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서비스도 요금이 만사(萬事)다

[이균성의 溫技] 감동 주는 초시대 상품

데스크 칼럼입력 :2019/03/22 14:17    수정: 2019/03/22 14:41

#어떤 스포츠는 예술이다. 유럽 프로축구가 한 예다. 공을 좇는 열 한 명의 몸짓은 때론 나긋하고 때론 격렬한 춤이다. 잘 조직된 군무(群舞)는 눈으로 듣는 오케스트라다. 볼 때마다 심장이 떨린다. 어떤 상품은 예술이다. 아이폰이 한 예다. 매끈한 몸매에 모든 인간의 상상을 날렵하게 집어넣었다. 뮤직박스와 TV와 스크린이 손 안에 들어왔다. 그 감동에 소비자는 기꺼운 마음으로 지갑을 연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예술의 본령은 감동이다. 감동은 심장이 떨려야만 제 맛이다. 심장을 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극단으로 치달아야 한다. 어정쩡한 것에는 감동이 없다. 극단으로 가는 건 미치는 일이다. 무엇에건 미치지 않고는 감동을 낳지 못한다. 좋은 기업인의 꿈이 그것일 수 있다. 미쳐서 예술 같은 상품을 만드는 일. 장인(匠人) 정신이다. 그런 기업인은 찬양의 대상이 된다.

#통신기업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 통신상품은 어떤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다 해도 예술의 경지에 이를 가능성이 애초부터 없다.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것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이폰 같은 예술 상품이 존재케 하는 핵심 인프라지만 그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기를 누가 예술로 보겠는가. 수십조 영업이익을 내는 애플보다 수천억 영업이익을 내는 통신사를 욕하는 게 현실이다.

MWC19 부스에 전시된 갤럭시S10 5G.(사진=삼성전자)

#통신기업으로선 아주 억울한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모두 다 숙명인 것을. 통신이란 업(業)의 본질이 원래 그렇다. 그래서 애초에는 공공서비스 영역이었다. 공기와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민영화했고 이제 모두 사기업이 됐지만 그 숙명마저 바뀐 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이동통신 데이터 요금을 60% 내린데 이어 올해에도 20% 더 내린다고 하지 않나.

#통신사가 자신의 본원적 상품이 아닌 단말기와 돈(보조금)으로 소비자를 유혹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같은 선상에 있다. 경쟁사 간의 이 싸움은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었고, 소비자는 통신서비스 상품 가격을 신뢰하지 않게 됐으며, 정부는 각종 규제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보조금과 요금논란은 그래서 통신업이 갖는 숙명적 비애다. 그리고 ‘국민 호주머니 터는 기업’이란 낙인마저 찍히게 됐다.

#우리 사회는 이제 또 그 수렁에 빠질 준비를 하는 듯하다. 5G 상용화와 함께 요금을 놓고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치열한 쟁투가 벌어질 수 있다. 정부가 최근 SK텔레콤의 5G 요금제를 인가하지 않고 퇴짜 놓은 게 그 징후다. 상용화 시기가 임박했음으로 곧 적당한 요금제를 내놓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요금제가 시민단체를 만족시킬 지는 의문이다. 다시 악머구리 끓듯 아우성칠 것이다.

#5G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대동맥(大動脈)’으로 여겨진다. 모든 것이 서로 이어지는 초연결(超連結)과 연결된 것끼리 화학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초융합(超融合) 그리고 이 모든 걸 자동으로 구현해주는 초지능(超知能)이 모두 이 대동맥으로 인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큰 길 앞에서 모두 난장판을 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 판에서는 언제나 ‘요금이 만사(萬事)’였고 모든 이슈가 이로 인해 매몰됐기 때문이다. 그 어떤 정부도 그 어떤 기업도 아직까지는 이 문제에서 현묘한 길을 제시한 적은 없다. 난마처럼 얽혀 늘 난장판으로 치닫는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알렉산더의 칼’은 영영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5G 시대를 맞아 제시한 '뉴ICT'와 ‘초시대(超時代)’라는 개념에서 힌트를 본다.

#초연결과 초융합과 초지능이 가능하다면 초요금(超料金)도 고민할만하지 않겠는가. 투자비용과 영업이익을 근거로 벌이던 기존 요금 논쟁을 전복시킬 수 있는 예술 같은 아이디어를 짜낼 수는 없는 것일까. 현실을 잘 모르는 짧은 생각일 수는 있겠지만 한 가지 제안해본다. 통신사가 파는 상품을 각기 분리해 과금하는 방식은 어떤가. 특히 전통적인 상품과 초시대에 만들어지는 상품을 나누어.

#전자는 음성통화에 따른 비용과 데이터 송수신에 따른 비용에 대한 요금이다. 초(超)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인 4G에서도 이미 상당히 고도화된 영역이다. 5G는 이를 더 쉽게 구현할 수 있어야 의미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 영역에 대한 요금은 사회적 합의가 됐다는 전제하에 과거 4G 수준으로 묶는 것이 어떨까. 시민단체도 이 영역의 현재 요금 수준에 대해선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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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는 초연결과 초융합과 초지능을 통해 새로 만들어낸 상품이다. 그것을 예술적으로 찾아 만들어내는 게 '뉴ICT'와 ‘초시대(超時代)’를 주창한 기업의 장인정신이다. 투자했거나 앞으로 투자될 5G에 대한 비용은 이 상품들을 통해 회수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상품들은 소비자가 보기에 전통 상품과 확연히 구별되고 원하는 사람만 구매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과금 체제를 만들어낸다면 좋지 않겠는가.

#5G에 기반한 뉴ICT와 초시대(超時代)로 고안해낸 새 상품을 구매하지도 않을 거면서 더 비싼 5G폰을 굳이 사려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활용은 안 해도 폼으로 살겠다는데. 그것 또한 소비자한테는 선택사안일 뿐이다. 이런 생각이 엉뚱하고 비현실적일지는 모르겠으나 통신 비즈니스가 5G 초시대를 맞아 더 이상 비애의 산업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잠시 생각해봤다.