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게임이용장애의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저성과...사회 전체의 부담 가중할 것

전문가 칼럼입력 :2019/06/21 10:52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대한 논쟁이 지난 한달 동안 뜨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해결방안이 도출되지 못한 채 공전되고 있는듯하다. 나는 게임이 게임이용장애의 핵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통 게임을 하는 것(gaming)에만 집중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저(低)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들은 양측의 논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게임계에서는 ‘게임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이 게임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의료계도 동의한다.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게임을 많이 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는 사람들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답한다. ‘게임을 많이 해서’가 핵심이 아니라 ‘일상생활 문제’가 핵심인 것이다.

그럼 일상생활 문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장기간 학교나 회사에 가지 않거나, 공부나 업무를 등한시 하는 것이 진단의 핵심이다. 역으로 게임을 아무리 많이 해도 공부 잘하고, 돈 잘 벌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게임이용장애는 기대되는 성과를 유지하지 못하는 ‘저성과’에 대한 진단일 뿐이다. 저성과를 중심으로 게임이용장애 논쟁을 살펴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째,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성과는 개인의 시간투자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는 그 분야에 대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재능은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설령 그 재능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실현시켜줄 기술과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성과가 가능해진다.

또한 동료나 지도자와 같은 인적환경과 시설, 제도와 같은 물적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과연 게임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청년들은 이런 조건이 다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때문에 아까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아니라면, 개개인의 청년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게임을 지목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수 있다.둘째, 게임은 이 시대 청년들에게는 중요한 성과 중 하나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잘난 맛에 산다. 즉 성과가 있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투자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본성이다. 배고프면 밥을 찾고, 목마르면 물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성취동기’라고 부른다. 특히 청년기의 성취동기는 ‘동년배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아이돌 팬클럽 활동에 몰두하는 친구들 틈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아이돌에게 투자했는지가 자부심이 된다. 당연히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면 게임에서 뛰어난 실력은 주변의 부러움을 넘어 시기의 대상이 되는 엄청난 존재감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게임이 주요 문화산업으로 부상한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누구나 이런 것 한 두개는 가지고 산다.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존재감의 근원이 되는 성취가 부정되었을 때는 엄청난 분노와 공격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병이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셋째, 청년들의 개인적 저성과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부모의 저성과로 인식되는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문화심리학자들은 중국과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권의 사람들은 ‘관계주의’라는 특성이 나타난다고 보고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소개에서 가족관계가 맨 먼저 나오고, 내가 속한 회사와 학교가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계주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내적 특성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개인주의’와 구분되는 속성이다. 관계주의 관점에서 보면, 자녀가 기대수준의 성취를 올리지 못하는 것은 자녀의 문제로 끝나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저성과’로 인식된다. 즉 게임 자체라기보다는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이 문제의 근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게임이용장애가 왜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동아시아권에서 연구가 많이 되고, 사회적 논쟁이 격화되는지를 시사한다.

경쟁사회에서 저성과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하는 심각한 문제다. 저성과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매우 비참해진다. 그래서 당사자는 어떻게든 이런 책임을 피하고자 애를 쓰게 된다. 콘래드는 이런 책임회피의 방법으로 ‘저성과의 의료화(medicalization of underperformance)’라는 개념을 주장하였다. 자신의 의무나 책임과 관련된 문제를 ‘병’ 때문인 것으로 간단히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비난이나 추가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이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혜택이 따르기도 한다. 사회 역시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 면책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콘래드는 저성과의 의료화를 의료계와 저성과 당사자, 그리고 주변사람들 간의 동맹관계라고까지 불렀다.

안타깝게도 저성과의 의료화는 문제를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문제의 근원과 관계없을 뿐 아니라 이 문제 자체가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바로 사회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게임이용장애 논쟁을 정신의학계의 전문적인 영역만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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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국무총리실에서 중립적인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게임이용장애 이슈를 중재 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부디 이 문제가 병원이나 PC방에서 일어나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청소년과 사회란 무엇인지, 그리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각 구성원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장주 소장

심리학 박사, 2010 게임산업전략위원회 위원,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비전임 교수,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비전임 교수,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