공하기 어려워 그간 전자정부 정책기조에도 역행해 왔다. [사진=Pixabay]

인터넷 도메인은 그걸 쓰는 기업에든 기관에든 온라인 세계의 방문자에게 가장 먼저 보여지는 고유한 정체성이다. 방문자가 자신이 들른 곳이 안전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한 몇 안 되는 근거다. 디지털 범죄자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도메인 문자열을 일부 바꿔치기한 형태의 주소를 만들고 가짜 로그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방문을 유도한 다음 계정과 암호를 훔치는 수법을 즐겨 쓰고 있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처럼 방문자의 필요에 따라 많은 민감한 정보를 요구하는 조직의 홈페이지는 이런 디지털 정체성을 가능한한 일관되게 보존해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지금 들어간 이 사이트가 진짜 청와대 홈페이지인지, 그걸 베껴서 민원인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및 공인인증서를 훔치려는 범죄자의 덫인지 가려내는 데 큰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대 정부는 4년전 기사 [정부3.0 제 발목잡는 정부 홈페이지]에서 지적했듯, 출범 초기마다 조직개편에만 열을 올렸다. 범죄자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신뢰를 얻기 위한 디지털 정체성을 유지하는 덴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손쉽게 문패를 바꾸고, 그에 따라 인터넷 도메인도 바꾸고, 홈페이지도 새로 만들고, 기존 게재 자료의 외부 연결 경로를 없애 '죽은 링크(dead link)'를 양산했다.

과기정통부도 이러지 않을까, 이게 걱정이었다. 출범 이후 1개월여가 지난 현재 파악된 점은 그런 걱정을 덜어 줬다. 현 정부는 그 동안과 다르게 공공사이트 주소 관리 방식을 상당히 전향적으로 바꾼 듯하다. 어쩌면 새 정부 들어 마침내 디지털 정체성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과기정통부 도메인을 보자. 영문약칭이 msit.go.kr다. 미래부의 영문약칭 msip.go.kr에서 바뀐 것이다. 예전대로라면 이제 이것 때문에 지난 정부 5년간 미래부에서 온라인으로 발간, 배포한 자료와 업무기록 등을 외부에서 참조했던 모든 인터넷 링크는 죽은 링크로 바뀐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잘 들여다보면 msit.go.kr로 들어간 뒤 열람되는 하위 메뉴와 게시판의 자료는 여전히 msip.go.kr 도메인으로 제공된다.

다른 예를 찾아 보자.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다. 정부부처 홈페이지를 자산으로 포함하는 전자정부 사업 주무부처라는 점에서 대표 사례로 삼을만하다.

행안부 도메인도 새 영문약칭에 따라 mois.go.kr로 바뀌었다. 기존 행자부 도메인 moi.go.kr과 역시 다르다. 과기정통부와 달리, 행안부는 도메인을 변경하면서 홈페이지의 세부 메뉴를 제공하는 경로도 새 주소를 적용했다. 내부 링크가 기존 행자부 도메인으로 표시되지 않는다. 디지털 정체성에 눈을 못 뜬 걸까. 아니다. 기존 행자부 도메인으로 내부 링크 접속을 시도하면 역시 링크가 살아 있는 걸로 확인된다.

행안부도 과거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에서 '행정안전부'가 됐다가, '안전행정부'가 됐다가, 국민안전처가 신설되면서 다시 행자부로 돌아갔다가, 이제 또 안전처가 해체되면서 그 기능을 흡수해 행안부다. 즉 행안부는 이렇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도메인 변경을 겪었는데, 이번만큼은 도메인을 바꾸면서도 디지털 정체성을 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과기정통부는 미래부 주소 자료를, 행안부는 행자부 주소 자료를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놨다. 명칭이 변경된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여야 마땅하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새 정부가 공공사이트 주소 관리 개념을 다르게 접근하기로 한 모습이 역력하다.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개편된 정부조직의 새로운 '문패'에 맞춰 홈페이지 주소를 갈아엎느라 죽은 링크를 양산하던 행태를 처음으로 반성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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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게 당연한 방식이지만, 이나마도 지난 10년 넘게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정부가 그간 유엔 조사 상위 랭크를 유지해 온 대한민국전자정부 운운하며 자아도취를 금치 못했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일단 칭찬해 둔다. 다만 정부부처로서 가능하다면 죄 없는 문패는 그만 놔 두고 일하는 방식과 역량 자체를 바꿔 나갔으면 좋겠다.

이제 한국에서 전자정부의 '디지털 문패 잔혹사'가 종결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